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월 12일 서울시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하 토허제) 해제를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시민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제를 철폐하고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특히 국제교류복합지구(잠실·삼성·대치·청담동)를 제외한 291개 아파트와 신속통합기획 6곳을 즉시 해제하며, 2027년까지 총 59곳을 순차적으로 규제에서 벗어나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재건축 추진 아파트 14곳과 주요 재개발 단지, 투기 과열 지역 등은 여전히 토허제 적용을 유지한다.

이러한 ‘부분적 해제’ 정책은 과연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면서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오히려 규제 유지 지역에서는 헌법상 재산권 침해 논란과 시장 왜곡 가능성이 남아 있다. 더욱이 서울시가 인정한 대로 토허제는 단기적 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효용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이번 정책의 배경을 분석하고, 해제 이후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며, 잔존 규제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토지거래허가제는 1970년대 말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잡기 위해 도입된 규제 장치다. 개발 예정지나 투기 우려 지역에서 대규모 토지·주택 거래 시 사전 허가를 받도록 강제함으로써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가격 안정화를 꾀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재건축·재개발 붐이 일면서 서울 강남·송파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된 투기 현상을 막기 위해 확대 적용됐다.
토허제가 적용된 지역에서는 주택 매매 시 2년간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며, 임대나 전세를 전제로 한 투자 행위(갭 투자)가 금지된다. 이는 거래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소유권 행사 자체를 제한하는 성격을 띤다. 예를 들어, 재개발 예정 아파트의 경우 조합 설립 전까지는 토지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가 봉쇄된다.
초기 토허제는 투기 수요 억제와 가격 안정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2010년대 초반 강남 일대의 폭등세가 진정된 것은 토허제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두 가지 문제가 부각됐다. 첫째, 광범위한 규제로 인해 개발이 완료된 지역까지 거래가 위축되면서 시장의 유동성이 떨어졌다. 둘째,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 토허제 유지 기간도 길어져 주민 불만이 고조됐다. 서울시 역시 2024년 연구용역을 통해 ‘단기적 효과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효력이 감소한다’는 결과를 인정한 바 있다.
서울시는 이번 해제 조치에서 크게 세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첫째, 국제교류복합지구 재건축 아파트 14곳 제외다. 이들 단지는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이 임박했으며, 투기 수요 유입 가능성이 높아 규제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둘째, 신속통합기획 6곳 즉시 해제다. 조합 설립 인가를 완료한 사업지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으므로 해제한다. 셋째, 2027년까지 59곳 순차적 해제다 조합 설립 인가 시점을 기준으로 단계적 완화를 추진한다.
반면,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 등 주요 재개발 단지와 공공재개발 34곳, 투기 과열지구 내 신속통합기획 14곳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 투기 가능성이 낮아질 때까지 규제를 유지한다.
이번 해제는 시민사회의 강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1월 오세훈 시장이 주최한 ‘규제 풀어 민생 살리기 대토론회’에서 시민들은 “재산권 행사를 침해하는 토허제를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토허제 지정 지역에서는 거주 이전 제한, 재산 처분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민원이 빈발해 왔다. 서울시는 이러한 목소리를 받아들여 “광범위한 규제에서 선별적 규제로 전환해 시민 재산권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우려한 정책적 타협이 읽힌다. 서울시는 해제 이후에도 “투기 수요가 발생하면 즉시 재지정할 것”이라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는 과열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사전 차단을 위한 것으로, 시장 안정화와 재산권 보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제 조치는 단기적으로 규제에서 벗어난 지역의 거래량 증가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속통합기획 6곳과 국제교류복합지구 주변 아파트는 매수 수요가 집중되며 가격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서울시가 원하는 ‘시장 활력’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투자자들이 해제 지역에 자본을 집중시키면, 유보된 규제 지역(예: 강남 3구)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우려가 있다.
더욱이 토허제 해제로 인한 가격 상승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져 서민층의 주거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서울시가 강조하는 ‘재산권 보호’가 일부 자산 계층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토허제 유지 지역에서는 소유자가 토지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는 재산권 행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 2022년 헌법재판소도 ‘토지거래허가제가 재산권 제한의 한계를 넘어설 경우 위헌 판결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서울시는 ‘투기 방지’를 근거로 규제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정작 투기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예를 들어, 재건축 아파트 14곳을 규제 유지 대상으로 삼은 것은 ‘투기 가능성’이라는 추상적 근거에 의존한다. 이는 정책의 임의성으로 이어져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서울시는 토허제 해제로 “부동산 시장에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신속통합기획 사업지의 해제 시기를 조합 설립 인가 완료 시점으로 한정하는 것은 오히려 사업 추진 속도에 따른 차별을 초래한다. 조합 설립이 지연되는 지역은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불평등이 고착화될 수 있다.
또한, 서울시가 인정한 대로 토허제는 장기적으로 효과가 미미하다. 부동산 시장은 규제 회피 수단을 발전시키며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를 양산할 뿐이다. 결국 토허제는 ‘임시방편적 규제’에 머물며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의 토허제 해제는 시민의 재산권 보호라는 긍정적 목표를 담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규제와 정책의 모순점은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서울시는 ‘규제 완화’와 ‘시장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유연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규제 철폐가 아닌,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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