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C는 모든 공학과 건설기술뿐만 아니라 금융, 무역 및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더 나아가 수백 기업의 협동으로 이루어진 종합 기술의 결정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건설업체에게 EPC는 낯선 단어였다. 그러다 1987년부터 약 10년 동안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정유공장과 석유화학공장건설 붐을 일으키면서, 여기에 참여한 건설 회사들이 EPC에 눈 뜨게 됐다. 그리고 이때 경험한 실적을 바탕으로 서서히 해외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건설회사의 영문 이름도 General Construction Company에서 E&C로 바뀌었다. 1992년이 돼서야 한국 업체가 중소형 규모이지만 해외 EPC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글로벌 EPC기업들의 전환기
한국업체가 E&C라는 간판을 내걸고 해외시장을 두드리던 시절인1996년과 1997년은 전 세계적으로 석유화학 투자가 최하를 기록하는 극심한 불황기였다. 대부분의 글로벌 엔지니어링사들은 정리해고와 인수합병에 따른 재편성에 허덕였다. 스톤앤웹스터가 파산하여 파이핑가공 전문업체인 쇼그룹의 산하에 들어갔다. CE와 루무스가 합작해 ABB루무스로, 켈로그와 브라운 앤 루트가 합작해 KBR이 됐다. KTI는 테크닙에 흡수됐다. 레이시온의 엔지니어링부문은 파산으로 그보다 매출이 작은 MK와 통합해 워싱턴그룹이 됐다. 당시 이합집산은 일상적인 사건이었다. 플루어와 제이콥스는 1998년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일본의 전업 엔지니어링 3사인 JGC, 치요다, 도요엔지니어링은 과당경쟁에 따른 값싼 수주로 큰 적자를 냈다.
IMF사태라고 부르는 아시아 외환위기가1998년에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이어 가혹한 구조조정이 시작됐으며 대형 건설업체의 인재들은 무더기로 짤려 나갔다. 특히 인원이 많은 엔지니어링 부문의 희생이 컸다. 해외 진출사업은 축소됐다. 대림산업과 대림엔지니어링이, LG건설(현 GS건설)과 LG엔지니어링이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합병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인 현대건설은 200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 주인이 바꿨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플랜트 시공능력을 더 인정받았던 신화건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이 IMF하에서 신음할 때, 그나마 오일머니로 풍요로운 중동에서는 유전개발, LNG플랜트, 석유화학 콤플렉스 등의 건설공사가 한창이었으며, 프랑스의 테크닙,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 독일의 린데, 우데, 루르기, 미국의 벡텔, 플루어, KBR, CB&I, 그리고 일본의 JGC, 치요다, 도요엔지니어링 등이EPC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들끼리의 잔치였다.
그러나 2001년의 9/11 사태는 한국에게 기회를 선사했다. 2003년 3월 미국의 승리로 끝난 이라크와의 전쟁 후, 유가는 계속 상승하였으며 중동 산유국에는 돈이 흘러 넘쳤다. 그야말로 2005년의 중동은 사상 최대의 호황 그 자체였다. 테크닙이 LNG, 에틸렌, 유전개발 등에서 최대의 수주고를 올리면서 중동 제1의업체로 이름을 날렸으며 페트로팩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벡텔과 플루어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고, 스남프로게티와 JGC도 굳건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죽어가던 치요다는 카타르 LNG프로젝트 덕택에 기사회생하고 있었다. 린데와 테크니몽도 석유화학 분야에서 막강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주력 시장을 중남미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로 방향을 틀어 다수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한국 EPC업체의 본격적인 중동 진출
2군으로 불렸지만, 한국EPC업체들의 본격적인 진격은 2005년도에 시작하였다. 사우디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이 에틸렌 크래커를 포함한 3개의 석유화학 플랜트 프로젝트를 18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드디어 포문을 열었다. 쿠웨이트에서는 SK건설이 사상 최대규모인 집하시설 확장 프로젝트를 12억 달러에 수주하였으며, 현대건설도 에탄회수플랜트를 4억 달러에 계약했다. 카타르에서는 GS건설이 LAB플랜트와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9억 달러에 따냈다. 중동에 진출한 EPC업체들에게 2005년은 일감이 너무 많아 수주 목표롤 초과 달성한 해였으며, 사람이 없어 수주를 자제하는 입장이 됐다. 소위 셀러마켓 위주의 골라먹는 시장으로 변한 것이다.
2007년에는 중동에서 한국 EPC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45%에 이르렀다. 삼성엔지니어링과 대림산업이 사우디의 카얀석유화학 콤플렉스 프로젝트에서 각각 20억 달러 이상의 계약고를 올리면서, 드디어 한국업체가 테크닙, 스남프로게티, 테크니몽, 플루어, JGC등을 앞지르게 됐다.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만이 시장을 사우디에서 UAE와 오만으로 확장하면서 유일하게 23억 달러를 수주해 한국과 맞서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ABB루무스는 루무스를 분리해 CB&I에 매각됐으며, 페트로팩은 아직 한국보다는 한수 아래의 2군으로 남아 있었다.
2008년 초에 GS건설이 UAE에서 11.4억 달러의 그린디젤 프로젝트를 수주하였으며 아람코 마니파 프로젝트를 5억 달러에 따내면서 사우디에 최초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반기에 불어닥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산유국 중동을 강타하면서 수많은 대형 프로제트가 연기 혹은 취소되기 시작했다. 이때 아랍인맥으로 무장한 페트로팩이 특유의 저력으로 UAE의 SAS유전개발을 포함한 2개의 프로젝트를 30억 달러에 따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사우디와 UAE에서17억 달러를, 스남프로게티가 사우디와 쿠웨이트에서 15억 달러를, JGC가 사우디에서 8억 달러를 각각 수주하면서 저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유럽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전되고 있는 중동 EPC업계의 판도
20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동의 건설시장을 순식간에 셀러 마켓에서 바이어 마켓으로 바꾸었으며 EPC업체들은 아사 직전의 위기로 몰았다. 그해 3월 쿠웨이트의 신규 정유공장 프로젝트가 취소되었으며, 이를 백로그로 잡은 한국업체들은 절망에 빠졌다. 산유국 발주처들은 이 기회를 틈타 초대형 프로젝트들을 더욱 빠르게 진척시켰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기성금 지급조건을 완화해 주면서 업체간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다.
한국업체는 이러한 전략에 말려들어 예산 절감의 달콤한 맛을 발주처에 전해주었다. 사우디의 쥬베일 정유공장 프로젝트에서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및 SK건설이 7개 패키지 중 4개, 금액으로는 전체의 36%에 해당하는 27억 달러에 수주하였으며, UAE의 아부다비 가스통합개발(IGD) 프로젝트에서는 현대건설, GS건설 및 현대중공업이 5개 패키지 중 3개, 금액으로 전체의 38%에 해당하는 39억 달러를 수주했다. 이어 벌어진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 프로젝트에서는 GS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이 5개 패키지 모두를 96억 달러에 싹쓸이 수주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오일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전 세계 EPC업체들의 수주전에서 승자는 단연 ‘한국’이었다. 그러나 한국업체들의 일조로 사우디와 UAE정부에게 40-50억 달러의 돈을 벌게 해주는 씁쓸한 일이기도 했다.
2009년 한국업체의 총 공세로 말미암아, 중동의 하이드로카본 EPC마켓은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SK건설, 대림산업 및 현대건설로 대표되는 빅 5외에 페트로팩, 사이펨, 테크닙, JGC,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 테크니몽의 6개사가 살아남아, 총 11개사가 혈투를 벌이는 판으로 변했다.
10년전과는 전혀 다른 구도로 바뀐 것이다. 코스트플러스에 강하고 럼섬 계약에 약한 미국의 벡텔, 플루어, 포스터휠러, KBR, CB&I 등은PMC와 FEED에서만 생존할 수 있게 됐다. 독일의 루르기, 우데, 린데 등은 EPC시장에서는 사라졌고 기술을 파는 회사가 됐다. 스남프로게티는 사이펨에 흡수됐으며, 도요엔지니어링은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다. LNG프로젝트가 사라진 중동에서 이제 ‘치요다’라는 이름도 잊혀지기 시작했다.
유럽업체의 반격
2010년이 되면서 대표적인 초대형 프로젝트로 사우디에서는 얀부정유공장이, UAE에서는 샤가스전 개발이 발주됐다. 얀부정유공장 프로젝트의 4개 프로세스 패키지 입찰에서는 대림산업이 2개 패키지를 16.6억 달러에, 나머지를 SK건설이 5.6억 달러,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7.7억 달러에 각각 가져가면서 한국이 승자가 됐다. 반대로 아드녹의 샤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사이펨이 젠체의 64%인 35.5억 달러를 수주했으며 삼성엔지니어링이 15억 달러를, 그리고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4.6억 달러를 가져갔다. 한국타도를 외치며 공격적인 자세를 폈던 사이펨이 이겼다. 이 해에 사이펨은 중동에서 총 55억 달러를 수주하면서 선두에 서게 됐다.
이와 더불어 대만의 CTCI와 중국의 사이노펙이 사우디에서총 15억 달러에 달하는 4개의 석유화학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인도의 펀지로이드도 얀부정유공장과 샤가스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향후의 다크호스임을 알렸다.
드디어 2011년 한국업체의 공격성과 욕심은 무리수를 낳았다. SK건설이 사우디 아람코의 와싯 가스플랜트 프로젝트의 4개 패키지 중 3개 패키지를 19억 달러에, 삼성엔지니어링이 아람코의 샤이바 가스오일 프로젝트의 4개 패키지 모두를 27.7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매스콤의 각광을 받았으나, 결국 저가수주의 저주를 받아야만 했다. 예산대비 60-70%의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이 두개 프로젝트는 대규모 손실을 일으켰으며 양사는 아직도 고전하고 있다.
한국업체의 저가 공세는 유럽과 일본에게 강한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일감의 대부분을 한국업체에 뺏긴 유럽업체가 파격적인 가격으로 수주 경쟁에 가세했다. 더구나 2012년이 되면서 유로화의 약세를 타고 가격경쟁력이 살아나면서 유럽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사우디 페트로라빅 2단계 사업에서사이펨, 페트로팩, JGC의 3사가 24억 달러의 수주에 성공했으며, GS 건설과 대림산업은 20억 달러를 가져갔다. 이어 사우디 사다라석유화학 프로젝트의 3개 주요 패키지를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22억 달러에 차지했다. 나머지 2개 패키지를 테크닙이 6억 달러, 한국에서는 대림산업만이 7억 달러에 가져가는데 그쳤다.
2012년에 발주된 아람코의 지잔 정유공장 프로젝트는 이젠 한국업체가 가격경쟁에서도 우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30억 달러에 달하는 3개의 프로세스 패키지 중 SK건설만이 11억 달러에 수주하였으며 나머지를 JGC가10억 달러,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9억 달러에 가져가면서 한국이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은 끝나가는 듯 보였다.
저가수주에 의한 대규모 손실
그 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저가수주로 인한 손실이 드디어 2013년 초에 공식화되면서 한국을 들끓게 했다.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SK건설의 3사가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면서 건설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예외로 여겨졌던 대림산업도 2013년 4분기 사우디 사다라석유화학 프로젝트 2곳과 쿠웨이트 LPG플랜트 등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2009년부터 한국업체가 수주한 30여개의 프로젝트가 이제 완공을 앞두고 대부분 적자로 반전하게 된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그 손실 규모는 40억 달러를 넘긴다고 한다. 반면 유럽업체 중 폴리머계의 최강자였던 이탈리아의 테크니몽도 저가수주에 의한 여파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업체를 꺾고자 하는 새로운 업체들이 등장했다. 재기를 노리는 치요다가CTCI와 손잡고카타르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10억 달러에, 인도의 L&T는 아람코 미드얀 가스플랜트와 오만 가스압축시설의 2개 프로젝트를 6.5억 달러에, 도쌀은 UAE 이산화탄소 포집 프로젝트를 5억 달러에 수주하면서세를 키웠었다.
2014년 초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날아온 정유공장 수주소식은 잠시나마 손실과 위기감을 잊게 만들었다.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SK건설의 컨소시엄이 60억 달러에 수주했다. 그리고 쿠웨이트 클린퓨얼 프로젝트의 3개 패키지를 GS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 현대중공업 등 5개사가 72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전체의 60%를 가져오는 개가를 이뤘다.
그러나, 한국업체가 수주를 낙관했던 쿠웨이트의 3개 집하시설, 북부유전 배수처리시설, 피드 파이프라인, 그리고 중유생산시설 입찰 경쟁에서는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총 78억 달러에 달하는 7개 프로젝트를 인도의L&T, 도쌀, 펀지로이드, 그리고 UAE의 페트로팩에게 모두 뺏겼다. 사우디에서는 CTCI가 사빅 MMA프로젝트를 12억 달러에, 도쌀이 아람코 MGSE프로젝트를 17억 달러에 계약했다. 오만에서는 페트로팩이 BP와 PDO가 발주한 2개 프로젝트를 22억 달러에 수주했다. UAE에서 GS건설은 도쌀과의 컨소시엄으로 ADCO발주의 NEB유전개발 프로젝트를 14억 달러에 계약했다.
2014년 8월 현재, 한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정유공장 프로젝트에서 선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페트로팩이 90억 달러의 수주를 올려 선두를 달리고 있다. GS건설이 2위로 47억 달러룰 수주했으나, 인도의 도쌀이 45억 달러, 사이펨이 44억 달러로 뒤를 쫓고 있다. L&T와 CTCI도 17억달러와, 12억 달러의 수주를 올려 10위권 안으로 들어왔다. 인도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인도가 대세다
인도와 중동지역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긴밀한 이해관계와 유대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중동에서 인도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외국인 전체 노동력 중 40-60%를 차지하며, 그 숫자는 600만 명에 이른다. 이처럼, 각 중동국가에는 수십만에서 백만 명에 이르는 인도인이 전 산업분야의 각층에 골고루 포진돼 있다. 특히 건설과 관련하여 발주처, 현지 건설업체, 전문하청업체, 벤더 및 인력 공급업체 대부분이 인도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제는 인도인을 활용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인도는 꽤 오래전부터 미국과 유럽업체의 엔지니어링 자원이었다. 미국의 벡텔, 플루어, CB&I, 유럽의 테크니몽과 우데등은 각사별로 1000-2000명의 인원으로 진용을 갖춘 인도 엔지니어링센터를 10년전 부터 착실히 운용해왔다.
특히, 지난 2008년 9월 스남프로게티를 인수 합병한 사이펨은 모든 상세설계와 구매 그리고 건설관리 업무를 인도 엔지니어링센터를 통해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다. 테크닙은 1984년 이후로 아부다비에서 직접 EPC업무를 수하고 있다. 테크닙 아부다비에서는 인도인 위주로 구성된 1,5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샤자에 본사를 둔 페트로팩은 영국 회사가 아니라 실제로는 아랍계 EPC회사다. 페트로팩은 영업에는 영국인을, 경영에는 아랍인을, 수행에는 인도인을 적절하게 활용해 중동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다수의 인도인으로 구성된 페트로팩은 본사만 샤자에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인도인 관리자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사이펨, 테크닙, 페트로팩, 테크니몽 등은 여느 인도회사와 다를 바가 없다. 인도가 대세인 것이다.
인도의 대표적인 EPC 업체인 L&T, 도쌀, 펀지로이드의 3개사는 중동에서 발주되는 파이프라인 공사를 거의 도맡아 이 분야의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가 됐으며, 이제는 프로세스 플랜트의 EPC에 공격적으로 진입하면서 한국업체의 대항마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중동은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메마르지 않는 건설시장이다. 중동에서 승리해야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라 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이 중동시장을 선점했다. 그러나 2010년이 되면서 한국에서하이드로카본 EPC업계의 빅 5로 대표되는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이 성실함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1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 뒤를 현대중공업, 대우건설, 한화건설이 쫓고 있다. 그러나 해외사업에서의 막대한 손실과 함께 저가수주 현장이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 원화 강세, 중동의 불안한 정세, 이라크 내전, 유럽의 저가 공세, 중국과 인도의 추격 등을 감안하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유럽을 대표하는 테크닙, 사이펨,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의 3사, 아랍의 페트로팩, 그리고 일본의 JGC 등 5인방이 한국업체와 더불어 중동 EPC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경쟁자로는 한국업체의 저격수인 대만의 CTCI, 그리고 풍부한 인력과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의 사이노펙과 HQCEC가 등장했다. 아울러 2014년은 인도를 대표하는 L&T, 도쌀, 펀지로이드의 3개사가 본격적으로 EPC시장에 들어오는 원년이 됐다.
어디에서나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정글의 법칙은 적용된다. 바로 5년 전에 미국, 유럽 및 일본의 업체들이 그랬듯이, 한국도 EPC기능만으로 인도와 중국과의 경쟁해서 우위에 설 수 없다. 중동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았지만 한국업체는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당연히 변화하는 시장 규모에 맞게 조직과 전략을 재편성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과 더불어 합종 연횡하는 시대다. 발주처, 경쟁업체, 후발업체, 벤더, 시공체들과의 전방위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우물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 능동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유럽과 일본의 경쟁자들과 만나 친선을 도모하고 클럽화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 점유율 1위의 한국 업체들이 해야 할 일이다. 더 나아가 인도업체들과 동맹을 맺고 인도 기술자를 대거 활용하고 아웃소싱을 넖히는 것이야 말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지름길이다. 그들은 우리가 손을 내밀어 리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