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과.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과는 총 네 번 등장했다. 첫 번째, 흔히 사과로 표현되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두 번째, 세잔의 정물화에 담긴 사과. 세 번째,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네 번째, 아이작 뉴턴의 머리 위에 떨어졌던 사과다.
흔히 우리는 뉴턴이 단순히 머리 위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사과를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을 발견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뉴턴이 대변하는 과학 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따로 있다. 뉴턴은 사과를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과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붙잡는 지구의 중력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매우 큰 도약이었다.
그 이전까지 인류에게 물리학은 두 가지였다. 지상계를 위한 물리학, 그리고 천상계를 위한 물리학. 지상과 천상은 구성 물질부터 작동 원리까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턴은 두 개로 나뉘었던 세계가 사실 하나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상과 천상을 이해하기 위해 두 권의 물리학 교과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통일된 물리학만으로 땅과 우주를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 구분하던 두 세계를 하나로 만든 것, 땅과 하늘이 모두 동일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야말로 뉴턴의 과학 혁명이 갖는 진정한 가치다.
이제 우린 더 과감해졌다. 지구에서 경험하고 터득한 중력이 그대로 수천만, 수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은하들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은 입증되었다. 중력은 나무 위에 걸린 사과, 그리고 하늘의 달을 넘어 5700만 광년 떨어진 은하에서까지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포착한 은하 LEDA 1313424의 모습을 보라. 굉장히 특이하다. 단순히 두세 개의 나선팔이 휘감은 수준이 아니다. 안쪽에서 바깥까지 둥근 고리 여러 개가 동심원을 그린다. 하나의 거대한 화살 과녁처럼 보인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를 ‘과녁 은하(Bullseye galaxy)’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은하는 일찍이 다른 망원경에 포착된 적이 있지만 이토록 독특한 모습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맨 처음 은하의 모습이 확인된 데이터는 2.5m 크기의 망원경으로 하늘 전역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슬로안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다. SDSS 사진 속에서 과녁 은하는 매우 흐릿하게 보여 겨우 고리 두 개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모습만으로는 이 은하가 이런 놀라운 모습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웠다. 외곽에 고리 한두 개를 두른 은하의 모습은 그리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관측되는 고리 은하들은 중심에 뚜렷한 막대 구조를 두르고 있다. 막대는 은하 중심부 별들의 궤도가 길게 찌그러진 채로 공명을 이루면서 겹치다 보니 만들어지는 구조다. 이런 은하 막대는 외곽의 가스 물질을 은하 중심부로 끌어 모은다. 그러면서 막대 구조 가장자리에서 높은 밀도로 가스가 압축되고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그러는 동안 막대도 은하 자체와 함께 회전하고, 막대 가장자리를 따라서 새로 태어난 별들이 둥글게 분포하게 된다. 이처럼 막대 구조는 고리 형태를 만들고 유지하는 주요한 메커니즘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걸로는 안팎에 고리 두 개 정도를 품은 은하만 설명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SDSS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은하의 이미지를 관측한 레거시 서베이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서베이는 칠레 세로 톨롤로 천문대에 있는 지름 4m 블랑코 망원경으로 우주의 빛을 담는다. 그 덕분에 과녁 은하를 에워싼 고리를 네 개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관측 이미지의 명암 대비를 더 극단적으로 끌어올려서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은하를 에워싼 고리를 무려 일곱 개까지 확인했다. 이전까지 어떤 고리 은하에서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개수다. 이때부터 과녁 은하는 더 이상 평범한 은하가 아니게 되었다.
이 은하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다시 한번 과녁 은하를 겨냥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지구 대기권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훨씬 선명하게, 그리고 더 어두운 고리까지 포착할 수 있다. 놀랍게도 허블이 찍은 사진을 보면 고리가 적어도 8개까지 확인된다! 대체 이토록 복잡하고 화려한 모습의 은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어릴 적 뉴턴의 머리 위에 사과가 떨어졌듯이, 이 은하를 향해 10억 년 전 무언가가 떨어졌다. 원래 이 은하는 지금처럼 복잡한 고리를 품지 않았다. 평범한 은하였다. 그런데 10억 년 전 또 다른 작은 은하 하나가 은하 중심을 거의 관통하다시피 뚫고 지나갔다. 은하 두 개가 서로 정면충돌한 것이다. 이것은 연못에 사과를 던졌을 때, 사방으로 둥글게 파문이 퍼지는 것과 같다. 이번 발견이 더 놀라운 것은 은하 두 개의 정면충돌을 통해 과녁 은하를 설명하는 것이 단순히 상상에 기반한 가설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주 수학적이고 물리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확실한 증거가 확인되었다.

앞서 천문학자들은 커다란 은하를 향해 또 다른 작은 은하가 정면충돌하고 관통했을 때, 사방으로 충격파가 어떻게 퍼져나갈지에 대해서 간단한 수학적 모델을 계산했다. 잔잔한 호수에 사과를 던졌을 때 퍼지는 파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맨 처음에 형성되는 첫 번째 충격파가 가장 먼저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뒤이어 안쪽에 조금 더 작은 두 번째 파문이 발생한다. 그러는 사이 이미 앞서 퍼졌던 첫 번째 파문은 더 넓은 반경으로 퍼지게 되고, 그러면서 파문은 점차 희미해진다. 또 그 사이 더 안쪽에 세 번째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가장 바깥에 퍼진 첫 번째 고리부터 안쪽으로 가면서 더 작은 고리가 계속 만들어진다.
천문학자들은 바깥에 있는 고리와 그 바로 안쪽에 있는 고리의 반지름이 아주 일관된 수학적 비율을 가져야 한다고 추정했다. 이를 식으로 나타내면 아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R(i)/R(i+1)=(2i+1)/(2i-1)
여기서 i는 몇 번째 고리인지를 뜻한다. 가장 바깥에 가장 먼저 퍼진 고리가 첫 번째 고리이고, 바로 그 다음에 안쪽에 만들어진 고리가 두 번째 고리가 된다. 예를 들어 가장 바깥 첫 번째 고리 (i=1)가 두 번째 고리에 비해 몇 배 더 큰지를 계산해보자. i=1을 대입해서 (2*1+1)/(2*1-1)=3/1, 즉 세 배 더 크다는 결과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고리가 세 번째 고리에 비해 몇 배 더 커야 하는지를 계산해보자. i=2를 대입해서 (2*2+1)/(2*2-1)=5/3=1.67, 즉 1.67배 더 커야 한다. 세 번째 고리는 네 번째 고리에 비해 1.4배 커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i를 1부터 쭉 늘려가면서 연이어 만들어진 그 안쪽의 더 작은 고리가 몇 배씩 작아져야 할지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천문학자들은 허블로 촬영한 과녁 은하의 사진 속 고리가 정확히 이 비율을 따르는지를 분석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허블로 찍은 사진 속 과녁 은하의 가장 바깥 고리가 정말 가장 처음 만들어진 첫 번째 고리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 고리보다 더 오래전, 더 넓은 반경까지 퍼진 더 큰 고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사진 속에 찍힌 가장 외곽의 고리가 첫 번째일 경우, 또는 두 번째, 세 번째일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서 연이은 고리의 크기 비율을 비교했다. 그리고 가장 외곽의 고리가 몇 번째 고리라고 가정했을 때 수학적으로 예측된 비율과 관측된 고리의 비율이 가장 잘 일치하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허블로 찍은 사진에 담긴 과녁 은하의 가장 외곽 고리가 세 번째 고리라고 할 경우 관측된 더 작은 고리들의 크기 비율이 완벽하게 수학적 예측을 따라갔다. 다시 말해서 사진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더 바깥에 더 거대한 고리가 이미 더 넓게 퍼져 있다는 의미다. 허블 사진에 찍힌 고리 여덟 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더 바깥에 아홉 번째, 열 번째 고리가 있어야 한다.
이번 허블 관측으로 찍은 사진 속 과녁 은하의 가장 바깥 고리가 세 번째 고리이기 때문에, 바로 그 바깥에 있어야 하는 두 번째 고리는 지금 이 세 번째 고리에 비해 1.67배 더 넓은 반경으로 퍼져있어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정말 외곽에 더 넓게 퍼진 고리가 숨어있는지를 확인하는 추가 관측을 진행했다. 하와이 켁 망원경 관측, 그리고 드래곤플라이 망원경 관측으로 과녁 은하를 바라봤다. 참고로 드래곤플라이 망원경은 이름에 걸맞게 망원경 렌즈 48개가 모여서 정말 잠자리 눈처럼 우주를 바라본다. 아주 희미하고 어둡게 퍼진 가스 구름의 흔적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천문학자들은 드래곤플라이 관측을 통해, 딱 예상한 바로 그 위치에서 더 넓게 퍼져있는 두 번째 고리의 흔적을 확인했다! 허블 사진 속에 찍힌 총 여덟 개의 고리뿐 아니라, 그 바깥에 있을 거라 기대한 아홉 번째 고리가 실제로 있었다. 훨씬 오래전에 은하 바깥으로 둥글게 퍼지면서 이 고리는 매우 희미해졌다. 그래서 훨씬 먼 거리에 있는 배경 은하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48개의 렌즈로 은하를 관측하는 드래곤플라이 서베이 덕분에 빽빽한 배경 별들을 뒤에 둔 채로 희미한 가스 꼬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보다 더 먼 열 번째 고리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바로 이 과녁 은하를 탄생시킨 태초의 은하 간 정면충돌이 벌어졌던 그 순간, 가장 먼저 사방으로 퍼지면서 희미하게 사라진 첫 번째 고리 말이다.
천문학자들은 오래전 이 과녁 은하의 정중앙을 뚫고 날아간 범인이 누구일지도 찾아냈는데, 허블 사진 속 왼쪽 가운데 푸르게 빛나고 있는 흐릿한 은하가 범인일 것으로 추정한다. 은하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이 푸른 은하는 과녁 은하와 비슷한 거리에 떨어져 있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중이다. 현재 두 은하 사이의 거리와 속도를 감안하면 이 푸른 은하는 약 10억 년 전에 과녁 은하를 관통하면서 지금의 독특한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격렬한 정면충돌을 당한 끝에, 과녁 은하는 넓게 퍼지면서 흐트러지고 있다. 이미 우리 은하에 비해 두 배나 더 넓은 25만 광년 너비로 퍼지면서 은하의 표면 밝기가 확연하게 어두워지는 중이다. 실제로 우주에는 별들이 너무 넓은 영역에 퍼져서 이게 은하인지 배경 우주인지 구분조차 힘들 정도로 어둡게 보이는 흐릿한 은하들이 있다. 이런 은하를 표면밝기가 매우 낮은 은하(Low surface brightness galaxy)라고 부른다.
천문학자들은 이번 과녁 은하에서 수학적으로 아주 정확하게 입증된 은하 간 정면충돌의 여파가 바로 이런 희미한 은하를 만드는 열쇠일 거라 추정한다. 오래전 뉴턴이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 우주에서 모든 물리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가르침이 다시 한번 우주, 그리고 은하의 가장 미스터리한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었다.
사과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유명한 설화가 있다. 바로 명사수 빌헬름 텔의 이야기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아들의 머리 위에 얹어놓은 사과를 화살로 정확히 명중시켰다고 한다. 뉴턴은 400년 넘게 놀라운 적중률을 보여주는 최고의 명사수라 할 수 있다. 400년 전 뉴턴이 쏘아올린 사과라는 작은 화살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달에 도달했고, 이제는 57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거대한 은하 한가운데에 명중했다. 은하를 관통한 사과가 남긴 파문이 둥글게 퍼지면서 만들어진 과녁 은하의 파문을 바라보며, 우리는 더 머나먼 우주를 향해 변함없이 날아가고 있는 뉴턴의 사과를 추억한다.
참고
https://www.stsci.edu/contents/news-releases/2025/news-2025-006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d9f5c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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