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신증권이 라임펀드를 판매한 직원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불완전판매로 인해 회사가 손해를 입었으니 판매 직원에게 보상을 받겠다는 건데, 개별 직원에게 청구된 보험금은 최대 2억 4000만 원에 달한다. 앞서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다수의 금융사가 수천억 원대 배상금을 지급한 가운데, 금융사가 영업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전례 없는 상황에 업계의 눈길이 쏠린다.

대신증권이 가입한 보험은 SGI서울보증의 신원보증보험으로, 회사가 직원으로 인해 손해를 입으면 보장을 받는 상품이다. 회사가 보험금을 받으면 보험사가 직원에게 보험금을 청구한다. 대신증권 노조에 따르면 추심 대상은 대신증권 반포WM센터에서 라임펀드를 판매한 영업 직원 12명이다. 총금액은 약 18억 원으로 산정 금액은 인당 5000만 원에서 2억 4000만 원까지 다양하다.
8일 대신증권 노조(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대신증권지부)는 회사 본사 앞에서 직원 대상의 구상권 청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라임펀드 판매 직원과 라임펀드피해자모임 대표도 참석했다. 노조는 금융감독원 앞에서도 100회 넘게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구상권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오병화 노조 지부장은 “라임펀드 사태는 최대 주주 일가와 경영진의 무책임한 상품 선정, 리스크 관리 실패로 인한 조직적인 문제였다. 직원은 회사의 방침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수억 원대의 구상권 청구는 단순한 손해배상 문제가 아니다. 잔인한 처사이자 경제적 살인 행위”라고 역설했다.
라임펀드 사태란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던 펀드의 환매 중단으로 수조 원대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른바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시작이기도 하다. 사태 발생 후 상품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점과, 증권사 등 금융사가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후 여러 금융사에서 투자자와의 소송전이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분쟁조정, 금융사 제재 등을 진행했다.

대신증권은 라임펀드의 주요 판매사 중 하나다. 2021년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대신증권의 영업점(반포WM센터)에서 장기간 불완전판매가 일어났음에도 본사가 이를 통제하지 못한 점을 들어 투자자(1명) 손해배상 비율을 최고 한도인 80%로 책정했다. 반포WN센터장 등 라임펀드 판매 임직원 관련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회사의 내부통제가 미흡했다고 봤다.
직원들은 회사의 구상권 행사에 반발하며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라임펀드를 판매한 직원 이 아무개 씨는 “보험사를 통해 구상권을 청구하기 전 직원에게 변상 명령을 하고, 직원이 거부하면 그때 보험사고가 되는 건데 변상 명령 자체가 없었다”라며 “청구 금액의 기준도 모호하다. 어떤 직원은 펀드 판매금의 1%가 책정됐는데 또 다른 직원은 80%가 책정된 식”이라고 말했다.
신원보증보험 지급 절차에서, 통상 보험사는 피보험자인 회사의 보험금 청구가 접수되면 심사 과정을 거친다. 회사와 직원 양측의 의견을 듣고 직원의 이의 제기를 거친 뒤 지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현재는 추심 전 직원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로 보인다.
청구 대상인 직원들은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 이 씨는 “보증보험과의 상담에서 회사(대신증권)가 지속적으로 (SGI서울보증에) 보험금 청구를 요구한다고 들었다. (직원이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중단하려면 회사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라며 “소송하기 전에 회사와 조정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노조 외에는 소통 창구가 거의 없다”라고 토로했다.

대신증권은 구상권 행사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문책성 조치라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이번 신원보증보험 청구는 직원들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책임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이루어진 최소한의 조치”라며 “불완전판매 근절은 회사 내부통제 시스템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현장 영업 직원의 인식의 전환과 자발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회사가 이미 1068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고객에게 지급했고, 이번 보증보험을 통해 직원에게 청구된 금액은 전체 금액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소 금액”이라며 “보증보험을 통해 직원들에게 부과될 경제적 부담은 불완전판매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가 라임펀드 사태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한다고 반박한다. 이 씨는 “회사에서는 배임이라고 하나 공동 책임이 있고, 보험금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직원 개인의 책임으로 사태를 결론짓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오 지부장도 “임원이나 책임자급이 아닌 일선 직원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처사이자 전례 없는 행위”라며 “사실상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대신증권이 라임펀드를 시작으로 손실이 난 다른 펀드 또한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노조는 회사가 위험 상품 판매를 압박하면서 개별 직원에게 책임을 지운다고 주장한다. 오 지부장은 “최근 독일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229호 펀드(이지스 트리아논펀드)’가 전액 손실이 났다. 개인 투자자에게 공모펀드로 판매한 상품으로, 회사가 해당 펀드의 손실을 대위변제한 뒤 판매 직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며 “회사와 윗선으로부터 위험 상품을 판매하라는 압박을 받는 직원이 이에 대한 증거를 모으기는 쉽지 않다. 직원들은 초조하게 현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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