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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방치된 감정 노동자…사업주의 책임은 어디까지?

산업안전법에 감정 노동자 보호 내용 명시…업무 중단, 고소·고발, 치료 및 상담 지원 등 포함

2025.03.18(Tue) 11:13:52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서비스업 실무자의 어려움은 악성 민원 그 자체보다, 회사에 돌아갈 피해를 우려해 자신을 단속하는 데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다. 차라리 기계를 다루거나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것이 낫다. 하루 종일 악성 민원인에 시달리다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가 든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성악설), 이 세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는 것은 한가로운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말이 과격하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1주일 정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길 권한다. 필자는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사장님’으로부터 여러 사례를 듣곤 한다. 대부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내용이다.

 

처음에는 악성 민원인의 심리 상태, 항의에 이르는 인과관계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차피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선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이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젊고 우수한 인력일수록 서비스업을 기피한다. 어느 회사, 어느 직무에 ‘감정노동의 끝판왕’이라는 평판이 있다면 MZ세대는 절대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우리 사회가 악성 민원인에 대한 대응을 포기한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경영진은 악성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실무자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다.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할 뿐이다. 실무자의 어려움은 일하다 보면 늘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실무자의 어려움은 악성 민원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의 태도나 반응 때문에 조직이나 회사가 불이익을 입을까 염려하면서 자신을 단속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법령이 사업주로 하여금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은 바람직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조직이나 고객이 기대하는 특정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해야 하는 노동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면 자신의 감정이 슬프거나 화나는 상황이 있더라도 사업장이 요구하는 감정과 표현을 고객에게 보여줘야 하는 노동을 말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 장해 예방조치 등) 제1항은 다음과 같이 사업주에게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는 주로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고객 응대 근로자에 대해 고객의 폭언, 폭행, 그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폭언 등)로 인한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41조는 감정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로서 고객의 폭언 등이 있을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전환 △휴게시간의 연장 △치료 및 상담 지원 △폭언 등에 대한 고소·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에 필요한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1조는 예방조치로서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문구 게시 또는 음성 안내 △문제 상황 발생 시 대처 방법을 포함하는 고객 응대 업무 매뉴얼 마련 △관련 교육 실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앞선 법령의 조항에 따라 최근 콜센터에 전화해 보면, “고객님의 말 한마디가 상담사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상담사를 가족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의 전화 연결음을 들을 수 있다. 민원실 벽에는 “누구에게나 감정은 소중합니다” “무분별한 폭언과 폭행, 성희롱 시 관련법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등의 문구가 기재된 포스터가 게재된다. 민원 담당 직원이 위와 같은 문구가 표시된 조끼를 입거나 명찰을 패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초적인 조치는 여러 상황에 쉽게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채팅 상담에 앞서 감정노동을 보호하는 관련 조항의 준수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표시하거나, 온라인 판매 페이지 상에 표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업주는 직원 보호를 위해 회사의 정책을 알릴 필요가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고용노동부,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 보호 가이드’에서 발췌). 

 

① 고객 등의 폭언, 폭행 등으로 인한 문제 발생 시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고객으로부터 분리되고 피해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다.

 

② 부당한 요구를 하는 고객에게 무조건 사과하거나 과도한 금품,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③ 폭언, 폭행 등으로 인한 문제를 야기한 고객은 같은 직원이 다시 대응하지 않는다.

 

또한 상황 발생 시 △자제 요청 및 즉시 경고 △녹음 사전 고지 △신속 제지 △업무 종료 △관리자 보고 △경찰 협조 요청 △법적조치 검토 등 일련의 액션플랜을 설정하고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늘 그렇듯 새로 시행된 법령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감정 노동자 보호 문제 역시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나, 직원을 보호하고 직원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절차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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