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지는 한국과 대만은 동병상련 처지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대만에 GDP의 10%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는데, 이는 한국에도 곧 닥쳐올 위기다.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도 마찬가지다. 비즈한국은 ‘대만에서 읽는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대만의 정치·안보·경제 핵심 인물들을 만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한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지난해 대만의 16대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 라이칭더(賴清德) 후보가 당선됐다. 14·15대를 연임한 차이잉원 전 총통에 이어 정권을 유지한 민진당은 12년 집권에 성공했으며, 제1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은 정권 창출에 실패했다. 국민당이 마지막으로 집권한 건 13대 마잉주(馬英九) 총통이었다. 국민당의 연이은 패배는 친중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청년층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라이칭더 총통 집권 이후 양안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중국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게 민진당의 기조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 간 상호 관세 특혜 조약인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도 위태롭다. 이미 지난해 중국은 134개 대만산 품목에 대해 관세 감면을 중단했다.
대만 보수 정당이자 친중으로 분류되는 국민당은 이 같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볼까. 비즈한국은 지난 2월 11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열린 중국국민당(국민당) 중앙당부와 국내 NGO 평화네트워크의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국민당 중앙당부 핵심 인사인 황제정(黃介正) 국제사무부 주임, 린주지아(林祖嘉) 대륙사무부 주임, 허스선(何思慎) 국제사무부 부주임, 장궈바오(張國葆) 대륙사무부 부주임, 리정슈(李正修) 국가안보팀 부연구원, 린광팅(林廣挺) 대륙사무부 연구원이 참석했다. 린주지아 주임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황제정 주임은 과거 대만 대륙위원회 차관을 지냈다.
국민당은 민진당이 중국과의 대화를 단절시켰다고 비판하면서 미·중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정 국제사무부 주임은 “국민당은 집권 시기 미국, 중국, 일본 및 한국 등 주변국과 관계가 원만했다. 야당이 된 이후에도 대만해협의 안정이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지속적인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자는 92컨센서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린주지아 대륙사무부 주임은 “1992년 92컨센서스를 바탕으로 국민당은 중국과 대화할 기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민진당은 대화의 토대를 상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국민당은 양안관계에서 △국방력 유지 △적극적인 대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세 가지 원칙을 두고 있다. 린주지아 주임은 “대만은 장기적으로 중국과 제도 경쟁을 해야 하며, 중국 관광객과 유학생이 대만의 자유와 법치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의 교류를 확대해 대륙 사람들이 대만에 방문하고, 대만의 자유·민주·법치의 공기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2기, 대만은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현재 민진당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당의 반대로 예산안 통과가 번번이 좌절됐다. 국민당은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대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황제정 국제사무부 주임은 “국방 예산은 위협의 정도에 따라 적절하게 책정되어야 한다. 국민당은 방위비를 무조건 삭감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만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방위력을 갖추는 데 집중하자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황 주임은 미국의 요구를 무작정 따라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그는 “미국은 대만이 ‘고슴도치 전략’을 채택해 방어력을 극대화할 것을 요구하지만, 대만의 지리·인구적 특성을 고려하면 도시전(도심 전투)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에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대만의 국방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만은 UN 등 주요 국제기구에 가입이 안 되어, 전쟁이 발생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 현상을 겪고 있는 대만 역시 병력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황제성 주임은 “대만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대만해협에 긴장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응할 병력 공급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민진당에는 국방전문가가 매우 적다. 국민당은 군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이 미국 이야기를 듣고 미국 무기를 많이 사는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대만은 매년 14%가량 국방비를 증액했다. GDP의 5% 수준 증액은 불가능하다. 대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외교적 협상을 통한 긴장 완화”라고 주장했다.
허스선 국제사무부 부주임은 “국민당의 이러한 합리적인 목소리를 민진당은 ‘중국 공산당에 굴복하는 정책’이라고 왜곡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ECFA도 논의됐다. 린주지아 대륙사무부 주임은 “2000년대 이후 대만의 대중 수출 비중은 40% 수준을 유지했으나, 미·중 갈등 이후 32.5%까지 감소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 내 대만 기업들이 미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에 대만 기업들은 동남아시아나 대만 본토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대만의 중국 의존도는 점점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린 주임은 라이칭더 총통의 태도에 따라 ECFA의 존속이 결정된다고 봤다. 그는 “ECFA를 통해 약 539개 품목에서 관세가 면제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석유화학, 자동차 및 기계 부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 혜택이 중단됐다. 향후 추가적인 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CFA는 양안 간 경제 협력의 중요한 기초다. 민진당 정부는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와 한국의 삼성이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린주지아 주임은 “대만은 첨단 반도체(3나노 이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대만은 첨단 반도체 공정에서 삼성보다 우위를 점했지만, 메모리 반도체 및 일부 부품은 여전히 한국에 의존한다. 과거 대만의 최대 무역 적자국은 일본이었으나,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이 가장 큰 적자국이 됐다. 이는 대만이 한국으로부터 반도체 관련 부품을 많이 수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린 주임은 국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 사업은 미국의 관세 부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에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TSMC의 기술력이 워낙 앞서기 때문에 큰 영향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나노급 이상 첨단 반도체 칩의 약 90%가 대만에서 생산된다. 오히려 관세 부담은 다른 산업에 전가될 것이다. 철강, 섬유, 석유화학, 도자기 등 대만의 전통 제조업이 타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
중국발 '딥시크 쇼크' 이후 AI 가격 전쟁 막 올랐다
·
회원 800명, 1년째 신규 가입 중단…두나무투자일임 '맵플러스' 정리 수순?
·
[대만에서 읽는 한반도] 트럼프 2기,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
·
[대만에서 읽는 한반도] "트럼프는 비즈니스맨, 시진핑 김정은 직접 만날 것"
·
[대만에서 읽는 한반도] 뤼슈롄 전 부총통 "트럼프 맞서려면 한·대·일 협력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