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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설빙'과 '제네시스'로 본 한글 로고타입의 난해함

한글은 더 단순해지기 어려운 기하학적인 문자…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균형감 필요

2025.04.14(Mon) 15:13:28

[비즈한국] 콘셉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글 로고는 통상적으로 복잡하면 단순하게, 단순하면 화려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무난하다. 한글은 로만 알파벳(영문)에 비해 한 글자 안에 들어가는 획이 많기 때문에 차별화 요소를 하나만 더해도 그 요소가 문자열 안에서 생각보다 존재감이 클 수 있다. 단순한 문자열은 그 반대다. 한글은 애초에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기하학적인 문자다. 그래서 이를 또 간략하게 디자인하면 아이덴티티가 희미해질 수 있다.

디저트 카페 설빙은 최근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새로운 BI를 도입했다. 주 콘셉트는 ‘행복이 쌓이는 설빙’. BI의 가장 큰 변화는 한글 부분이다. 기존 ‘설빙’ 한글은 캘리그라피 기반으로 자유롭게 만든 붓글씨를 연상시켰지만, 새 BI에선 폰트에 가까운 모습으로 단순하게 다듬었다. 기존 로고타입은 획의 강약이 명쾌하지 않고 형태가 복잡하여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는데 많이 정리됐다. 

다만 기존 캘리그라피와의 연관성을 위해 갈필 디테일 정도는 더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심벌 위쪽 ‘KOREAN DESSERT CAFE’ 문구 서체가 영문 ‘SULBING’과 일치하지 않는 점도 옥의 티. 가장 좋은 방법은 한글과 영문 디자인을 일치시킨 전용서체를 개발하여 일괄 적용하는 것이다. 심벌 속 ‘설빙’을 바탕으로 한 캘리그라피 서체를 개발하여 무료배포하는 그림도 상상해 본다. 폰트는 소비자의 일상에 거부감 없이 스며들 수 있는 강력한 브랜딩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존 캘리그라피 로고에서 둥글둥글하게 다듬은 설빙 한글 로고타입(위)와 반대로 제네시스 마그마 브랜드를 단순화한 마그마팀 로고(아래). 사진=각 사 제공

  
반대는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사례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설립한 레이싱 팀이다. 그동안 세계 유수의 럭셔리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향하면서도 모터스포츠에서 입지가 없었던 제네시스의 의지 표현인 셈이다. 브랜드 메인 컬러로는 고성능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오렌지를 택했고 전용 BI를 개발했다. WEC 출전용으로 공개된 하이퍼카 GMR 001은 제네시스 특유의 2줄 아이덴티티를 전면에서 측면까지 창의적으로 적용했다.

걸리는 것은 메인 심벌이다. 마그마의 초성 ‘ㅁㄱㅁ’에서 가져왔다는 심벌은 지나치게 정적이라 고성능 이미지에 필요한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글은 위에 적은 것처럼 미니멀리즘으로만 접근하면 특징 없이 무의미한 형태가 되어 버린다. 더구나 ㄱ, ㅁ는 한글 초성 중에서도 특징이 가장 적은 편이다.

한글 로고 개발 시 걸림돌이 되는 것이 종성 받침의 존재다. 받침이 없는 대칭 형태의 ‘마그마’ 문자열은 좋은 조건을 지녔다. ‘마그마’를 초성만 남겨 간략화하지 않고, 획을 제네시스 아이덴티티를 살려 2줄로 나눠 표현하거나 트랙의 곡선을 가미했다면 어땠을까? ‘마그마’ 글자를 필기체에 가깝게 디자인하는 것도 한 해법이었을 것이다. 현재 심벌은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정방형과 직각삼각형에 가둬 버린 듯하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팀은 최근 유러피언 르망 시리즈(LMP2 클래스) 개막전에서 우승하는 등 정상 정복을 위해 차근차근 전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실제 서킷을 달리는 레이스카에 적용된 심벌은 이와 반대로 공기역학과 거리가 먼 투박한 모습이다. 향후 한글을 모티브로 하되 더욱 고도화된 심벌의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디자이너는 언제 어디서나 좋은 시안을 위해 고뇌하는 존재다. 영문 BI가 득세하는 요즘이지만 디자이너들이 한글을 재료로 창의적인 조형을 전개함으로써 시각 환경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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