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 시중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10년 넘게 근무하며 인정받은 38세 A 씨. A 씨는 근무가 힘들기로 유명한 회장 비서실에서 3년 가까이 고생한 끝에 ‘해외 연수’의 기회를 제안받았다. 미국 유수의 MBA 과정을 회사에서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A 씨는 선뜻 ‘가겠다’고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네 살이 된 자녀에게는 좋은 기회지만, 해외 체류 기간 2년 동안 매달 수백만 원을 써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사기업에 다니는 아내도 회사를 그만둬야 하기 때문에 2년 후 국내에 돌아왔을 때 외벌이가 되는 것에 대한 걱정도 A 씨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2. 최근 대기업으로부터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근무를 조건으로 이직 제안을 받은 40세 B 씨. ‘회사 이름’을 고려해 이직을 결정했지만, 막상 이직하니 해외 근무에 대해 우려가 크다. 가장 큰 걱정은 높아진 해외 체류비. 연봉 외에 현지 체류비를 지원받지만, 물가가 워낙 오른 탓에 ‘월급을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아내가 공기업에 근무하는 덕분에 휴직하고 함께 해외에 나갈 수 있지만, 최근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동유럽으로 나간 동료 직원이 부럽다. 미국이나 서유럽의 경우 주택 임대부터 교육비까지 기본 생활물가가 워낙 높아 빠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한때 인기 높았던 해외 근무가 이제 기피 대상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MZ세대는 환율 인상 등으로 인한 체류비 증가, 자녀 교육 문제, 맞벌이 부부의 경우 배우자의 휴직 문제, 가족과의 이별, 치안 문제 등을 우려해 ‘해외 근무를 피하고 싶다’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국내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는 것도 한국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한다.
현재 전세를 살고 있는 B 씨는 “1년에도 전세만 1억~2억 원, 매매는 2억~3억 원씩 오르고 떨어지는데 해외에서 3~4년 이상 근무하고 오면 부동산 거지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며 “자녀 교육을 위해 부동산 사두고 가는 것도, 그냥 다 처분하고 가는 것도 다 겁이 난다”고 털어놨다.
A 씨는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립 MBA 대학원을 가게 되면 학비는 회사에서 지원받을 수 있지만, 가족이 지낼 주택 임대료만 200만 원 이상이고 현지에서 여행도 다니고 하려다 보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는 내가 모아놨던 돈을 써야 하더라”며 “가족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아내도 다니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기에 2년 뒤 귀국 후 외벌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건설업계에서는 이 같은 고민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개발도상국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기피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 이에 지난 2023년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는 해외건설 근로자를 대상으로 전용면적 85㎡ 이하 민영주택 특별공급 추천 규정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 10년 이내 해외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 중 귀국일로부터 2년 이내이고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해 1순위에 해당하는 근로자에게 우선 공급을 하는 조건이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해외 근무가 그동안에는 ‘에이스’들이 조금 쉬다 오는 곳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미국 등 주요 국가는 CEO나 임원 방문이 늘어 의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해외 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업무 성과에 따라 되레 독이 되는 경우도 늘었다”며 “미국 등 영어권 국가는 자녀 교육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여전히 많지만, 그 외 국가 가운데 고물가나 치안이 안 좋은 곳은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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