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려 11년 5개월 만에 돌아온 지드래곤의 성과가 놀랍다. 정규 3집 앨범 ‘Übermensch(위버맨쉬)’의 감각적 사운드와 그의 초월적 비주얼은 압도적이다. 트렌드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역시’ 지드래곤다웠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케이팝이 거둔 눈부신 활약의 시원과 미래를 다시금 지드래곤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더는 ‘가수’는 없다. 이제 가수는 아티스트라 불린다. 적어도 케이팝 아티스트라 불리는 그 경지를 일찌감치 구가한 이가 지드래곤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이전에 ‘빅뱅’이 있었고, 그 ‘빅뱅’의 중심에 지드래곤이 있었다. ‘빅뱅’과 지드래곤은 매스미디어 아이돌과 SNS 아이돌의 중간 가교다. 솔로였고 듀오였으며 완전체이기도 했다. 지드래곤으로 인해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아티스트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는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모태가 되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 능력에 패션 감각과 스타일마저 탁월했다. 그의 스타일은 유행의 중심에 있었고,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트렌드가 됐다. 그의 과거를 보면 지금 현재의 ‘힙’은 물론 미래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드래곤은 이미 초등학생 때 SM에서 5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다. 당시 기획형 아이돌에서 비전을 보지 못하고 SM에서 이탈했는데, 이것이 부적응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영토 개척의 시작이 되었다.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힙합을 독자적으로 체득하고 창작하는 경지가 되어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 ‘2001 대한민국 HipHopFlex’에 최연소로 참여했다. YG에서 데뷔 전부터 페리, 렉시, 세븐, 휘성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하거나 피처링 무대에 선 것은 지드래곤의 아티스트로서의 시작점을 말해준다. 이를 바탕으로 그가 리더이자 멤버로 참여한 최초의 아이돌 힙합 그룹 ‘빅뱅’의 시작은 케이팝에는 복음과 같은 일이었다. 지드래곤의 ‘빅뱅’은 기획형 아이돌을 벗어나 성장형 아이돌, 자율형 아이돌을 망라한 케이팝 스타일 그 자체다.
그는 빅뱅 자체를 기존 아이돌과 완전히 차별화했다. 다른 아이돌과 다르게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고 작사, 작곡했다. 2007년 빅뱅의 첫 EP ‘Always’ 타이틀곡 ‘거짓말’을 작사, 작곡한 지드래곤은 ‘프로듀서 아이돌’이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2014년 Mnet ‘엠 카운트다운’에서 10년 역사에서 가장 빛난 곡으로 ‘거짓말’이 꼽혔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2년 가장 많은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 선정되었는데, 무려 17곡에 이른다. 2014년 ‘마지막 인사’, 2015년 ‘하루 하루’ 등도 연속으로 히트해 올해를 빛낸 8명의 작곡가에 들었다.
지드래곤의 노래는 힙합은 물론이고 R&B, 어쿠스틱과 전자 댄스 음악 등 장르가 다양하다. 대체로 놓치기 쉬운 개인의 감성을 포착해 이를 일반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너무 내밀한 감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미세한 느낌들을 보편적인 정서로 잘 풀어낸다.

그는 빅뱅 초기부터 솔로 가수의 역량과 입지를 보였다. 2009년 8월 18일 첫 솔로 앨범 ‘Heartbreaker’를 발표하고 각종 차트를 석권했다. 솔로 가수로서 빌보드에서도 극찬을 받았고, Mnet ‘아시아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도 받았다.
음악 차트만이 아니라 이 앨범에서 보인 강렬하고 놀라운 콘셉트는 방송과 인터넷을 막론하고 대중문화계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강렬함을 넘어선 파격은 2012년 솔로 EP 1집 ‘One of a Kind’의 수록곡 ‘그××’로 이어졌다. 19세 미만 청취불가의 신곡이 발매와 동시에 차트 정상에 오른 예는 이 노래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음악 소비 환경이 달라졌음을 지드래곤이 보여주었다. 2013년 1월에는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일본의 4개 도시에서 돔 공연을 했다.
솔로만이 아니라 유닛 활동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0년 11월 지드래곤과 T.O.P가 2인조 유닛 GD&TOP을 결성했고, 그들의 앨범에 수록된 ‘High High’, ‘Oh Yeah’, ‘뻑이 가요’ 등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음악에서만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구별시킨 것이 아니라 패션스타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른 몸에 개성 넘치는 패션스타일을 선보여 아시아 체형의 아티스트가 어떻게 힙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나아가 남녀 구분을 넘어서는 젠더리스(genderless) 스타일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 독특한 스타일의 선글라스, 금발의 헤어스타일, 삼각형 스카프(머플러) 등은 그를 ‘맵시꾼’으로 세계의 브랜드 기업에게 각인시켰다.
지드래곤은 2013년 그래미 수상자인 미국의 여성 래퍼 미시 엘리엇, DJ 디플로, 바우어 등과 같이 노래했는데, 자신의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협업에 적극적인 아이돌의 면모를 보였다.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한 협업은 음악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2015년 국내외 12명의 현대미술가들과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라는 협업 전시회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그 이후 현대미술에 관심을 두는 아이돌 그룹 멤버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을 뮤직비디오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지드래곤의 이력과 경험이 이번 새 앨범과 패션 스타일에 녹아들었다. 타이틀 곡 ‘투 배드(TOO BAD)’(feat. Anderson Paak)는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고, MBC 예능 ‘굿데이’에서 시청자와 만나며, 5월부터는 월드투어에 나선다. 활동의 외연은 전보다 더 넓어졌다. 지드래곤은 아이돌이 아티스트로 음악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트렌드를 주도하는 패셔니스타이자 시대적 아이콘으로 언제나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살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케이팝 아이돌의 미래이자 귀감이며 로드맵이 될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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