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늘도 건설 현장에 출근한 노동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건설업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 가운데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이나 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는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2022년 1월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한 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여전히 세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건설 현장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다. 2021년 1월 제정돼 이듬해인 2022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건설 현장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에서 처음 시행됐다. 이 법에 따라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적용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불황형 감소에도’ 건설 현장 사망사고 세 자릿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건설 현장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법 시행 첫해인 2022년 341명에서 2023년 303명(-11%), 2024년 276명(-9%)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세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에서 건설업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53%, 2023년 51%, 2024년 47%로 여전히 전 산업군 중 최고다.
건설 현장 사망사고 원인 1위는 추락이다. 지난해 건설업 사망자 가운데 159명(58%)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져 숨졌다. 전남 여수시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는 지붕 패널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20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했고, 경기 이천시 문화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는 창틀 마감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7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건설업 사망 원인은 물체에 맞음(15%), 부딪힘(6%), 깔림·뒤집힘(5%), 무너짐(5%) 순으로 많다.
최근 건설업 사망자 감소마저도 건설업계 불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토교통부 착공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착공 동수는 2023년 11만 5783동, 2024년 10만 9155동으로 각각 전년 대비 24%, 6%가량 감소했다. 건설업 취업자 수 역시 2023년 211만 4000명, 2024년 206만 5000명으로 각각 0.4%, 2.3% 줄어들었다. 경기 침체로 건설업계 일감이 줄어든 만큼 건설 현장 사망자 감소를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효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셈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곤두박질치고 있는 건설업 취업자 수나 착공 물량을 고려하면 건설업계 사망자 수는 사실상 감소했다고도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으로 정부와 기업의 인력과 예산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사망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기존 법 제도를 정비하고 예방과 감시 활동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안전 체계 구축, 사업주 처벌도 시작됐지만
물론 중대재해처벌법이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후로 회사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선임하고 안전 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정비했다. 이후 CSO와 실무조직, 내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내규를 다듬고 현장 위협 요소를 점검하는 회의도 개최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CSO를 새로 선임하고 안전 전담 조직을 신설 또는 확대 개편해 운용하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시작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건 중 지난해 말까지 31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이 가운데 29건은 유죄(실형 4건·징역형 집행유예 23건· 벌금형 2건), 2건은 무죄가 선고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판결이 16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사건 당시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으로 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1건을 제외하면 모두 유죄 선고가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죄 사건에서 주로 인용된 위반 조항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24건)과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22건)이 가장 많았고, △안전보건목표 및 경영방침 설정(8건), △전담조직 설치(2건), △필요한 예산편성 및 집행(6건), △도급 시 산재예방능력 평가기준 마련(8건) 등의 위반사항도 유죄 판단 근거로 인용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죄 선고가 난 사건 1건당 인용된 위반 조항 개수는 평균 3개였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후로 법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서류상 인력과 조직을 갖췄지만 실제 건설 현장에서 이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비용 부담으로 앞서 법이 요구하는 형식조차 갖추지 못해 처벌 대상에 오르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실질적인 안전 체계가 자리잡도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집었다.
#중대재해처벌법 두고 재계 “완화” vs 노동계 “강화”
재계와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앞서 대한건설협회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처벌법 이름을 ‘중대재해예방법’으로 바꾸고, 중대재해 기준과 처벌을 완화해달라고 국회에 건의했다. 경총도 앞선 보고서에서 “유사한 선고가 계속될 시 잘못 만들어진 법률로 중소기업 대표만 계속 처벌받고, 산재 예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 적용 혼선과 과도한 처벌 문제가 지속될 것으로, 정부와 국회가 법률 및 시행령 개정을 합리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맞선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지난 1월 성명을 내고 “중대재해를 반복하는 대형건설사에 대한 처벌은 현재까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빠르게 수사-기소-처벌해야 마땅하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의무규정을 더욱 명확히 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징역형으로 더욱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건설 현장의 죽음을 막으려면 원청 건설사 사업주부터 엄히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마저 적용받지 못하는 산업재해도 있다. 앞서 서울 마포구 인우종합건설 근린생활시설 공사현장에서 미장공으로 일하던 고(故) 문유식 씨(사망 당시 72세)는 지난해 1월 안전 난간이 설치되지 않은 비계에서 안전모 없이 미장 작업을 하다 2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문 씨가 사고를 당한 날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공사금액 50억 미만’인 해당 건설 현장까지 확대되기 5일 전이었다. 이 건설사 대표는 기소를 면했고, 현장소장인 박 아무개 씨와 건설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각각 1심에서 징역 1년과 벌금 2천만 원을 선고 받았다.
고(故) 문유식 씨 딸인 혜연 씨(34)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 조치를 강제할 권한이 있는 사업주의 의무 미이행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한, 아버지와 같은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매년 수많은 노동자가 안전장치 하나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그 중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는다. 안전모 지급과 안전난간 설치라는 기본 중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아 일어난 죽음은 ‘개인의 불운’이 아닌 ‘기업 구조적 책임’에서 비롯된 참사”라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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