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다. 가격도, 품질도, 디자인도 비슷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다. 소비자는 이제 굳이 하나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상하게 손이 가는 브랜드가 있다. 그 브랜드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색깔, 질감, 분위기 같은 것들이 있다. 딱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감각. ‘핵심경험론’은 그 감각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남기는 핵심적인 경험, 그 한 조각의 기억.
저자 전우성은 오랫동안 브랜드 일을 해온 사람이다. 많은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광고를 만들고, 매장을 꾸미고, 이벤트를 연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할 경험. 그 경험이 선명할수록, 브랜드는 분명한 인상을 남기고 결국 기억에 남는다. 책은 이 단순한 전제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을 풀어낸다.

책은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브랜딩의 필요성을 다시 점검하는 내용이다. 마케팅이 효율에만 몰두할 때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길을 잃는지,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조심스럽게 짚는다. 두 번째 파트는 핵심경험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그것이 어떻게 브랜드의 뿌리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기능적인 경험, 감성적인 경험으로 나누어, 실제 브랜드들이 어떤 식으로 그것을 정의하고 구축했는지도 보여준다.
세 번째 파트는 가상의 브랜드를 통해 핵심경험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는 리빙, 키친웨어, 향수, 맥주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각 브랜드는 자신만의 핵심경험을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정체성과 전략으로 풀어내는지 보여준다. 마치 작은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어느 장면에서는 낯설게 느껴졌던 개념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스스로에게 적용해보고 싶어진다. 마지막 파트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조언이다. 브랜드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사람의 태도, 마음가짐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단지 브랜딩을 위한 전략서가 아니다. 브랜드를 기억의 층위에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에는 반드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흐른다. 그 무언가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일이 브랜딩이다. 단순히 문장을 예쁘게 다듬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의 본질을 경험으로 녹여내는 일. 이 책은 그 경험의 방향을 가리켜준다.
그리고 그 방향은 언제나 단순하고 조용하다. 복잡한 것을 줄이고, 본질을 붙잡는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남겨야 할 단 하나의 인상, 단 하나의 기억. 브랜드의 핵심경험이 그것이다. 읽고 나면, 괜히 하나쯤은 떠오른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어떤 브랜드.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약간 움직이는, 그 브랜드의 장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시끄럽지도, 급하지도 않지만, 깊고 오래 남는 책이다. 브랜드를 하고 있다면, 혹은 브랜드를 좋아한다면, 천천히 읽어도 좋다. 어느 페이지에서든 조용히 무엇인가 하나쯤은 건져낼 수 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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