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엔터

'자강두천' 천재 외과의사들의 날카롭고 잔혹한 대립, '하이퍼나이프'

사이코패스 제자와 소시오패스 스승의 메스 대결…박은빈·설경구의 연기 격돌 '짜릿'

2025.04.01(Tue) 16:50:39

[비즈한국] “저는 선생님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말간 얼굴에 광기에 찬 눈빛을 지닌 여자의 발언이다. 대체 선생님이 누구이길래, 사람이 사람의 면전에 대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까. 심지어 선생님은 악성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며, 선생님과 이 여자는 과거 끈끈한 사제 관계였다. 예고로 나온 대사 한 마디로 온갖 궁금증을 일으킨,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 이야기다.

 

선생의 죽음을 바라는 여자, 정세옥(박은빈)은 낮에는 평범한 시골 약사로 일하고, 밤에는 ‘섀도우 닥터’로 불법 수술장에서 생명을 살린다. 열일곱 살에 연신내 의대를 수석으로 입학했을 만큼 과거 천재로 불렸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신세다. 세옥이 죽기를 바라는 선생님 최덕희(설경구)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로, 세옥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아꼈으나 결국 그를 내친 인물. 세옥에게서 매몰차게 돌아섰지만, 6년 후 자신에게 악성종양이 생기면서 섀도우 닥터 세옥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를 찾아가 자신의 수술을 부탁한다.

 

덕희는 과거 세옥을 무참히 내쳤으나 자신의 뇌에 종양이 생기자 세옥에게 수술을 부탁하러 온다. 그러나 세옥이 이를 들어줄 리 만무하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자신이 직접 내친 제자를 찾아가 자신의 수술을 부탁하는 상황도 충분히 아이러니한데, ‘하이퍼나이프’는 여기에 더한 설정을 부여한다. 과거에도 ‘정상은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던 정세옥은, 자신에게 방해되는 인물을 스스럼없이 죽일 수 있는 살인마의 모습을 보인다. 3월 19일 공개된 1, 2화에서, 자신에게 집적거리는 성범죄 전과자를 유인해 거침없이 나이프를 휘두르며 피칠갑한 얼굴로 웃는 세옥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의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세계 최고 신경외과 의사인 덕희와 그를 존경했던 세옥. 세옥은 덕희에게 모든 걸 가르쳐달라며 집착을 보였고, 덕희 또한 자신의 모든 걸 세옥에게 가르칠 심산이었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더 ‘골때리는’ 상황은, 세옥의 이런 면모를 덕희가 잘 알고 있다는 것. 2화 마지막에서 성범죄자 전과자 시신을 산에 묻으려는 세옥을 발견한 덕희는 이어진 3화에서 묻는다. “너무 얕게 판 거 아냐?” 자신의 수술을 맡기고자 세옥의 비밀을 묻어주려는 건가 싶었으나, 그도 아님이 밝혀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서사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며 사람을 죽이는 세옥, 그런 세옥의 비밀을 눈감아주는 것을 넘어 자신 또한 상황에 따라 냉혹한 판단을 내리는 소시오패스 성향의 덕희. 서로의 목숨줄을 쥔 둘의 관계가 ‘하이퍼나이프’의 핵심이다.

 

세옥이 확실시되었던 보스턴 의대 유학을 무슨 이유에선지 가로막은 덕희. 그로 인해 둘은 틀어지게 된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하이퍼나이프’를 보면서 미국 드라마 ‘덱스터’를 떠올릴 사람도 많을 것이다. ‘덱스터’는 혈흔 분석가이자 법의학자지만 뒤로는 몰래 흉악 범죄자들을 살해하고 다니는 덱스터 고든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을 가진 정세옥이 뒤로는 태연하게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지점이 있다. 그런데 ‘하이퍼나이프’는 그런 세옥에 더해 그 인물과 기질이 비슷하면서도 또 결은 다른 덕희를 내세워 긴장과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유학 건으로 격렬히 항의하자 덕희는 세옥에게 수술금지령을 내린다. 밥 먹고 잠자는 것보다 수술을 사랑하던 세옥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를 봐야 하는 이유는 박은빈과 설경구, 두 배우의 연기에 있다. 박은빈은 ‘연기 변신’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변화무쌍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배우. 아역 배우 시절부터 단단한 연기를 선보여 온 그는 남장여자 왕(연모)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 변호사(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5년 만에 무인도에서 구조된 가수 지망생(무인도의 디바) 등 쉽지 않은 역할을 120% 소화하며 대중의 시선을 붙들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았지만, ‘하이퍼나이프’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충실한 천재의사라니. 저 작고 가녀린 체구로 칼과 비릿한 웃음을 휘날리며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라니. 이글이글거리는 강렬한 광기의 눈빛이 제대로 화면을 장악한다. 

 

‘섀도우 닥터’ 세옥에게 수술을 연결시켜주고 마취를 담당하는 한현호와 세옥에게 수술을 받고 살아나 세옥의 모든 것을 뒤치다꺼리하는 서영주. 과연 이들의 조력은 세옥을 위한 게 맞을까.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정세옥의 캐릭터를 걸판지게 뛰놀게 만드는 건 최덕희 역의 설경구다. 세옥과 덕희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지만 또 묘하게 다르다.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세옥이 새빨갛게 치솟는 불빛 같다면, 냉철하고 치밀한 덕희는 고요한 푸른 불빛 같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메디컬+스릴러’의 비현실적인 이야기 톤을 고요히 그러나 팽팽하게 붙잡는 설경구의 견고한 연기가 있어, 세옥의 캐릭터 역시 복잡다단하게 빛이 나는 형국이다. 

 

덕희의 숨겨진 면모를 쥐고 있을, 덕희의 의대 동기 김명진. 덕희에게 수술받을 예정이었으나 세옥의 실수로 덕희가 손을 베는 바람에 세옥의 수술을 받고 살아난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자신을 수술로 살려줬다지만 세옥이 살인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돕는 조력자 서영주(윤찬영)나 세옥의 불법 수술장에서 마취를 맡는 의사 한현호(박병은), 덕희로 인해 실종된 것으로 보이는 덕희의 의대 동기 김명진(김학선)이나 최덕희의 친구이자 세옥의 뒤를 쫓는 광역수사대 형사 양 경감(유승목) 등 세옥과 덕희 주변의 인물들 또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긴 마찬가지. 5~6화 예고편에 따르면 앞서 등장했으나 스쳐 지나갈 것으로 보였던 주변인물들의 과거 인연도 얽혀 있는 듯해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뇌 수술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찬 본능적인 인물 세옥.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지만 한없이 잔혹하고 무겁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원하는 것은 무조건 가져야 하는 어린애 같은 모습에 가깝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과연 덕희는 세옥에게 수술을 받게 될까? 세옥의 살인 행각은 어떻게 발각될 것인가? 세옥과 덕희에게 해피엔딩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8부작인 ‘하이퍼나이프’는 이제 반환점을 돈 상태다. 글로벌 OTT 플랫폼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한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에서 1위를 기록했고, 싱가포르와 튀르키예, 일본 등에서 TOP5를 유지하는 등 글로벌 흥행 중인 만큼, 남은 4회차에서도 이런 뜨거운 반응을 유지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세상 모든 엄마·아빠에게 보내는 헌사 '폭싹 속았수다'
· [정수진의 계정공유] '제로 데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실은 엉망진창
· [정수진의 계정공유] '마녀', 대혐오 시대에 꽃피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
· [정수진의 계정공유] 공부에 미친 '맑눈광'이 사실 '힘숨찐'이라면? '스터디그룹'
· [정수진의 계정공유] '원경' 21세기 원경왕후 멋지게 표현한 차주영에게 찬사를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