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롯데그룹을 둘러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재무가 악화되면서 그룹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롯데그룹은 다수의 자산을 매각하며 유동성 개선에 나섰다.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은 지난해 11월 롯데케미칼 일부 회사채에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하면서 불거졌다. 기한이익상실이란 특정 상황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대출금을 만기일 전에 조기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롯데케미칼은 회사채 발행 당시 ‘3개년 누적 평균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를 이자비용의 5배 이상 유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이행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다고 바로 채권을 상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하면 회사는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해 채권자에게 조건 변경 등을 요청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2월 “회사채의 사채관리계약 조항 내 실적 관련 재무특약 조정이 가결됐다”며 “사채권자들과 순차적으로 협의를 진행했으며 롯데그룹 또한 자본시장 안정화 등을 위해 롯데월드타워를 활용해 은행 보증을 추가하는 등 회사채의 신용보강을 목적으로 주채권은행과 긴밀한 소통을 이어왔다”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이 채권자와의 협의에는 성공했지만 유동성 위기설에 대한 우려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했다. 이어 올해 2월에는 파키스탄 자회사 LCPL을 매각했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LCI 지분 일부에 대해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맺으며 65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고 밝혔다. PRS는 계약 만기가 도래했을 때 주가가 기준가보다 낮거나 높으면 서로 차익을 물어주는 파생상품이다.
롯데그룹 차원에서도 자산 매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롯데웰푸드 증평공장을 매각했다. 또 한국전자금융과 코리아세븐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부 매각 계약을 체결했고,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롯데렌탈 매각 계약도 맺었다. 롯데건설 본사 부지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재무부담 축소를 위한 롯데케미칼의 노력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롯데그룹을 바라보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2025년 상반기 LINE(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는 에틸렌 사업) 설비 준공에 따른 투자부담 경감, 해외 자회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한 현금 유입이 기대된다”면서도 “현금창출력 약세와 금융비용 상승, 자산 매각 시기 및 처분가액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차입부담이 유의미하게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8941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두는 등 실적도 좋지 않다. 올해 실적 전망에도 불확실성이 높다는 평가다. 김명주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은 적극적인 자산 효율화 작업을 통해 단기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시키고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통해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전망”이라면서도 “상반기 수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신증설 부담 확대로 유의미한 회복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롯데그룹의 다른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을 둘러싼 분위기도 좋지 않다. 롯데쇼핑의 매출은 2023년 14조 5559억 원에서 2024년 13조 9866억 원으로 3.91% 감소했다. 또 영업이익은 2023년 5084억 원에서 2024년 4731억 원으로 6.94% 줄었다.
롯데쇼핑은 오는 3월 24일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는 신 회장이 롯데쇼핑에 대한 책임경영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나마 롯데쇼핑은 지난해 자산재평가를 통해 유동성을 크게 개선시켰다. 지난 2월 보유 토지에 대한 자산재평가를 진행한 결과 해당 토지 평가액이 기존 8조 2686억 원에서 17조 7351억 원으로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그렇지만 롯데쇼핑의 자산재평가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토지를 매각하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현금이 유입되는 것도 아니다. 롯데쇼핑의 부채총액은 2023년 말 19조 8082억 원에서 2024년 말 21조 9895억 원으로 11.01% 증가했다. 롯데쇼핑의 기업 규모를 감안했을 때 당장 문제가 발생할 수준은 아니지만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이처럼 롯데그룹의 핵심 사업인 화학과 유통 업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신사업은 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롯데그룹 핵심 사업에 대한 부진이 이어지면 신사업 투자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2월 27일 기업설명회에서 투자 리스크 관리를 위해 EBITDA 금액 내 투자 집행을 지향하고, 해외 사업 확대 시기를 조정하며 전략적 중요도 낮은 투자를 취소하겠다고 언급했다.
신동빈 회장도 올해 1월 신년사에서 “재무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해 재무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며 “불필요한 업무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를 찾아서 제거하고, 이를 토대로 모든 계열사들이 선도적 지위 회복을 위한 기반 조성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했다.
롯데그룹의 신사업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신유열 부사장은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을 맡고 있다. 롯데그룹이 재무 개선에 힘쓰는 와중에 신유열 부사장은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롯데그룹은 불필요한 투자를 줄이고, 필요한 부분에 신사업 투자를 집중해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롯데그룹은 4대 신성장 테마로 △바이오&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뉴라이프플랫폼을 제시했다. 실제 롯데그룹은 최근 전기차 충전기, 푸드테크 등의 분야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과하게 투자를 하지 않고, 낭비되는 부분 없이 최적으로 투자를 하려는 것”이라며 “비핵심·비효율 자산을 매각해 필요한 부분에 대한 투자를 이어간다는 것이 현재 방향”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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