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HDC현대산업개발(현산)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줄어든 임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현산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꾸면서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근로자 동의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며 현산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구광현)은 현산 전현직 직원 37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감액된 임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현산이 직원 36명에게 총 16억 4240만 원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23일 판결했다. 직원 1인당 인용 금액은 평균 4562만 원 수준이다. 임금피크제란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일정 연령에 이른 근로자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 근로자 정년은 60세 이상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사업주가 근로자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도 고령자고용법은 사업주가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 이런 규정은 2013년 5월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신설돼 2016년 1월 본격 시행됐다.
현산은 2016년 8월 회사 취업규칙을 개정해 직원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을 기존 ‘만 58세가 되는 해 말일’에서 ‘만 60세가 되는 해 말일’로 연장하되, 만 57세부터는 임금을 전년 대비 10%씩 매년 감축하는 내용이었다.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 해인 만 56세를 기준으로 하면 임금이 만 57세에 90%, 정년인 60세에 65.61% 수준까지 낮아지는 구조다. 현산은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취업규칙 변경에 대해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았다.
이에 현산 전현직 직원들은 2022년 12월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을 돌려달라며 회사에 소송을 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회사가 이런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근로자 임금이 최종적으로 34.39% 감소하는 반면, 업무량이나 노동 강도가 줄어드는 조치가 없었다며 회사가 연령을 이유로 부당하게 근로자를 차별했다고도 주장했다.
법원은 먼저 현산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꿨다고 봤다. 취업규칙 변경으로 근로자들은 정년이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2년 연장되지만, 정년 4년 전인 만 57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전과 비교하면 만 57세, 만 58세에 기존보다 임금을 적게 수령하는 불이익이 발생한다. 연장된 정년 기간 2년만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면 직원들은 기존 정년인 만 58세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거나, 감액된 임금을 받는 대신 2년을 추가로 근무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현산이 패소한 결정적인 이유는 취업규칙 변경 과정의 절차적 하자 때문이다. 현산은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동의서 징수 약 열흘 전 무렵부터 하루 전까지 서울, 천안, 대구, 본사 등에서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설명회에 몇 명이 참석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취업규칙 개정 내용을 알리는 자료는 설명회가 세 차례 개최된 이후 올라온 2차 설명회 개최 공고에 첨부됐다. 각 설명회에서는 별다른 서면 자료도 배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현산이 직원들에게 받은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에는 임금피크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 동의서에는 “취업규칙 등 규정 내용 설명을 통해 공지한 취업규칙 등 규정 변경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며, 임금체계 변경으로 인해 임금 인상분 반영을 위해 급여 규정은 2016년 3월 1일 자로 소급되는 사항 및 변경된 근로조건에 대해 직원들과 토론한 결과 개정된 취업규칙 등 규정 변경 내용 일체를 수용함을 확인합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됐을 뿐, 임금피크제 도입 관련 언급이나 첨부 자료가 없다.
재판부는 “피고(현산)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해 소속 근로자들로부터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를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임금피크제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판시했다.
다만 당시 현산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확인된 A 전 현대아이파크노동조합 위원장의 임금 청구는 기각됐다. 현산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2016년 8월 무렵 전체 근로자 10%가량으로 구성된 현대아이파크노동조합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에게 상시 사용되는 동종 근로자 과반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아닌 이상 노사 단체협약 체결에 따른 효과는 노조 조합원에게만 미친다.
재판부는 “A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이 노동조합 조합원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그러므로 A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 대해 2016년 8월 체결된 단체협약을 근거로 임금피크제가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A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게 효력이 없는 임금피크제로 인해 원고들이 수령하지 못한 미지급 임금 및 그에 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피고에게 있다”고 판시했다.
현산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13일 항소했다. 비즈한국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현산 측에 항소 및 취업규칙 변경 계획을 물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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