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실손보험은 가입률이 전체 국민의 약 70%로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하지만 실손보험 가입자의 상위 9%가 전체 실손보험금의 약 80%를 지급받는 기형적 구조다. 실손보험으로 인한 의료 남용은 이미 시장을 교란하고 필수의료 기피 등 의료 체계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실손보험의 역사를 살펴보고, 비중증 분야 비급여와 결합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앞으로 도입되는 5세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을 알아본다.

정부가 19일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공개했다. 1차 실행방안을 발표한 지 약 7개월 만이다. 당초 대통령실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이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이 ‘전공의 등 이탈 의료인 처단’ 내용이 담긴 비상계엄 포고령에 반발해 논의 불참을 선언하면서 미뤄졌다. 2차 실행방안은 △지역병원 육성 및 일차의료 강화 △비급여 적정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 △환자-의료진 모두 신뢰하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 가운데 ‘비급여 적정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 부문과 관련해 예상되는 우려 등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본인 부담률 95%로 높이고, 급여·비급여 혼합 진료 제한
비급여 개편안은 꼭 필요한 치료적 비급여는 급여화하고, 과잉 우려가 큰 비급여는 가격 및 진료 기준 설정 등 별도 관리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일반 비급여는 모니터링과 정보 공개 등을 통해 감독한다. 구체적으로 중증·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행위·치료재료·약제 등 급여 전환이 필요한 항목을 지속 발굴해 건강보험 급여 전환을 추진하고, 선별급여제도 내 ‘관리급여’ 대상을 선정해 가격과 진료 기준을 설정하고 95%의 본인부담률을 적용한다.
관리급여 대상은 의료계와 수요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사결정체계에서 선별하고 치료 필수성, 대체가능성, 오남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한적으로 선정한다. 또한 미용·성형 목적의 비급여를 하면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급여를 병행하는 경우 등에 한해 급여 제한을 확대하고, 선택 비급여의 명칭·코드를 표준화하고 비급여 보고나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발급 시 명칭·코드 사용을 의무화한다.
비급여와 급여 항목의 ‘혼합 진료’ 제한은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에도 담겼던 부분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실손보험 지출 상위 비급여 혼합진료 비율은 도수치료 89.4%, 백내장 수술100%, 체외충격파 95.6%, 비밸브재건술·하이푸·맘모톰절제술 100%, 하지정맥류 96.7%이다. 지난해부터 논의가 이어져온 만큼 구체적인 항목이 담길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의학적 필요성이 있어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급여-비급여 혼합 진료는 급여를 인정하겠다는 설명만 나왔다.
의료기관이 혼합 진료를 피할 목적으로 진료 행위를 급여와 비급여로 나누어 실시하거나, 분리해 청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혼합 진료를 제한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실손보험의 가입률이 높은 상황이어서 이를 통해 급여 중심의 의료 이용 유도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선택권 방해와 의료 서비스의 하향 평준화도 예상되는 문제로 언급한다.
#급여화 이후 풍선효과 방지책도 없어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는 급여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다른 비급여로의 풍선효과를 막기 위한 방안도 부실했다. 이미 비급여의 급여화 이후 환자의 본인부담금 총액이 증가하는 사례가 상당하는 연구는 많이 나왔다. 보험연구원의 ‘실손의료보험 비급여 보험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백내장(2020년 9월), 여성 초음파 검사(2020년 2월) 등의 급여화 이후 비급여 고액 수술 유도 등으로 환자가 부담하는 본인부담금 총액이 증가했다. 여성 초음파 검사가 청구된 영수증의 세부 항목을 분석한 결과, 여성 초음파 검사의 급여화 이전에 비해 하이푸 시술의 청구 금액 비중이 26.3%p 증가했다. 건당 금액은 의원급의 경우 2019년 566.9만 원에서 2020년 922.2만 원으로 무려 62.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과잉 우려가 큰 비급여에 대해 항목별 가격, 사유, 대체 항목 여부 등을 사전에 설정하고 동의서를 받도록 했지만, 현행의 ‘가격 설명’ 의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만의 경우 잠재 부작용, 의료기기 특징 등 환자에게 비급여 항목에 대한 사전 설명 항목이 더욱 자세하다. 환자가 비급여 진료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는 경우, 문제가 인정되면 해당 부분을 환자에게 환불해주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비급여 항목에 대해 청구 시 의료행위의 난이도, 수행시간 등을 바탕으로 가중치를 적용할 수 있는데, 가중치에 따라 의료진은 환자 및 보험회사와의 서면 합의 등을 통해서만 해당 수가를 적용할 수 있다.
한편 정부의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발표 직후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환자별 횟수 등 일률적 기준 설정은 환자 진료권 침해 소지가 있으며, 병행진료 관련 불필요한 급여 병행의 판단기준이 모호해 일선 의료기관에서 민원발생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대한병원장협의회도 성명서를 통해 “공정 보상 확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진료비의 정상화’이지 비급여 관리나 실손보험 개선이 아니”라며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개혁에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손보험 자기 부담률 인상이 적당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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