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시가 시와 산하기관에서 발주하는 공공공사의 50%를 원도급사가 직접 시공하도록 한 방안을 폐지하기로 했다. ‘직접시공 50% 의무화’ 방안은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건설 안전과 품질을 높이고자 3년 전 도입했는데, 일선 건설 현장에서는 직접시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반발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직접시공 규제 폐지가 얼어붙은 공공공사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와 건설 안전과 품질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가 시와 산하기관에서 발주하는 공공공사의 50%를 직접 시공하도록 한 방안을 폐지하기로 했다. 사진은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upload/bk/article/202502/thumb/29058-71170-sampleM.jpg)
서울시는 9일 공공건설 분야 규제철폐안을 발표하면서 ‘직접시공 50% 의무화’ 방안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직접시공이란 공사를 도급받은 건설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인력과 자재, 장비를 투입해 시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간 서울시는 직접시공 능력이 부족한 원도급자의 관행적인 하도급 문제를 개선하고자 직접시공 의무를 확대해왔다.
서울시 직접시공 50% 의무화 방안이 도입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서울시는 2022년 7월 토목·골조 등 안전과 품질에 미치는 주요 공종에 대해 원도급사가 도급비 50% 이상을 직접 시공하게끔 하는 ‘직접시공 확대 등을 통한 하도급 풍토 개선방안’을 도입했다. 건설 안전과 품질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100억 원 미만 공사에 국한됐던 직접시공 50% 규제는 이듬해 1월 모든 공사로 확대됐다.
이런 규제는 2022년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에서 비롯됐다. 서울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대규모 건설사고가 잇따르자, 안전사고 문제의 원인으로 고질적인 하도급 관행을 지목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3월 신림-봉천터널 현장방문에서 “공사 현장의 안전 문제가 대부분 하도급에서 생긴다”며 “직영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시장 요청사항에 따라 직접시공 50% 규제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서울시 직접시공 50% 의무화 방안은 현행 법령보다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건설사업자는 1건의 공사금액이 100억 원 이하인 건설공사를 도급받은 경우 시행령이 정하는 비율(노무비 기준 10~50%)만큼 공사를 직접 해야 한다. 도급금액이 3억 원 미만인 경우 50%, 3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은 30%, 10억 원 이상 30억 원 미만은 20%, 30억 원 이상 70억 원 미만은 10%로 공사비가 높아질수록 직접시공 비율이 낮아지는 구조다.
서울시 직접시공 50% 의무화 방안 폐지는 건설업계의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1975년 건설산업 전문화와 계열화를 위해 전문건설업이 도입된 이후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로 이원화돼 외주와 하도급 체계가 구축됐다. 이후 건설산업기본법상 직접시공제 도입으로 70억 원 미만 공사는 어느 정도 직접시공 체계가 구축됐지만, 대규모 공사를 수행하는 대기업들은 직접 공사를 수행할 역량이 갖춰지지 않았다. 서울시 공사에 뛰어들고 싶어도 제약이 많았던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홍현탁 서울시 건설혁신담당관은 비즈한국에 “안전 때문에 직접시공 규제를 도입했지만, 현재 국내 건설업계가 이를 이행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으로 판단해 제도 폐지를 추진했다. 대신 하도급 점검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건설 안전을 관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건설경기 악화와 공사비 급증에 따른 사회기반시설(SOC) 공사 유찰도 한몫을 했다. 비즈한국이 나라장터 입찰공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가 지난해 발주한 추정가격 300억 원 이상 공사 20건(재공고 포함) 중 낙찰자를 결정한 사업은 1건(탄천변 동측도로 구조개선 사업1구간 건설공사)뿐이었다. 광화문, 강남역, 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건설공사와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 등 다수 공공공사가 유찰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 안전과 품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도입한 제도를 폐지하는 만큼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부실시공이나 조잡시공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건설사(변경·정정·철회 포함)는 21건으로 전년 대비 7건(50%) 늘었다. 같은 기간 무등록업체에 하도급이나 재하도급을 주다 적발돼 처분을 받은 사례는 207건으로 51건(33%) 증가했다. 무등록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행위는 건설업계 부실공사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 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는데도 건설 안전 사고와 시공 품질 저하 사례가 끊임없이 보고된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고를 겪고 유일하게 대안을 제시한 서울시가 이를 철회한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며 “건설 현장 안전사고와 부실공사 상당수는 만연한 하도급과 부실한 하도급 관리에서 발생한다.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토목, 골조 같은 공정은 과거 원도급사가 직접 시공하는 비율을 늘려갈 수 있도록 서울시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회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서울시는 대안으로 ‘입찰 시 직접시공평가’를 올해부터 우선 적용키로 했다. 30억 원 이상 적격심사 및 종합평가낙찰제 대상 공사를 입찰하는 건설사에 대해 직접시공이 20%면 만점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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