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현지시간) 한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품인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관련 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수출에서 2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시선은 현대자동차(현대차)그룹에 집중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70만 대를 판매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번 관세 정책에 따라 현대차의 올해 미국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등 현지 생산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생산 시설 완공 전까지는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3월 24일(현지시간)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등 주요 분야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행정부 정책에 대응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해 미국에서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 현지생산 120만 대 체제 구축을 위해 총 86억 달러(약 12조 6400억 원)를 투자한다. 부품·물류·철강 부문에서는 총 61억 달러(약 9조 원)를 집행하고,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서는 63억 달러(약 9조 26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수입품에 대해 강력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유민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발표 후 “약 1조 5000억~1조 8000억 원 내외의 보편관세 리스크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도 “국내외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과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라며 “과감한 투자와 핵심 기술 내재화, 국내외 톱티어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미래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투자 발표가 무색하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5일부터 기본관세 10%가 적용되고, 9일부터는 국가별 관세가 시행돼 25%로 관세가 오른다. 국산 자동차는 그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 관세 없이 수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량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에서 앨라배마공장, 조지아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세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100만 대 수준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미국 시장 판매량은 총 170만 대다. 미국 현지 공장만으로는 판매량을 맞출 수 없다.
또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의 상당수는 미국 외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차로서는 2028년 미국 생산 시설 구축 전까지는 상당한 관세를 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2028년까지 실적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핵심 부품군에 대한 관세를 부과 받게 돼 현지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고, 완성차의 수출 감소 여부에 따라 납품 물량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자동차 산업 밸류체인(자동차, 자동차 부품, 2차전지 등)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며 “자동차는 2024년 기준 전체 대미 수출의 26.8%, 무역수지 흑자의 약 60%를 차지하는 등 국내 무역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수출 품목이므로 국내 자동차 산업을 넘어서 내수 경기 전반에도 일정 부분 파장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로서는 미국 투자를 약속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관세 부과 유예를 받아내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정책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해외 투자나 정책적인 부분은 정부 관계자들의 조율을 거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대미 투자를 발표한 게 이례적인 케이스인데, 국내 정치권이 혼란에 빠져 있어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실제 국내 정치권은 미국의 관세 정책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3월 27일 삼청동 공관에서 경제6단체장과 만나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국익과 산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며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정부와 소통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4월 1일 정의선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초청해 제1차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다. 한 대행은 이날 “경제안보전략 TF를 중심으로 기업과 함께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한편, 민관 네트워크를 총결집해 전방위적 아웃리치를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관세 정책은 당장 4월 5일(현지시간) 0시부터 시작된다. 현대차로서는 하루가 급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고는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단독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관세 같은 건 일개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국가 간의 문제”라며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 외에는 현재로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대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가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가격을 인상하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악순환에 놓일 수 있다. 현대차는 당장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수익성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3일 ‘2025 서울모빌리티쇼 미디어데이’에서 “관세 발표를 봤고, 그 영향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에서 가격을 올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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