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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덜어내니 비로소 보이는 카메라의 본질 '시그마 BF'

기존 전문가용 카메라의 복잡성 과감히 제거…미니멀리즘 통해 사진의 본질 담았다

2025.03.31(Mon) 15:21:08

[비즈한국] 필름 이송용 모터 드라이브가 본체에 내장된 1980년대 이후의 35mm 규격 카메라 디자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더 잡기 편하고 다루기 쉬운 인체공학 위주로 진화해 왔다. 그 결과 전문가용 카메라는 방대한 기능과 이를 다루기 위한 수많은 버튼, 돌출부, 복잡한 바디 디자인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기종이 나왔다. 일본 시그마가 공개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BF가 그것이다.

 

시그마는 카메라 바디보다 렌즈로 주로 알려진 제조사. 그래서인지 BF는 고가의 풀프레임 센서를 장착했으면서도 틈새시장을 노린 듯 어딘가 독특하게 출시됐다. 시그마 측은 일상용으로 쓰기엔 너무 복잡해진 현대 카메라의 단점을 개선하고 사진 촬영의 본질을 되살리기 위해 직관적인 촬영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 싶은 요소를 최대한 제거했다. 그 결과 상당히 전위적인 외관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자동차로 치면 줄일 수 있는 부품은 모두 줄여 극한의 경량 드라이빙을 추구한 케이터햄 세븐 정도가 떠오른다.

 

시그마가 출시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BF는 기존 전문가용 카메라의 복잡성과 기능성을 과감히 배제하고,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사진의 본질과 직관성을 추구한 제품이다. 사진=시그마 제공

시그마가 출시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BF는 기존 전문가용 카메라의 복잡성과 기능성을 과감히 배제하고,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사진의 본질과 직관성을 추구한 제품이다. 사진=시그마 제공

 

BF는 처음 보는 사람이 ‘카메라’임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 사각형으로 만든 바디에서 애플 맥북 시리즈가 겹쳐 보인다. 주요 버튼도 기계식이 아니라 눌리는 느낌만 주는 감압식으로 만들었다. 바디 형상이 정확한 직육면체는 아니다. 전면에서 후면으로 갈수록 약간 넓어짐으로써 위에서 보면 사다리꼴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여 지루함을 피했다. 날카롭게 디자인한 모서리는 잡았을 때 어떨까 하는 사용상 우려를 낳기도 한다.

 

미니멀리즘 콘셉트는 조작부에서도 드러난다. 시그마는 BF의 버튼을 다양한 다이얼, 노브, 버튼으로 덮여 있었던 기존 카메라와 달리 원형을 중심으로 한 2가지 형태로만 만들고 다른 모양은 최대한 억제했다. 모든 버튼 디자인은 일관된 가이드라인 아래 규격화·모듈화한 디지털 프로덕트의 구동 화면을 생각나게 한다. BF의 내부 메뉴도 외관과 상통하는 분위기로 단순하게 짜여졌다. 촬영과 관련된 메인 세팅은 라이브 뷰 화면에, 부가 설정은 옵션 메뉴에, 기타 세부 설정들은 시스템 메뉴에 배치하는 등 기존 전문가용 카메라의 메뉴 구조에서 벗어나 직관적 경험 중심으로 심플하게 설계했다.

 

BF의 단점으로는 틸팅이 불가능한 고정식 액정, 적은 단자로 인한 확장성 저하, 별도의 메모리 카드 슬롯을 없애고 내장 메모리 속 파일을 USB-C 단자로만 전송할 수 있게 만든 폐쇄성이 주로 지목된다. 이는 BF를 기존 카메라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서 이 기종을 스마트폰의 일종으로 보면 어떨까.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BF는 의도했든 아니든 스마트폰과 상당히 비슷해졌다. 즉 BF는 좀 과장하면 압도적인 센서 크기와 교환렌즈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 번거로운 조작 과정 없이 빠르게 촬영할 수 있는 점도 스마트폰 카메라와 비슷하다.

 

시그마 BF는 틸팅이 안 되는 액정과 확장성 저하 등의 단점이 지적되지만, 교환렌즈를 가진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카메라의 방향을 제시하며, 기계적 감성을 중시하는 기존 카메라와 전자기술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 간의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시그마 제공

시그마 BF는 틸팅이 안 되는 액정과 확장성 저하 등의 단점이 지적되지만, 교환렌즈를 가진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카메라의 방향을 제시하며, 기계적 감성을 중시하는 기존 카메라와 전자기술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 간의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시그마 제공

 

카메라에 전자공학이 스며든 것은 한참 전 일이다. 그러나 펜타프리즘이 필요한 DSLR이나 기계식 셔터를 쓴 미러리스 카메라처럼 아날로그/디지털이 공존하는 과도기는 꽤 오래 지속됐다. 그 가운데 등장한 BF는 ‘카메라의 완벽한 전자제품화’라는 화두를 던진다. BF 이후의 전문가용 카메라는 교환렌즈 달린 스마트폰을 추구하거나 그 반대로 기계식 조작부를 대거 탑재하여 투박하지만 조작 시 손맛을 지닌 전통적인 기종 2가지로 나뉠 것이다. 화면에 가상 키보드를 띄우는 스마트폰이 대세더라도 전통적인 QWERTY 키보드를 장착한 블랙베리나 외장 키보드를 원하는 아이폰 사용자도 존재하듯, 정답은 없고 옳은 방향도 없다. 다만 BF가 그 분기점이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독자규격 마운트를 채택한 BF가 캐논・니콘・소니 사용자의 수요를 뺏어오긴 어렵다. 그러나 BF의 의의는 다른 곳에 있다. 현재 우리는 기계적 요소가 중요했던 제품들이 전자공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합쳐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자 기술이 발전하며 여러 분야의 제품 디자인이 하나로 수렴되고 있고, BF는 그런 흐름을 카메라 쪽에서 보여주는 기종이다. 포드 F시리즈 픽업/노키아 피처폰보다 테슬라 사이버트럭/시그마 BF의 디자인이 서로 훨씬 가까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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