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정부가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정책이 초래한 결과라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최근 10년간 대(對)중국 무역 제재가 본격화되며 중국산 중간재 수요가 한국산으로 대체되고,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가 급증한 것이 주요 배경으로 지목됐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한미 양국의 상호보완적인 구조의 맥락과 대미 무역흑자의 정당성을 설득 논리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함께 제시됐다.

#중간재 중심 대미 수출액, 미국 생산과 함께 컸다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글로벌 관세 폭격 속에서 지난해 미국에 8번째로 큰 무역적자를 안긴 한국은 충격을 최소화할 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13일 산업연구원은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단편적인 통상 압박에 대한 구조적 반론을 제기했다. 빠르게 늘고 있는 한국산 중간재·자본재의 대미 수출은 미 제조업의 한국산 의존도 증가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며, 이는 2015년부터 중국에 대한 견제가 확대되고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가 맞물려 강화됐다는 해석이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산 중간재·자본재의 대미 수출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산업 공급망의 필수 고리인 반도체, 철강, 이차전지, 석유제품 등 대표 중간재 품목들은 지난 4년간 대미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수입은 2015년 5040억 달러에서 2023년 4626억 달러로 감소했다.
특히 생산탄력성(미국 생산이 1%포인트 늘어날 때 한국산 수출의 증가비율) 확대 흐름은 미국 제조업 생산과 한국의 중간재·자본재가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는 근거로 거론된다. 분석에 따르면 2016년 중간재(IT 외)가 1.21에서 1.28로 상승했고 자본재도 2020년 1.05에서 4년 만에 2024년 1.10까지 도달했다.
이 같은 변화에는 단순한 시장 논리가 아닌 미국의 대중국 견제 등 지정학적 요소가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중 수입은 감소세를 이어갔고 그 공백을 한국이 상당 부분 채웠다. 미국이 중국을 멀리할수록 한국은 더 가까워진 셈이다.
동시에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도 급증했다. 2014년 400억 달러에 불과하던 누적 투자액은 2023년 1300억 달러에 육박한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10년간 43% 증가해 1만 5000개사를 넘어섰는데, 이들 기업이 필요한 자재의 59%를 여전히 한국 본사에서 조달하면서 수출 증가의 주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미 연결고리 재조명, 숫자 대신 ‘구조’ 말해야 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국을 상대로 25%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며 자국의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된 해당 관세 부과는 90일간 유예됐지만 한국의 대미 수출액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맞대응보다 협상을 통한 관세율 인하 또는 폐지 원칙을 정하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조선 분야를 비롯해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등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사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여나가고 상호관세율 인하 또는 폐지를 얻어낸다는 각오다.
보고서는 한미 간 산업 연계 구조를 바탕으로 무역흑자의 정당성을 통상 협상의 논리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치로만 판단되는 흑자 논리를 넘어, 미국 산업의 파트너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미국 산업 현장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고율 관세를 피할 실질적인 외교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결코 불공정한 결과가 아니라, 양국 산업 간 상호보완적 구조에서 비롯된 정당한 성과임을 미국 측에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며 “향후 통상 협상에서도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주도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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