[비즈한국] AI로 만든 가상 인물이 화장품과 미용 업계 광고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수년 전 버추얼 휴먼 ‘오로지’와 ‘루시’가 ‘가상 인플루언서’를 자처하며 대형 브랜드들의 얼굴이 됐다면 최근에는 생성형 AI로 저렴하게 제작한 가상 모델이 중소형 브랜드 제품 홍보에 활용되는 추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가상 모델 맞춤제작 전문 업체들이 속속 등장해 최소 제작가를 만 원대부터 내세우며 가격 경쟁에 나섰다.
뷰티 업계를 중심으로 관련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광고 속 제품이 애초에 사용된 적조차 없다는 점에서 ‘가짜’ 사용감의 딜레마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광고가 명확한 고지 없이 노출돼 소비자의 합리적인 구매 판단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다이소 화장품 코너, 미용기기 SNS 광고 점령한 AI 모델
고물가 시대 ‘가성비’로 주목받는 다이소 화장품 매대에서는 실제 모델보다 AI 모델을 앞세운 광고물이 더 눈에 띈다. ‘입체적인 볼륨표현’이 가능하다는 파우더 브러시나 ‘매끄러운 피부표현’을 위한 파운데이션 브러시 모두 AI 모델의 얼굴 사진과 함께 진열했다. 아이섀도 브러시의 발색력과 블렌딩 기능을 보여주는 시연 사진에도 AI 모델의 눈에 갈색 섀도우를 바른 듯한 이미지가 적용됐다. ‘유리광’ ‘샤인 펄’ 등의 이름을 붙여 촉촉함을 내세운 립글로스와 실크케라틴이 함유돼 부드러운 머릿결을 만들 수 있다는 매직 파마약에도 각기 다른 가상의 젊은 여성 모델이 활용됐다.
유심히 보면 가상임을 알 수 있지만 뒤늦게 AI 제작 광고라는 점을 인지한 고객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14일 서울 용산구 소재 다이소 매장에 방문한 21세 대학생 박 아무개 씨는 “피부에 발랐을 때 실제로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궁금한 건데, 사진은 제품과 아무 상관없는 ‘발색샷’이라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20대 중반 직장인 고 아무개 씨는 “저렴한 제품이다 보니 모델료를 아끼는 취지라면 괜찮을 것 같다”면서도 “가상 인물이라고 먼저 밝히면 오해를 사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AI 가상 모델 이미지로 광고하는 제품들. 사진=강은경 기자, 코코뷰 SNS
화장품과 미용 업계에서는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가상 모델이 활발하게 기용되고 있다. 컬러렌즈나 헤어 스타일링 용품 등 다수의 SNS 광고가 인형 같은 외모의 가상 인물이 제품을 착용하거나 이용하는 이미지를 담았다.
AI 모델과 실사 광고 이미지, 상세페이지 등을 제작해 기업에 납품하는 시장도 경쟁이 치열하다.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인 크몽에 등록된 ‘AI 모델’ 키워드와 관련된 서비스는 약 420개로 AI 모델 관련 디자인, IT·프로그래밍, 영상·사진 분야로 등록한 전문가(공급자) 수만 340여 명에 달한다. 제작 가격은 편차가 있지만 1만~5만 원대에서 시작하는 최저가로, 뷰티 브랜드 광고부터 미용실 헤어모델까지 인물 광고 마케팅이 필요한 중소업체들을 공략하고 있다.
#빠른 침투력, ‘기준 마련’ 화두로
가상 모델 활용 시 실제 유명인이나 모델이 광고하는 것보다 기획·촬영 단계부터 출연료까지 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제작 속도도 빠르다. 앞서 신한라이프, 벤츠, 한국관광공사 등 굵직한 광고를 따냈던 로지(네이버웹툰), 이솔(네이버), 수아(카카오게임즈) 등 버추얼 휴먼과는 구분되는 영역이다. 버추얼 휴먼은 대기업 계열 자본과 기술력이 총동원된 반면 현재의 가상 모델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이미지 생성 특화 AI ‘미드저니’ 등을 이용해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돼서다.
아직까지 AI 모델 광고를 고려하지 않는 기업들도 가상 모델의 높은 효율성에는 공감했다. 화장품 업계 A 상장사 관계자는 “계약 기간, 광고 노출 기간 등의 제약이 훨씬 낮고, 모델의 발언이나 사생활 등 제품 외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없을 것”이라며 “가상 인물 광고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거나 고객의 눈높이에 맞다면 브랜드 이미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리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다만 “제품력 소개나 사회적 공감대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질 것 같다. 인기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와 영향력도 견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AI 인물 광고의 영향력이나 시장 침투력이 어디까지 갈지를 두고는 해외에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AI가 만들어낸 인플루언서가 주류 시장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며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얼굴을 가진 AI 모델의 급증은 성형외과와 미용 산업에 더욱 큰 호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도브는 광고에서 실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최초의 뷰티 브랜드다. 이 같은 선언은 지난해 4월 회사의 캠페인을 기념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당시 도브는 자체 연구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온라인 콘텐츠의 최대 90%를 AI가 생성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인용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인공적인 신체 이미지나 영상과 비교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제작하는 콘텐츠에 대한 표현과 투명성이 여전히 시급하다”고도 했다.
AI 가상 인물을 내세운 광고가 소비자의 오인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아직까지 판단 기준은 없다. AI 이미지는 저작권법 적용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효과와 기능을 시연하는 듯한 상업 광고에도 아무런 기준이 없어 소비자 기만이나 과장 광고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반 모델에게 사용해 보여주는 광고보다 제품력에 왜곡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주름, 착색 제거 등 기능이 더욱 부각되는 기초 제품의 경우에는 특히 소비자를 기만하는 각색, 조작의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표시광고법 위반 소지를 거론된다. 이 법은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거짓·광고의 표시·광고, 기만적인 표시·광고 등을 규정하고 있다. 화장품법과 약사법에서도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 등의 금지에 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최성경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생성형 AI 광고는) 광고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표시광고법 등 관련 법률의 규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생성형 AI 광고에 해당하는 규제 사항을 사전에 검증해 법 위반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봤다. 이은희 교수는 “AI 인물을 활용한 광고의 경우 그 사실을 밝히도록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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