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해상이 참여 중인 유뱅크 컨소시엄이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그간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일정을 발표할 때면 금융권의 시선은 현대해상에 쏠리곤 했다. 현대해상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유뱅크가 재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현대해상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도 다시 늦어지게 됐다.

17일 유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 계획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유뱅크 컨소시엄에는 렌딧, 루닛, 자비스앤빌런즈, 트레블월렛,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SK텔레콤, 네이버클라우드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성준 렌딧 대표는 “최근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컨소시엄 내부적으로 신속하게 논의를 진행했다”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전략적 관점에서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추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참여사들이 빠르게 합의했다”고 전했다.
유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성준 대표는 “이번 발표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과정 중 하나고, 철회가 아니다”라며 “신청 시점은 추후 금융당국과 충분히 협의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유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재검토함에 따라 현대해상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도 그 시기가 늦어지게 됐다. 현대해상은 과거부터 인터넷전문은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0년 대우증권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대우증권이 KDB산업은행에 인수되는 등 사업 환경이 불확실해면서 인터넷전문은행 계획은 무산됐다. 당시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도 미비했다.
현대해상은 2015년에도 인터파크 등과 ‘아이뱅크’ 컨소시엄을 맺고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추진했지만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2019년에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주도하는 ‘토스뱅크’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했지만 주주 구성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해 최종적으로 불참했다.
현대해상의 유뱅크 컨소시엄 참여는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 현대해상 전무가 있다. 정경선 전무는 이전까지 사회적 기업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1월 현대해상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로 취임했다. 현대해상의 기획관리부문, 기술지원부문, 브랜드전략본부를 총괄하고 있으며, 신사업 발굴도 정 전무의 역할 중 하나다. 이번 인터넷전문은행 추진도 정경선 전무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선 전무는 2012년 사회적 기업 루트임팩트를 창업했고, 2014년에는 사회적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를 설립했다. 정 전무가 그간 사회적 기업에서 주로 활동한 탓에 대기업에서의 경영 능력은 아직 크게 보여준 것이 없다. 현대해상이 유뱅크를 통해 성공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한다면 정 전무가 주목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유뱅크가 예비인가 신청을 재검토하면서 정 전무에 대한 평가도 보류됐다.
정경선 전무는 인터넷전문은행 외에 디지털 관련 업무도 맡고 있다. 현대해상은 보험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는 등 디지털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5일 자동차 사고 보상 처리 업무에 ‘AI 음성 안내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들에게 예상 보험금, 수리비, 사고 처리 결과 등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정경선 전무의 경영 능력을 판단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다. 인터넷전문은행처럼 그 자체만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경선 전무가 성과를 인정 받으려면 결국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성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은 현대해상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진출을 못하고 있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성공한다면 현대해상 내부적으로도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뱅크 내부적으로는 금융당국의 인터넷전문은행 상시 인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상시 인가가 가능해지면 유뱅크가 올해 하반기에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유뱅크는 “현재와 같은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하반기 중에 예비인가 신청을 다시 추진하기로 합의를 이룬 상태”라고 밝혔다. 현대해상도 유뱅크와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유뱅크 컨소시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금융당국도 과거 상시 인가를 허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언급을 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2023년 7월 “현재 과점적 구조인 은행산업을 언제든 경쟁자가 진입할 수 있는 경합시장으로 전환하겠다”며 “기존에는 사실상 금융당국에서 인가방침 발표 후 신규 인가 신청심사가 진행됐으나 앞으로는 충분한 건전성과 사업계획 등을 갖춘 사업자에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신규 인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유뱅크가 올해 하반기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더라도 만만치 않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미 시장에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3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활동 중이다. 금융당국은 3월 25~26일 제4호 인터넷전문은행 예비 인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후발주자인 유뱅크가 선발주자 4곳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뱅크 컨소시엄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적지 않은 자본이 필요하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차질 없는 자본확충으로 규모의 경제를 조속히 달성한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는 영업이익경비율(금융회사의 인건비, 전산비, 임대료 등을 포함한 판매관리비를 영업이익으로 나눈 비율)이 빠르게 하락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케이뱅크의 영업이익경비율은 상당 기간 100% 이상을 유지했다”며 “이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조기에 실현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확충이 적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영업이익경비율은 금융사의 영업이익 대비 판매관리비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유뱅크 역시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경우 유뱅크 주요 주주인 현대해상도 유뱅크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현대해상의 지급여력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55.8%다. 지급여력비율이란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지급여력비율 150% 이상 유지를 권고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금융당국 권고치를 겨우 넘기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뱅크에 대한 대대적인 자금 지원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대해상의 지급여력비율이 160%를 하회함에 따라 2024년 배당은 지급하지 못하고, 2025년에도 배당 가시성이 요원하다”고 평가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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