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반도체 기술이 18개월마다 2배씩 발전한다는 ‘무어의 법칙’보다 AI의 혁신이 훨씬 더 강력하다. 현재는 비용적으로 제한이 많지만 결국 상당수 제품의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10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개인 블로그)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에서 가격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해 오픈AI와 구글이 기업용 AI 요금을 인하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저비용의 고성능 AI 출시가 줄을 잇고 있다. 올트먼은 지난 10일(현지시각) 개인 블로그에서 “가격이 낮아지면 사용량은 훨씬 증가한다”는 대전제를 강조하며 작년 중순 출시된 오픈AI의 ‘GPT-4o(포오)’가 2년 전 모델보다 이용 비용이 150배가량 저렴해진 사실을 언급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등장으로 치킨 게임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란 평가다. 자사 모델의 정보 공개를 꺼리던 오픈AI 등 미국 주요 기업도 오픈소스 방식을 고민하면서 각 사별 기술 개방 정책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서 불어온 ‘저가’ 바람, 글로벌 출혈 경쟁으로
AI 기업들의 저가 공세가 시작됐다. 출혈 경쟁을 주도하는 건 중국의 기업들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2024년 마지막 날 자사의 ‘큐원(Qwen)-VL’의 가격을 최대 85% 인하했다. 현재 큐원-VL의 가격은 100만 입력 토큰(AI 모델에서 처리되는 데이터 단위)당 0.41달러다. 오픈AI의 최신 모델인 GPT-4o의 이용료 2.5달러보다 83.6% 저렴하다. 알리바바는 이미 기업 고객을 타깃으로 두 차례 가격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지난해 2월 주요 클라우드 제품 가격을 최대 55% 낮췄으며 3개월 뒤 자사 생성형 AI 서비스 ‘퉁이첸원(Tongyi Qwen)’을 기반으로 구축한 9개의 LLM 가격을 최대 97%까지 인하했다.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바이두도 무료화 전략으로 선회한다. 바이두는 오는 4월부터 자사의 AI 챗봇 ‘어니(Ernie) 봇’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13일 밝혔다. 바이두는 2023년 말 출시한 자사 엔진 내 어니 4.0 기반 프리미엄 검색 기능을 월 약 59.9위안(약 1만 2000원)에 제공해왔다. 향상된 추론 능력과 전문가 수준의 답변을 갖춘 심층 검색 기능도 4월 무료 출시된다. 어니 봇은 무료지만 기업고객이 바이두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AI에 접속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요금이 부과된다.
바이두의 전략 변화는 중국 기업들이 직면한 AI 경쟁 압박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바이두는 챗GPT 등장 4개월 만에 자체 AI를 내놓으며 한때 중국 AI 경쟁을 선도했으나, 두바오 등 경쟁 서비스에 밀리면서 뒤쫓는 신세로 전락했다.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지난달 자사 주력 AI 모델 ‘두바오(Doubao)’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했다. 바이트댄스는 GPT-4o나 앤트로픽의 클로드 3.5과 같은 경쟁 모델과 동등한 성능을 앞세우며 이 모델이 수학 능력 측정 지표인 ‘미국 수학경시대회(AIME)’에서 GPT-o1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반면 운영비용은 딥시크의 5분의 1, o1 모델의 0.5% 수준으로 크게 낮다. 기존의 상업용 기본 모델 비용은 챗GPT 가격의 1% 정도다. 일반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제공된다.
#미국 AI도 경량화·저비용, 가격 우위 누가 점하나
생성형 AI 업계의 관심은 마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동안은 학습량과 절대적인 성능을 두고 기술력 경쟁이 펼쳐졌다면 이제는 가격 중심의 시장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저가 경쟁은 AI 분야에서는 프리미엄 라인에 해당하는 미국의 빅테크로도 옮겨 붙었다. 오픈AI는 지난달 31일 최신 추론 모델 ‘o3-미니’를 출시했다. 가격은 ‘o1-미니’ 대비 60% 정도 저렴하다. 그동안은 챗GPT 프로(pro)나 플러스(plus)를 구독하는 유료 고객만 추론 모델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번 서비스는 처음으로 일반 이용자에게도 열렸다. o1 모델이 광범위한 일반 지식 추론 모델이라면, o3-미니는 실용성과 속도에 집중한 비용 최적화 모델이다. 코드 작성에 강점이 있어 개발자 등에 특화된 서비스로 볼 수 있다.
구글 역시 지난 5일 출시한 최신 AI 모델 ‘제미나이 2.0’의 경량형 모델 가격을 딥시크와 견줄 만한 수준으로 책정했다. 세 개의 제품군 △프로 △플래시 △플래시 라이트 중 플래시 라이트 모델은 딥시크를 겨냥한 AI 모델이다. 비용은 입력 토큰 기준 0.019달러로 오픈AI보다 저렴하고 딥시크(0.014달러)와 맞먹는다.
이미 지난해 오픈AI와 구글은 기업용 AI을 두고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인 바 있다. 기업용 AI는 일반 기업 혹은 개인이 맞춤용 AI 서비스를 만들 때 기반이 되는 거대 AI 모델을 말한다. 플랫폼이 빅테크의 LLM(거대언어모델)을 활용해 다양한 종류의 맞춤형 AI 앱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오픈AI는 2023년 출시 당시 토큰당 7달러였던 GPT-4o의 가격을 지난해 4달러로 인하했고, 이 직후 구글은 ‘제미나이 1.5’ 플래시의 기업용 가격을 기존 가격의 3분의 1 수준인 0.12달러로 낮췄다.
#‘마진 증발’ 혁신 늦춰질까 우려도
이를 두고 기술력 격차가 점차 좁혀지자 마진 경쟁으로 무게가 옮겨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현 시점에서 주요 비즈니스 모델인 기업용 AI의 저가 전략을 통해 고객사를 선점하고 주도권 확보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개발 비용 대비 수익화다. LLM 개발과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 규모다. 이임복 세컨드브레인 연구소 대표는 “이제는 기업들에게 ‘영수증’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단계다. AI 웹 검색 기능은 이미 무료화가 대세다. 앞으로 일반 사용자 혜택은 점차 늘어나겠지만 서비스 간의 차별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저가 경쟁, B2B 확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마진 증발’ 상태까지 거론하며 기업들이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IT 매체 와이어드는 “오픈AI는 AI 개발 및 상용화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한다. o3-미니처럼 강력한 모델이 무료로 출시된 사례는 구글과 앤트로픽에 가격을 낮추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 인하로 인해 마진이 줄어들게 되면 AI 기술 공급 기업들이 혁신보다는 효율을 택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포브스는 “가격 인하 압력은 연구 개발 여력을 줄이고 잠재적으로는 혁신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며 “딥시크 등 저가 경쟁 업체의 국제 시장 진출은 미국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중국과 같은 도미노 효과를 촉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딥시크. 메타, 일론 머스크의 xAI 등이 채택한 오픈소스 전략이 주류가 될지도 주목된다. 최근 경쟁사들이 오픈소스 AI를 띄우면서 폐쇄형 전략을 고집해온 오픈AI도 오픈소스화를 고민하고 있다. 오픈소스 방식은 AI 생태계 판 자체를 키워 기업, 연구자 사이에서 자사의 점유율과 영향력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어 ‘AI 민주화’를 이루는 길로 기대되지만 오용 위험이 뒤따르는 만큼 안전성이 과제다.
이임복 대표는 “중국 기업들의 등장으로 AI 시장에서 ‘가성비’ 논의가 예상보다 빨리 도래했다. 오픈AI 등 선두 기업이 수성과 공성으로 대응하는 가운데 가격 대비 성능 우위, 대규모 투자비용 투입의 근거 등의 입증을 요구받고 있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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