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지는 한국과 대만은 동병상련 처지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대만에 GDP의 10%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는데, 이는 한국에도 곧 닥쳐올 위기다.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도 마찬가지다. 비즈한국은 ‘대만에서 읽는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대만의 정치·안보·경제 핵심 인물들을 만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한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뤼슈롄(呂秀蓮,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협력 강화를 촉구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거대한 힘의 충돌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 대만, 일본이 협력해 외교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뤼슈롄 전 부총통은 대만 최초의 여성 부총통이자 2000년부터 2008년까지 10·11대 부총통을 연임했다. 현재 대만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의 원로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뤼 전 부총통은 2월 11일 비즈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에 대응하려면 한국, 대만, 일본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뤼 전 부총통은 “미국과 중국은 두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와 같고, 그들이 싸우면 주변의 작은 국가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한국, 대만, 일본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필리핀을 포함한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이 긴밀하게 공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동아시아 평화포럼’을 창설했다. 동아시아 평화포럼은 각국의 정치인과 학자, 전문가 등이 모여 동아시아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뤼 전 부총통은 “한국, 대만, 일본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올해 9월 21일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3개국이 더 긴밀하게 공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뤼 전 부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관세 부과 정책도 언급했다. 그는 “1980년대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듯이, 현재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수입에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 TSMC를 보유한 대만에도 비상이 걸렸다. 13일 트럼프는 세계 각국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 정책을 발표하면서 “반도체가 우리나라에서 제조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는 대부분 대만에서 생성된다. 그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오기를 원한다”고 발언했다.
뤼 전 부총통은 3개국이 협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뤼 전 부총통은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사업가다. 미국의 재정난을 높은 관세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도다. 한국, 일본, 대만 모두 세계 경제 질서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TSMC의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이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TSMC 공장에서 많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역사와 문화적인 요인들이 원인이라고 본다. 문화적인 공통점과 공감대가 없으면 공장을 세워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반면 일본에 있는 TSMC 공장은 큰 문제가 없다. 역사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고, 유가사상을 공유하는 한국, 일본, 대만이 서로 협력해 대응해야 한다. 반도체뿐 아니라 AI나 뷰티 산업 등 다방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본다. 윈-윈-윈(Win-Win-Win) 하자는 전략이다”고 말했다.
뤼 전 부총통은 한국의 최근 정치 상황에도 관심이 크다. 대만은 1949년 5월부터 1987년 7월까지 38년간 ‘타이완선 계엄령’이 이어지며 계엄 체제를 겪었다. 그는 “한국의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 비상계엄 조치는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혼란 속에서도 헌정 체제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국회가 즉각 회의를 소집하고, 헌법에 따라 검찰과 사법부가 절차를 따르는 모습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저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뤼 전 부총통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직접 서신을 보낸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한국의 헌정 체제가 계속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에서 서신을 보냈다. 누군가 잘못을 했더라도 헌법 체제가 유지된다면 그 국가는 안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가 국민의 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국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한국의 국회가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뤼 전 부총통은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한 제안을 했다. “한국도 부통령제를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적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1인 체제보다 균형 잡힌 정치 구조가 한국 정치의 안정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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