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일단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승리로 결론 나자 영풍그룹과 오너 일가에 미칠 여파에도 눈길이 쏠린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79)은 2015년 3월 (주)영풍 등기임원에서 사임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10년 동안 오너 일가는 (주)영풍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장형진 고문의 자녀들은 영풍그룹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지만 핵심 계열사인 (주)영풍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처럼 (주)영풍은 현재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상황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다 하더라도 최대주주의 존재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대주주 의중에 따라 전문경영인이 선임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유와 경영이 표면적으로 분리됐다 하더라도 중요한 경영 사안에서 최대주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최대주주 입장에서 전문경영인이 말을 듣지 않으면 해임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장형진 고문은 슬하에 장남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부회장(51), 차남 장세환 영풍이앤이 부회장(45), 장녀 장혜선 씨(44) 등 2남 1녀를 두었다. 두 아들은 영풍그룹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며 (주)영풍 등기임원은 아니다. 영풍그룹은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회장직도 공석이다. 장형진 고문이 과거 영풍그룹 회장을 맡았지만 2018년 고문으로 취임하면서 회장직을 내려놨다.
재계에서는 장형진 고문의 두 아들 중 한 명이 차기 회장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장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 7년이 지나도록 차기 회장 선임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도 두 아들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장 고문이 직접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등 존재감을 보였다.
다만 아들들에게 지분 승계는 완료된 상태다. 회장에 취임하지 않더라도 (주)영풍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면 영풍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주)영풍은 코리아써키트, 영풍전자 등 주요 계열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장남 장세준 부회장의 (주)영풍 지분율은 16.93%, 차남 장세환 부회장의 지분율은 11.86%다. 그러나 장세준 부회장이 지분에서 확실하게 앞서는 것은 아니다. 영풍개발과 씨케이가 각각 (주)영풍 지분 15.56%, 6.46%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씨케이는 영풍문고홀딩스 최대주주고, 영풍문고홀딩스는 영풍개발 최대주주다. 영풍개발의 의결권도 씨케이에 달려 있는 셈이다. 씨케이의 대표이사는 장형진 고문이다. 따라서 씨케이의 의결권은 장 고문 뜻에 달렸다.
법조계에서는 한때 대표이사 1인 의견에 따른 경영권 행사 가능 여부가 법리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법원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1인 의견에 따라 한미사이언스의 한미약품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이를 보자면 장형진 고문이 씨케이 의결권을 행사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장형진 고문이 두 아들 중 한 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은 없다. 다만 장 고문은 지난해 12월 23일 (주)영풍 지분 0.68% 전량을 차남 장세환 부회장에게 매각했다. 이를 놓고 장 고문이 장세환 부회장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장세준 부회장과 장세환 부회장 모두 경영 능력에는 의문부호가 달려 있다. 장세준 부회장은 2020년 3월 전자회로기판(PCB)을 생산하는 코리아써키트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코리아써키트의 최근 실적은 좋지 않다. 매출은 2022년 1조 5969억 원에서 2023년 1조 3322억 원으로 16.57% 줄었다. 영업이익도 2022년에는 992억 원이 남았지만 2023년에는 321억 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2024년 1~3분기에도 매출 1조 717억 원, 영업손실 233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이어갔다.
김민철 교보증권 연구원은 “(코리아써키트의 적자는) 반도체 패키지 PCB 부문의 낮은 가동률과 감가상각비 부담이 주요 원인이며 메모리향 PCB의 매출 부진이 적자 폭을 확대시켰다”며 “스마트폰용 주기판(HDI) 매출도 감소했는데 이는 고객사의 판매 둔화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장세환 부회장은 2013년 12월 케이지트레이딩(옛 서린상사) 대표이사에 취임해 2024년 6월 영풍이앤이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은 케이지트레이딩 지분 49.9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고려아연이 장세환 부회장을 해임할 것으로 예상되자 장 부회장 스스로 물러났다는 후문이다.
케이지트레이딩의 매출은 2022년 2조 4355억 원에서 2023년 1조 5290억 원으로 37.22% 줄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70억 원에서 175억 원으로 69.30% 감소했다. 2024년 1~3분기에는 매출 8030억 원을 거뒀다. 2022년 이후 실적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케이지트레이딩의 실적 악화는 (주)영풍 석포제련소의 실적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케이지트레이딩은 그간 석포제련소가 생산하는 비철금속의 운송과 판매를 맡았다. 그런데 최근 근로자 사망 사고와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해 석포제련소 가동률이 급락했다.
장기적으로는 딸 장혜선 씨가 (주)영풍 경영권 향방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장세준 부회장, 장세환 부회장, 장혜선 씨는 각각 씨케이 지분을 33.33%씩 소유하고 있다. 다만 장혜선 씨는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주)영풍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한 후 장세준 부회장과 장세환 부회장이 (주)영풍과 고려아연을 승계해 계열분리할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하지만 (주)영풍이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 시나리오도 실현될 수 없게 됐다.
(주)영풍 관계자는 “(주)영풍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상태”라며 “현재로는 특별한 변화 소식이 없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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