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천문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있다. 우리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 과거, 오랫동안 인류는 스스로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코스믹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천문학적 발견은 그러한 인류의 자만심을 처참하게 짓밟으며 우리가 아무런 특별할 것이 없는 우주의 아무 곳에나 놓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렇다면 태양이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기를 바랐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우리 은하가 우주의 유일하고 특별한 세계가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아니었다. 천문학은 우리가 우주에서 전혀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대 천문학을 지탱하는 이 관점을 코페르니쿠스 원리라고 부른다. 지구가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 주장한 인물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그간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코페르니쿠스 원리가 당연한 우주의 원리라고 생각했다. 우주는 어디에서 보더라도,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항상 비슷하게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방대한 우주의 지도를 그리는 다양한 관측이 이루어지면서 어쩌면 우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 원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비대칭과 불균일함이 우주에서 발견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원리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실제 관측을 통해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는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세분화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 우주는 균질하다. 관측자의 위치에 상관없이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우주는 항상 비슷하게 보인다. 두 번째, 우주는 등방하다. 관측자가 시야를 돌리면서 우주를 봐도 항상 비슷하게 보인다. 우주의 균질성과 등방성을 바탕으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도 우주에서 전혀 특별할 게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애초에 우주에는 그 어떤 곳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위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여 년 전까지 이루어진 다양한 발견과 관측은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뒷받침했다.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를 비롯해 우주 전역 수많은 은하의 입체적인 지도를 완성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결과를 보면, 우주는 거시적인 스케일에서는 전반적으로 은하들이 균일하게 분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빅뱅 직후 우주 전역에 퍼진 열의 흔적을 보여주는 우주 배경 복사 관측도 마찬가지다. 고해상도로 우주 배경 복사의 미미한 온도 차이와 요동까지 확인했지만 우주는 거의 모든 방향에서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그런데 허블과 제임스 웹 등 더 정밀한 우주 망원경과 대형 지상 망원경이 관측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비대칭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가 우주 평균에 비해 은하들이 매우 적은 거대한 보이드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단순히 우리 은하 바로 옆에 은하가 조금 적게 나타나는 작은 규모의 로컬 보이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2013년 라이언 키넌, 애미 바거, 레녹스 코위 세 천문학자는 주변 물질의 밀도가 우주의 평균보다 더 적게 나타나는 아주 거대한 보이드에 우리 은하가 위치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거대한 보이드는 규모가 무려 20억 광년에 달하는데, 이 구조를 발견한 세 사람의 이니셜을 따서 KBC 보이드 또는 로컬 홀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우주에 지름 20억 광년의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 은하가 하필이면 거대한 텅 빈 영역에 있다는 사실은 은하들의 움직임을 통해 우주 팽창률을 구하려고 할 때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은하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그 은하가 박혀 있는 시공간의 팽창 효과뿐 아니라, 이웃한 은하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의 효과가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은하가 우주 평균에 비해 물질이 적은 거대한 보이드에 있다면, 밀도가 더 높은 보이드 바깥쪽으로 은하들이 빠르게 끌려가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우주가 더 빠르게 팽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우주가 마냥 공평하지 않은 세계고 우리가 꽤 독특한 시점에서 우주를 보는 것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봐온 우주의 모습은 우주 전체의 모습을 온전하게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거대 보이드 외에도 은하들이 수억 광년 스케일로 길게 이어진 필라멘트나 군집의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은하들이 무려 13억 광년 스케일로 길고 둥글게 이어진 아주 거대한 초구조가 발견되었다. 이 구조를 이루는 은하들의 총 질량만 태양 질량의 200경 배에 이른다. 독립된 서로 다른 초은하단이 적어도 다섯 개가 모여서 거대한 초구조를 이룬다. 우리 은하가 속한 초은하단으로 잘 알려진 라니아케아보다 두 배 이상 무겁고, 크기도 세 배 이상 길다.
이것은 현재까지 우주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발견된 초구조 중에서 가장 거대한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전체 부피에서 13%를 차지하고, 질량은 우주 전체 물질의 25%를 포함한다. 부피에 비해 질량의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거대한 초구조는 우주 전체 평균에 비해 물질이 매우 높은 밀도로 모여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거대한 초구조에 ‘키포’라는 재밌는 이름을 붙였다. 키포는 잉카 문명에서 밧줄에 매듭으로 숫자를 기록했던 것을 말한다. 이번에 발견된 은하들의 초구조도 잉카 문명의 키포와 비슷하게 은하들이 끈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를 따라 은하들이 이어진 모습이 마치 밧줄을 따라 매듭 여러 개가 쭉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수억 광년이 넘는 거대한 규모로 은하들이 우주 평균보다 낮은 밀도로 분포하는 보이드, 또는 더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거대한 초구조의 존재는 기존 표준 모델만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도입하더라도 결국 우주의 팽창과 은하의 탄생은 우주 전역에 걸쳐 고르게 벌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우주의 특정 지역에 유독 은하의 수가 더 많거나 적은지에 대해서는 아직 속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우주가 균질하고 등방한 세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은 현대 천문학과 우주론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로 대변된다. 첫 번째는 허블 텐션으로, 어떤 방법에 기대서 우주의 팽창률을 추정했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문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주 배경 복사로 추정한 것에 비해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추정한 우주의 팽창이 더 빠르게 측정된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그 원인이 우리가 주변에 은하들의 밀도가 적은 보이드 영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실제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들의 밀도 분포 차이가 우주 배경 복사에서 확인되는 초기 우주에서의 밀도 차이로 추정한 결과와 어긋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을 천문학에서 은하들의 분포 밀도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 파라미터 S8을 활용해서 S8 텐션이라고도 부른다.
허블 텐션과 S8 텐션은 단순한 측정 오차 문제가 아니다. 우주가 어디에서든, 어디를 보든 항상 비슷한 모습으로 보일 거라는 가정에 기반한 계산 결과가 우주의 실제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매우 충격적인 불일치다. 우리 생각과 달리 우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다지 고르지 못한 세계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새로운 물리 법칙을 적용할 시점에 다다른 것일 수도 있다.
우주가 마냥 균질하고 등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최근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전례 없이 아주 높은 정밀도로 우주를 관측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이 더 높은 밀도로 모인 영역은 시공간을 더 많이 왜곡하고 그 너머의 빛이 굴절되고 휘어져 보인다. 시공간이 휘어진 정도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애초에 우리가 관측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우주의 모습이 너무 투박하고 정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공간의 왜곡과 휘어진 빛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차이를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미세한 차이들도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우주를 정밀하게 보게 되면서 현대 우주론의 치명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즉 천문학이 하나의 새로운 정밀 과학 영역에 진입하는 과도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난제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말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우주 어디에서든 똑같이 적용될까? 이 답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하려면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 다른 장소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우주를 관측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라는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 다른 곳에 사는 존재가 우리와 똑같은 우주를 바라보고 있을지, 아니면 우리와는 조금 다른 우주를 보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코페르니쿠스 원리가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 우주에 우리처럼 우주를 궁금해하고 적극적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문명이 많이 존재할 것이고, 그 문명의 수만큼 다양한 천문학 이론과 우주론이 있을지 모른다. 우주의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천문학 이론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표면적으로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우리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보일 거라는 바람 자체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착각이자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5arXiv250119236B/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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