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3월 30일(현지시각) 독일의 민간 우주항공 스타트업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Isar Aerospace)가 독자 개발한 소형 위성 발사체 ‘스펙트럼(Spectrum)’을 노르웨이 안도야 우주기지(Andøya Spaceport)에서 처음으로 쏘아 올렸다. 유럽 민간기업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발사체가 본격적으로 발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발사 30초 뒤 로켓은 제 궤도를 이탈해 바다에 추락했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30초의 벽’을 넘은 것에 큰 의의를 둔다는 이자르 에어로 스페이스 CEO의 인터뷰가 놀랍다. 업계에서도 이번 발사를 ‘절반은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패가 축적되어야만 하는 우주 스타트업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의 첫 시험 비행에서 스펙트럼(Spectrum) 발사체는 1단 점화와 함께 이륙해 약 30초간 비행한 후 ‘계획된 절차’ 에 따라 비행이 종료되고 바다에 ‘통제된 방식’으로 낙하했다는 것이 회사의 발표다. 30초 비행부터 낙하까지 모두 계획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엄격한 안전을 보장하는 프로토콜 덕분이다. 이를 통해 발사 플랫폼은 손상되지 않았으며, 참여 인원 모두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다니엘 메츨러(Daniel Metzler)는 “우리는 깔끔한 이륙, 30초간의 안정적인 비행, 그리고 비행종료시스템(Flight Termination System)의 유효성 검증까지 수행하며 이 시험 발사를 큰 성공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성과는 단순한 발사를 넘어서, 우리가 로켓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 발사까지 해낼 수 있다는 증거이고, 앞으로 유연하고 신뢰도 높은 위성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주 분야 전문가들은 실패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가 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용한 데이터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한다. 이번 발사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한 이유도 30초간의 비행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 학습, 개선해 다음 발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는 2호기와 3호기 스펙트럼 발사체를 이미 생산하고 있다. 거의 모든 부품을 수직통합(vertical integration) 방식으로 사내에서 직접 개발, 생산, 테스트하고, 고도로 자동화된 시리즈 생산체계를 통해 향후 연간 최대 40기 이상의 발사체를 생산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 의장이자 전 스페이스X 임원인 불렌트 알탄(Bulent Altan)은 이번 시험 발사에 대해 “완전히 새로 설계한 첫 비행치고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1000kg급 탑재능력을 가진 이자르의 스펙트럼은 현재 부족한 위성 발사 용량을 채워줄 수 있는 유연하고 비용 효율적인 글로벌 솔루션이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는 단지 로켓만 만든 것이 아니라 로켓 생산 시스템 전체를 구축했다는 것”이라며 이번 비행과 이자르 에어로스페이스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봤다.
#다음 무대는 ‘제2의 발사’
현재 유럽의 우주 스타트업은 ‘발사체 개발’이라는 첫 관문을 넘는 과정에 있다. 독일의 우주항공 스타트업 RFA(Rocket Factory Augsburg)는 지난해 첫 발사 직전, 엔진 테스트 단계에서 로켓이 폭발하는 큰 사고를 겪었다. 이후 신속히 개선 작업에 착수해 올해 재발사를 목표로 기술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로는 성공 가능한 로켓이라도 실제 구현할 때는 수많은 변수를 다뤄야 하기에 실패가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성공으로 향해가는 축적의 산업이 우주산업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PLD 스페이스(PLD Space) 역시 유럽 소형발사체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이다. 2011년 스페인 엘체(Elche)에서 설립되었고, 부분 재사용 가능한 소형 발사체 ‘미우라(Miura)’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다. 2023년 10월 미니 발사체 ‘미우라 1(MIURA 1)’을 스페인 남부 우엘바에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발사는 유럽 대륙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민간 소형 로켓 성공 발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들은 2025년 상업 발사를 목표로 한 ‘미우라 5’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스페인 정부, 독일 항공우주센터 DLR, EU 호라이즌 2020에서 지원을 받는 등 유럽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PLD 스페이스는 친환경 바이오 케로신 연료, 1단 재사용 시스템, 전용 발사 서비스 제공 모델을 통해 유연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오르벡스(Orbex)도 유럽의 주목할 만한 스타트업이다. 오르벡스는 ‘프라임(Prime)’이라는 초소형 위성 발사체를 개발 중으로 덴마크와 독일에도 자회사를 두고 있다. 2015년 문스파이크(Moonspike)라는 이름으로 설립해 달 탐사 민간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으나 자금 확보가 무산됐다. 이후 사명을 오르벡스(Orbex, Orbital Express Launch)로 변경하고 나노 및 마이크로 위성의 상업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주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타 우주 스타트업과 차별화되는 점은 바이오LPG 연료 사용, 경량 탄소섬유 구조, 유럽 내 생산 인프라, 재사용 가능성 확보 등 유럽의 지속가능 우주기술 시장의 선두주자라는 점이다. 특히 영국-스칸디나비아-포르투갈을 잇는 발사 거점 체계를 구축하는 범유럽 회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술 스타트업에서 정책 드라이브까지 ‘유럽의 큰 그림’
이 분야에서 유럽의 기술력은 축적되고 있지만, 시장 규모나 정책적 유연성을 미국과 비교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따라서 유럽 전역에서는 정부 주도의 전략적 연구개발 및 정책 드라이브가 병행되고 있다. 2024년 하반기 기준, 유럽우주국(ESA)과 유럽연합(EU)은 친환경 발사체 기술 확보, 우주 자율성 강화, 공공-민간 협력 확대를 핵심 기조로 삼고 있다.
한-EU연구협력센터(KERC)에서 펴낸 ‘2024 하반기 유럽 우주 추진/탐사 연구 및 정책 동향’ 자료에서 독일 뮌헨연방군대학교(Bundeswehr University Munich) 항공우주·해양공학 연구원 손민 박사는 2024년도 하반기 유럽의 우주 추진 및 탐사 연구와 정책 동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우주 개발과 기술 혁신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조명했다. 특히 유럽의 친환경 우주 탐사 추진, 우주 탐사 기술, 우주산업 내 공공-민간 협력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 향후 우주 탐사 및 개발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유럽에서 우주항공 관련 산업의 정책적 흐름을 짚었다.
이 보고서는 유럽이 우주 추진 및 발사체 기술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우주 역량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는 테미스(Themis) 및 아리아네 넥스트(Ariane Next)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이는 SpaceX의 팰컨9(Falcon 9)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이 자체 개발 중인 재사용 로켓 프로젝트다.
또 유럽우주국(ESA)은 액체 메탄 및 수소 연료 도입을 추진하며, 탄소 배출 감축과 지속 가능한 우주 개발을 목표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엔진 및 테미스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2027년까지 완전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를 계획하고 있다.
유럽에서 기존 고체연료 및 독성 화학 연료의 한계를 인식하고, 액체 수소와 액체 메탄 기반의 친환경 추진체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탄소 배출 저감과 지속가능한 우주 산업 전환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ESA의 우주쓰레기 제로(Zero Debris) 정책 또한 이에 발맞춘 것으로 우주 쓰레기 배출 방지, 위성 분해 예방, 충돌 회피 기술 등을 포괄하는 우주 교통 관리 프레임워크로 기능할 전망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래형 연료 기술에 대한 투자다. H2POWRD 프로젝트는 수소 기반 회전 데토네이션 가스터빈(RDGT) 기술을 개발 중이며, 독일 베를린공대(TU Berlin)를 포함한 1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 가스터빈보다 연료 효율이 높고, 온실가스 배출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독일 다름슈타트공대에서는 A-STEAM 프로젝트를 통해 알루미늄-스팀 연소 기반 청정에너지 기술을 연구하고 있이다. 이는 우주 추진체뿐만 아니라 지상 발전 시스템에도 활용될 수 있는 탄소 제로 대체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친환경’과 ‘자립형 추진체 기술’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미래 우주항공의 패러다임을 재편하고 있다.
유럽 우주탐사의 또 다른 이정표는 독일 쾰른에 위치한 루나 아날로그 기지(Luna analog facility)이다. 이곳은 ESA와 독일항공우주센터(DLR)가 공동 운영하는 달 탐사 전용 시뮬레이션 시설이다. 700㎡ 규모의 인공 달 지형, 중력 오프로드 시스템, 로버 협력 실험, 지하자원 탐사를 위한 지질 레이더(GPR) 실험 등 다양한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LUNA는 달 기지 건설과 장기 탐사 임무를 준비하는 유럽 우주항공 산업의 전초기지로 기능하고 있으며, AI 기반 자동 탐사 로봇 기술, 지속 가능한 생태 서식지 실험, 달먼지 대응 설계 등 실제 달 환경에서 맞닥뜨릴 다양한 과제를 실험하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도 유럽은 전례 없는 수준의 통합 우주정책 강화에 나섰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신임 방위·우주 집행위원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과 우주 산업 경쟁력 확보’를 핵심 기조로 제시했다.
특히 EU는 Galileo, Copernicus, IRIS² 등 주요 우주 인프라와 함께 재사용 로켓 기술 개발, 우주안보 및 방위 전략, 그리고 EU 우주법(EU Space Law) 제정을 통한 법제도 정비까지 포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주산업 육성 정책으로는 10억 유로 규모의 CASSINI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며, 이를 통해 PLD Space, Orbex와 같은 유망 스타트업들이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우주산업은 본질적으로 느리고 고비용이며, 반복적인 실패를 전제로 하는 산업이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종종 ‘로켓’에 비유하곤 하는데, 스타트업이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로켓을 만드는 우주 산업과 매우 닮았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실패가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실패를 축적하고 반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탄력성과 기술 내공이야말로 진짜 경쟁력이라는 것도 우주산업과 스타트업의 공통점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유럽스타트업열전] 사모펀드 '먹튀' 논란, 유럽은 어떨까
·
[유럽스타트업열전] 푸틴·트럼프에 놀란 유럽, 방산 스타트업 투자 붐
·
[유럽스타트업열전] "머스크, 너마저!" 극우당 활개에 독일 투자업계 일어섰다
·
[유럽스타트업열전] 딥시크를 바라보는 유럽의 세 가지 시선
·
[유럽스타트업열전] '드라기 보고서' 통해 본 유럽 창업생태계 강점과 약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