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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리포트] 키스 오브 라이프 '흑인 흉내'가 문제 되는 이유

K팝 아이돌의 '문화 전유' 또 발생…기획형 아이돌과 자율형 아이돌 모델 적절히 조화시켜야

2025.04.10(Thu) 11:23:45

[비즈한국] 흑인들이 얼굴에 옅은 황색 분칠을 하고 머리에 갓을 쓴 채 한국말을 쓰며 한국인인 것처럼 생색을 낸다면 어떨까? 한국인이라면 기분 나쁠 것이다. 더구나 어떤 아티스트가 그런 콘셉트로 활동을 한다면 더욱 불편하게 생각될 수 있다. 

 

과거엔 거꾸로 우리 K팝 아티스트들이 흑인 분장과 스타일을 흉내 내서 문제가 되었다. 2012년 보이그룹 ‘비스트’, 여성그룹 ‘버블 시스터즈’의 흑인 분장이 해외에서 논란이 된 바가 있다. 특히 그룹 비스트 멤버 이기광은 곱슬머리에 얼굴을 검게 칠하고 귀고리를 단 채 표정과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했다. 과거 유머 프로그램 ‘쇼비디오 자키’의 시커먼스 캐릭터 분장과 유사했다. 

 

아이돌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가 흑인 래퍼 여자친구 콘셉트로 헤어스타일 등을 따라했다가 문화 전유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진=키스 오브 라이프 인스타그램

 

다른 비유를 해보자. 만약 흑인 아티스트가 단군왕검의 이미지를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장식품처럼 사용했다면 어떨까. 한국사람 누구나 단군왕검을 신처럼 받들어 모시진 않지만 그래도 단군을 희화화했다면 그걸 보는 한국인은 대부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블랙핑크는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 힌두교 신 가네샤를 등장시켜 인도인들의 항의를 받았다. 지혜와 행운의 신 가네샤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 가운데 하나로 가네샤 축제도 따로 있을 정도다. 이런 가네샤를 의자 밑바닥에 두었으니 그들이 분노한 것도 이해가 간다.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 전유’라고 한다. 사전에서는 다른 문화나 정체성의 구성원이 하나의 문화나 정체성의 요소를 채택하는 것이라고 ‘점잖게’ 표현한다. 이것은 남의 문화를 흉내 내거나 모사하는 행위에서 발생한다. 흉내와 모사를 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그 대상을 일정하게 특정해야 한다. 흑인이면 흑인의 외모라든가 그들의 패션스타일 등 구체적인 특징을 잡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대상의 본질과 맥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불쾌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저작권이나 초상권 같은 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도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흉내나 모사 그 자체는 차치하고라고 그 태도가 불쾌함을 불러일으킨다. 남의 문화를 잘 안다는 듯이 굴고, 그들을 웃고 즐기는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 말이다. 흑인 음악과 스타일은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노예 생활의 고통 속에서 탄생했다. 흑인이 아니고 그들의 현실과 고통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함부로 흉내 내서는 곤란하다. 

 

최근 불거진 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의 문화 전유 사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문화 전유 현상에 대해 경계령이 내려져 K팝 그룹과 소속사들이 주의하는 상황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흑인 래퍼의 여자친구 콘셉트를 재현​하면서 땋은 머리, 아프리칸 브레이즈(African braids)​를 했다. 아프리칸 브레이즈는 단순히 헤어스타일이나 멋의 차원으로 볼 것이 아니다. 흑인의 곱슬머리가 갖는 태생적인 한계를 미학적인 수준으로 극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 피어난 승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키스 오브 라이프는 이 같은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헤어스타일을 흉내 내고 흑인 원어민인 듯 영어를 사용하며 조롱 섞인 표현을 썼다. 흑인 음악을 취할 수는 있지만, 흑인 문화의 정체성을 체화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

 

과거 박재범이나 엑소의 카이가 한 드레드 헤어 스타일도 문화 전유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드레드 스타일이란 이름은 과거 노예선의 흑인을 보고 백인들이 내뱉은 ‘끔찍하다(dreadful)’는 말에서 비롯했다. 이런 헤어스타일을 취한 아티스트들이 과연 그 기원과 흑인들의 고통을 알고 했을까 싶다. 단지 멋으로 승화한 결과물만 편취하는 셈이다. 더구나 상업적 성공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 사용했다면 흑인의 고통을 그저 성공의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 

 

‘키스 오브 라이프’는 자필 편지를 올려 사과하긴 했지만, 국내외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거셌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 전유 현상에 대한 경각심은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빈번해질 수도 있을 듯싶다. K팝 아이돌그룹이 기획형에서 자율형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이후 아이돌 멤버가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SNS로 대중과 소통하는 일이 늘었다. 그냥 게시물을 올리는 수준이 아니라 라이브 방송도 빈번하게 한다. 자율형 아이돌일수록 소속사 차원에서 필터링하는 과정이 없기에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기획형 아이돌은 한계도 있지만 기획과 조율, 제어라는 장점도 있다. 이 같은 기획 전략과 자율적 활동의 장점을 잘 융합해야 문화 전유 같은 현상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K팝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타 문화를 존중해야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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