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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인류가 '별빛'을 잃어버린 천문학적 전환점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벌어진 '전류전쟁'

2025.03.24(Mon) 11:28:38

[비즈한국] 오비디우스의 ‘메타모포스(변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바라보지만, 신은 인간에게만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별을 향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라고 명령했다. 

 

이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흔히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얻게 된 혜택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 그리고 도구를 쓸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발전은 곧게 세워진 허리 덕분에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편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밤하늘을 신경 쓰고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눈앞의 과일이 언제 익는지, 맹수는 언제 쳐들어오는지…. 살아남기 위한 고민의 해답을 밤하늘에서 찾기 시작했다.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며 인류는 위협을 피하고 풍요를 기다릴 수 있었다. 약 20만 년 전, 인류의 허리가 세워졌던 바로 그 순간부터 천문학이 시작된 셈이다.

 

더 놀라운 건 20만 년 전 처음으로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올렸을 먼 조상들의 눈동자에 비친 것과 똑같은 별빛을 우리가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가 20만 년 전 처음으로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봤던 것과 똑같은 별빛을 우리도 바라보고 있다. 사진=pixabay


1933년 5월 27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대규모 박람회가 막을 올렸다. 1893년 콜럼버스 박람회 이후 정확히 40년 만에 시카고에서 다시 열린 행사였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깊은 늪에서 허덕였지만, 과학과 기술이 선사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찬란한 진보의 세기를 꿈꾸며,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잠시나마 잊고자 했다.

 

1933년 박람회의 개막식은 혁신적인 점등식과 함께 시작했다. 단순히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켜는 것이 아니라, 별빛을 이용해 조명을 밝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현시켰다. 여키스 천문대의 책임자였던 천문학자 애드윈 프로스트는 40년 만에 다시 열린 박람회를 기념할 방법을 고민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구에서 정확히 40광년 떨어진 별이 있다면, 1893년 콜럼버스 박람회가 열리던 그 순간 출발한 빛이 이제 막 지구에 닿을 것이다. 그 별빛을 활용해 박람회의 전등을 밝힌다면,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연결되는 특별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천문학자들은 그 역할을 맡을 별을 찾았다. 바로 목동자리의 가장 밝은 별, 아크투루스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아크투루스까지의 거리가 40광년이라고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박람회가 열리는 5월 밤하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만약 그 별 곁에 어떤 존재가 살고 있다면, 그들이 지금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은 1893년 콜럼버스 박람회가 한창 열리는 장면일 거라 생각했다.

 

1930년대는 광전지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빛을 전기로 변환하는 이 기술은 이미 천문학에서 망원경의 감도를 높이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박람회 개막식을 완벽하게 진행하기 위해 총 네 곳의 천문대가 협력했다. 프로스트가 있던 여키스 천문대뿐만 아니라, 일리노이대학교 천문대, 하버드대학교 천문대, 앨리게니 천문대가 힘을 모았다. 혹시라도 한 곳의 하늘이 흐릴 경우를 대비한 준비였다.

 

1933년 5월 27일 저녁, 해가 저물고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박람회의 총괄을 맡은 루퍼스 C. 도스는 3만 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웅장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대공황의 와중에 열린 193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1893년 박람회를 기념해 40년 전의 별빛을 모았다. 사진=bie-paris.org

 

“우리는 1893년 위대한 콜럼버스 박람회의 순간을 되새깁니다.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40년 전 출발한 빛을 맞이하려 합니다. 아크투루스에서 온 이 빛줄기는 우리의 경내를 밝히고, 박람회의 기계를 움직이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마치 오래전 문명을 이끌던 제사장이 군중 앞에서 하늘의 신비로운 기운을 약속하며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연단 위에서 그는 군중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우주의 힘이 이 순간과 연결될 것임을 선포했다. 무대 옆에는 거대한 스피커와 전광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네 곳의 천문대 위치가 표시된 미국 동부 지도가 걸려 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 의식을 지켜보는 듯했다.

 

마침내 오후 9시 15분, 네 개의 망원경이 동시에 아크투루스를 겨냥했다. 망원경을 통해 모인 별빛이 광전지에 닿자 전류가 생성되었다. 이 전류는 전신선을 타고 박람회장의 조명으로 흘러들었고, 찰나의 순간 어둠에 잠겼던 공간이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군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이후 박람회가 열리는 매일 밤, 같은 방식으로 점등식이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별빛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순간에 매료되었다.

 

1893년 콜럼버스 박람회는 천문학자들에게 달갑지 않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을 기점으로 인류는 밤하늘의 어둠에서 벗어나, 인공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박람회장을 가득 채운 수만 개의 전구 불빛이 밤하늘까지 뻗어나갔고, 희미한 별빛은 점차 사라졌다. 인류는 밤하늘의 별빛을 따서 가로등을 세운 셈이었다.

 

고대 전설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신의 불씨를 건네주었다. 그 대가로 제우스는 그를 거대한 바위에 묶어 두고, 독수리가 그의 간을 매일 갉아먹도록 하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1893년, 시카고의 박람회장은 다시 한번 천상의 불씨를 가져온 인간들의 경쟁으로 뜨거워졌다. 두 명의 라이벌,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토머스 에디슨이었다. 미국 전역에 자신의 전봇대를 세우기 위해 다투었던 두 사람은 콜럼버스 박람회 현장에서도 치열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직류 전기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전부 에디슨이 독점했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는 니콜라 테슬라가 제안한 교류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더 효율적이고 저렴한 전력 시스템을 제시했다. 콜럼버스 박람회의 전기 공급 사업은 결국 웨스팅하우스가 차지했다.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잔혹한 전기의자를 만들어 실험을 감행할 정도로 싸움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후대에 이 둘의 갈등을 ‘전류 전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류 전쟁을 벌인 조지 웨스팅하우스(왼쪽)와 토머스 에디슨.

 

발명가들은 자신의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고출력의 쇼맨십을 펼쳤다. 테슬라는 자신의 몸에 코일을 감고 무려 2만 볼트에 달하는 전기를 흘려보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가 그의 몸을 휘감은 듯한 장관이었다. 그는 무사했다. 테슬라는 교류 전기가 결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한편 에디슨은 거대한 과학 기술의 기념비를 세웠다. 높이 25m의 탑 위에 수천 개의 백열전구를 연결했다. 그 무게만 0.5톤에 달했다. 그리고 전구를 5000개의 프리즘으로 감쌌다. 전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퍼지며 박람회장을 수놓았다. 에디슨은 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회사 제너럴 일렉트릭이 밀고 있던 직류 전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려 했다.

 

그러나 화려한 박람회는 뜻밖의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시 시카고 시장이자 유망한 정치인 카터 해리슨 3세가 암살당하면서 축제의 마지막은 갑작스러운 추도식으로 대체되었다. 19세기 말, 인류에게 웨스팅하우스, 테슬라, 에디슨이라는 세 명의 야심찬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했다. 그들은 앞 다투어 자신의 불씨로 세상을 비추기 위해 경쟁했다. 그들의 발명 덕분에 인류는 더 이상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일도, 촛불을 끄고 잠들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는 더 이상 밤을 사랑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며, 희미한 별빛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끼던 감수성은 눈앞의 인공조명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조명의 불빛 속에 파묻힌 별빛은 더 이상 인간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전 지구적인 전력 보급을 선언한 콜럼버스 박람회의 순간은, 한 시대의 천문학적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제 인류는 망원경의 도움 없이 더 이상 순수한 밤하늘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작 밤하늘에서 은하수를 지워버린 콜럼버스 박람회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40년 후 다시 별빛을 모아 박람회의 조명을 밝혔다는 사실은 어딘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은 인공조명으로 밤하늘을 덮어버린 인류가, 잃어버린 별빛을 향한 그리움을 고백하는 마지막 후회였는지도 모른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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