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구름. 국어사전은 구름의 뜻을 이렇게 정의한다. 공기 중을 떠다니는 물방울. 하지만 천문학자들에게 구름은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쓰인다. 꼭 지구의 하늘에 떠 있을 필요도 없고, 꼭 물방울일 필요도 없다. 그저 넓은 공간에 크고 작은 입자들이 퍼져 있다면 모두 구름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물방울만큼 작을 필요도 없다. 수백 수천 km에 달하는 거대한 소천체들, 얼음 덩어리들이 떠 있어도 천문학자들에겐 똑같이 구름이다.
대표적으로 태양계 외곽을 에워싸고 있을 것으로 알려진 오르트 구름이 있다. 오르트 구름은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은 혜성들이 모여 있는 혜성의 발원지, 고향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굳이 “에워싸고 있는”이 아니라 “에워싸고 있을 것으로 알려진”이라는 다소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 이유는 오르트 구름의 실체가 아직은 관측을 통해 입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천문학자들 대부분은 오르트 구름이 있을 거라 믿는다.
보통 구글에서 오르트 구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는 비슷하다. 하얀 점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넓고 둥글게 퍼진 모습이다.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보인다. 현재 추정되는 오르트 구름의 규모는 매우 거대하다. 태양으로부터 1만 AU에서 최대 10만 AU까지 크고 작은 얼음 부스러기가 퍼져 있다고 추정한다. 이 정도면 거의 광년 단위에 맞먹는 규모다. 아득히 먼 곳에 놓인 부스러기에까지 태양의 중력은 힘을 과시한다. 이렇게 부스러기들이 둥글게 모여 오르트 구름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상상한 오르트 구름의 모습이 완전히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흥미롭게도 최근 분석에 따르면 오르트 구름은 단순히 둥글고 거대한 민들레 씨앗 구름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천문학자들이 새롭게 제시한 오트르 구름의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형상이다.
사실 오르트 구름이라는 이름이 워낙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부 근본을 따지는 사람들은 외픽 구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에른스트 외픽은 1930년대에 이미, 아주 가끔 태양계 안쪽으로 날아오는 장주기 혜성들의 기원이 태양계 외곽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일종의 혜성 저장고에 해당하는 구조가 태양계 최외곽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양 중력이 지속적으로 소천체들의 궤도에 조금씩 섭동을 일으키면서 그 중 일부가 가끔씩 원래의 고향을 벗어나 길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며 날아온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오르트 구름의 원형을 가장 먼저 상상했던 셈이다.
특히 혜성의 가장 미스터리한 점 중 하나는 혜성이 너무 빈번하게 관측되는 반면, 개개의 혜성은 너무 연약하게 보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혜성들은 태양에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금방 전체가 승화되고 파괴되었다. 대부분의 혜성들, 특히 극단적으로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면서 날아오는 혜성들 대부분이 태양과의 첫 번째 조우가 곧 마지막 조우인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날아오는 혜성들마다 바로바로 파괴된다면, 쉬지 않고 매년 다양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혜성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네덜란드 출신의 천문학자 얀 오르트는 이 미스터리를 설명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태양계 최외곽 어둠 너머에 쉬지 않고 혜성을 보내는 거대한 혜성의 저장고가 있다는 것이다.
이후 오르트는 관측된 혜성들의 궤도를 면밀히 분석해 태양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는 원일점의 거리가 대부분 비슷한 거리에 놓여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오르트의 계산에 따르면, 장주기 혜성 대부분이 태양에서 약 2만 AU 떨어진 곳에 원일점을 두었다. 이것은 혜성들이 단순히 (오우무아무아처럼) 태양계 바깥에서 날아오는 외계 물체가 아니라, 태양 주변에 아주 길게 찌그러지면서도 닫혀 있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긴 주기를 두고 여행을 반복하는 존재임을 의미했다. 오르트의 추측을 기반으로 천문학자들은 태양으로부터 비슷한 거리에 멀리 떨어진 채 다음 여행을 기다리는 얼음 조각들로 바글바글한 세계가 있을 거라 상상했고, 그 얼음 조각의 구름에 오르트 구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르트 구름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관측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 얼핏 듣기에는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그토록 거대하게 퍼진 혜성들, 얼음 부스러기들의 구름이 우리 태양계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면 진작 발견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일단 예측되는 오르트 구름의 규모가 너무 거대하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크게 안쪽과 바깥쪽으로 오르트 구름을 구분하는데, 안쪽의 오르트 구름, 힐스 구름은 태양으로부터 1만 AU에서 시작한다. 일찍이 태양계 탈출을 꿈꾸며 떠난 보이저 탐사선도 아직 오르트 구름의 안쪽 경계에 진입조차 못 했다. 적어도 앞으로 300년은 더 항해해야 오르트 구름 안쪽 경계에 진입한다.
가장 바깥의 외곽 오르트 구름은 최대 2~3광년 거리까지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이저가 계속 같은 속도로 항해를 이어간다면 앞으로 7만 년 가까운 시간이 더 지나야 비로소 오르트 구름을 탈출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오르트 구름은 거대하다.
더 큰 문제는 오르트 구름이 전부 밝게 빛나지 않는 차가운 얼음 부스러기만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태양빛을 잘 반사하는 얼음 조각이더라도 거리가 너무 멀고, 조각의 크기도 너무 작다. 따라서 현재 망원경의 성능으로는 오르트 구름을 떠도는 부스러기들의 희미한 빛을 직접 관측하는 게 매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오르트 구름 부스러기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면, 그 너머 훨씬 먼 거리에 떨어진 다른 별과 은하를 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것도 오해다. 오르트 구름은 매우 밀도가 낮은 옅은 구름이다. 오르트 구름은 약 1조 개의 혜성과 얼음 조각들로 채워져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반경 2~3광년까지 넓게 퍼져 있다. 실질적으로는 한 변이 수십 AU에 달하는 거대한 박스 안에 꼴랑 천체 하나만 있는 수준으로 밀도가 매우 낮다. 지구 대기권의 분자 밀도는 1cm^3 부피 안에 10^19개의 분자가 채워져 있다. 단순히 같은 부피 안에 입자가 몇 개나 채워져 있는지, 개수 밀도로 비교하면 오르트 구름은 지구 대기권은커녕 일반적인 성간 물질보다도 훨씬 밀도가 낮다. 그래서 더 먼 우주를 관측하는 데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르트 구름의 거대한 규모는 이 구조를 매우 오묘한 위치에 놓이게 만든다. 분명 태양의 중력으로 붙잡힌 부스러기들이지만,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태양에게서 받는 중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만약 주변에 엇비슷한 중력으로 끌어당기는 또 다른 천체가 등장하면, 이들은 태양계를 떠나 다른 별에 달라붙을 수 있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태양계를 멀찍이 스쳐지나간 다른 천체들에 의해 오르트 구름에 거대한 섭동이 벌어졌고, 그때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안쪽 행성으로 혜성들의 대규모 융단 폭격이 가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심지어 공룡 멸종의 원인을 오르트 구름의 요동에서 찾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약 7만 년 전, 오르트 구름 곁에 다가와 한 차례 오르트 구름을 뒤집어 놨을 거라 추정하는 ‘숄츠의 별’이 있다.

중력 섭동은 단순히 인접한 별 차원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 은하도 매우 강력한 중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그 안에 갇혀 있는 태양계, 오르트 구름도 주변의 수많은 별로 채워진 우리 은하 자체의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태양계 자체가 거대한 우리 은하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사방에서 오르트 구름을 끌어당기는 듯한 일종의 조석력을 받게 된다. 그러는 중에 태양계는 오르트 구름을 이끌고 천천히 회전한다.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태양계를 품고 있는 우리 은하의 존재를 간과해왔을지 모른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천문학자들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은하 규모의 조석력이 지속적으로 작용된다면, 오르트 구름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오르트 구름은 단순한 구형의 구름이 아니라, 우리 은하처럼 뚜렷한 S 자 모양의 나선팔을 그리는 형태로 변했다.
더 흥미로운 차이는 오르트 구름의 안쪽 경계에서 드러났다. 기존 그림에서 오르트 구름은 외곽이 민들레 씨앗처럼 둥글게 퍼져 있지만, 태양계 안쪽에 다가가면 마치 둥근 도넛과 같은 모습으로 바뀔 거라 추정했다. 안쪽 오르트 구름은 거대한 버전의 카이퍼 벨트처럼 고리 모양을 유지하며, 외곽의 오르트 구름에 비해 외부 섭동의 영향을 덜 받는 안정된 구조로 존재할 거라 추정했다. 하지만 새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오르트 구름은 안팎 모두 뚜렷한 나선팔 모양을 그린다. 게다가 이런 나선팔 모양의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가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42억 년 전부터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S 자 모양의 오르트 구름은 지구의 공전 궤도면에 약 30도 기울어진 방향으로 퍼져 있다.
이번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오르트 구름을 찾기 위해 엉뚱한 곳을 뒤지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동안은 카이퍼 벨트 너머에 점차 밀도가 옅어지는 희미한 고리가 펼쳐져 있을 거라 기대하며 지구 공전궤도면, 즉 황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하늘에서 오르트 구름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 시뮬레이션은 황도면에서 고개를 크게 틀어야만 찾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번 발견은 단순히 오르트 구름이 당초 생각한 것보다 좀 더 꼬여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태양계가 그 경계 너머 주변의 은하계 공간과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우리 태양계가 외부 세계의 중력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받는지, 또 그에 의해 형태가 바뀔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발견일 수 있다.
만약 이번 발견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천문학의 역사 속 구름은 다시 한번 절묘한 우연을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 20세기 초, 천문학자들은 밤하늘에 등장한 나선 모양의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발견했고, 그 정체를 고민한 끝에 우리 은하 너머 거대한 우주를 만났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오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구름 역시 단순한 공 모양이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모양으로 등장했다. 태양계 너머 세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천문학자들의 사전에서 ‘구름’이라는 단어에는 ‘소용돌이치는’ 무언가라는 정의가 포함되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5arXiv250211252N/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사이언스] '과녁 은하'와 뉴턴의 사과
·
[사이언스] 인류가 '별빛'을 잃어버린 천문학적 전환점
·
[사이언스] 나선팔 은하의 기원을 밝혀라
·
[사이언스] 구글 양자 컴퓨터가 '다중우주'를 입증한다?
·
[사이언스] 왜 갑자기 천문학 난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