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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는 균일하지 않다! '대전제'에 도전하는 천문학자들

기존 모델과 달리 우주의 불균일성 강조하는 '타임스케일' 가설, 초신성 관측 결과로 뒷받침

2025.01.31(Fri) 09:44:18

[비즈한국] 우주는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고, 어느 곳에서 봐도 똑같다. 이를 우주의 등방성, 균질성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는 오늘날 현대 천문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관점이다. 물론 우주 곳곳에는 별이 모여 있는 성단과 은하가 있다. 은하들도 은하단으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간다. 은하들이 주변보다 더 밀도 높은 초은하단과 필라멘트가 있는 반면 주변보다 은하들의 밀도가 훨씬 적고 텅 빈 보이드도 있다. 

 

하지만 이건 모두 국지적 차원의 불균일함일 뿐,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이 이 사소한 불균일함을 모두 희석할 거라고 생각해왔다. 우주는 어느 곳에서나 똑같고 한결같으며 공평하다고 말이다. 지엽적으로는 물질이 많고 적은 밀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 전체로 보면 사실상 균질하다는 것. 이 대전제는 절대 무너질 리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이 이 대전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쩌면 우리 우주가 균일한 세계가 아닐지 모른다.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 보이드는 사실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만으로는 지울 수 없는 꽤 유의미한 불균일함일지 모른다. 우주를 더 이상 균질하지 않은 세계로 바라보는 이 관점을 ‘타임스케이프(Timescape)’ 가설이라고 한다. 

 

과연 이 가설은 단지 흥미로운 수학적 유희에 불과할까? 아니면 우리가 마주한 현대 천문학의 난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실마리일까? 

 

여전히 우주에는 우리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미스터리가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암흑 에너지가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천문학자들은 점점 더 먼 우주의 초신성을 관측하면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팽창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파악했다. 그 결과 현재로 올수록 우주의 팽창이 더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관측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수축시키려고 하는 중력에 반하는 새로운 반중력 에너지를 가정해야 했다. 결국 암흑 에너지라는 미지의 에너지가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 정체는 여전히 밝혀진 게 없다. 

 

우주를 더 이상 균일한 세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타임스케이프 가설은 암흑 에너지가 사실 허상이었다는 결론을 가리킨다. 애초에 그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가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단지 관측의 오해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암흑 에너지에 기반한 표준 모형보다 오히려 타임스케이프 가설을 활용한 대안 모델이 지금까지의 초신성 관측 결과와 더 잘 맞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과연 암흑 에너지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바람 때문에 생겨난 크나큰 착각이었을까?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주의 팽창이 점점 빨라지는지 혹은 느려지는지를 파악하려면 과거를 보여주는 먼 우주에서부터 비교적 가까운 우주까지 다양한 거리에 있는 은하들을 관측해야 한다. 특히 먼 과거 시점의 우주를 대변하는 먼 은하들은 아주 어둡다. 먼 은하를 관측할 때 초신성은 아주 유용하다. 태양이 100억 년 평생 방출하는 에너지를 순식간에 토해낼 만큼 아주 밝게 터지기 때문이다. 

 

초신성 중에서 Ia형 초신성은 더욱 유용하다. 이 종류의 초신성은 진화가 이미 오래전에 끝난 백색왜성이 다시 한번 한계를 돌파하면서 폭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a형 초신성이 터지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곁에 평범한 주계열성이나 적색거성을 거느리고 있던 백색왜성에 동반성의 물질이 더 유입되면서 폭발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두 개의 백색왜성이 서로 충돌하면서 폭발하는 경우다. 

 

각 방식에 따라 폭발이 지속되는 시간이나 최대 밝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의심이 계속 나오지만, 전통적으로 두 가지 방식 모두 폭발 섬광이 가장 밝아지는 최대 밝기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즉 Ia형 초신성이 터진다면 실제 밝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실제 밝기를 따로 구해서 거리를 구할 수 있는 표준 촛불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래서 Ia형 초신성은 먼 은하까지 거리를 재는 거리 측정의 척도로 쓰인다. 

 

빅뱅 이후 우주가 점차 암흑 에너지에 압도되면서 팽창이 가속되는 것을 표현한 그림. 이미지=NASA


다만 초신성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미리 기다릴 수 없다. 항상 폭발이 벌어지고 나서 뒤늦게 천천히 꺼져가는 불씨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1990년대부터 지구 전역에 깔려있는 여러 망원경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최대한 주기적으로 똑같은 방향의 하늘을 계속 관측하면서 자동적으로 초신성 섬광을 찾아내는 사냥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1998년 처음으로 40개에 달하는 Ia형 초신성 관측 데이터를 모았다. 바로 여기에서 우주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팽창이 더 빨라져왔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단 40개의 초신성을 분석한 것이어서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이후 초신성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다양한 대규모 관측이 이루어졌다. 가장 대표적으로 판테온(Pantheon) 프로젝트가 있다. 판테온 팀은 2018년에 첫 관측 데이터를 공개했고, 이후 2022년에는 더 업그레이드 된 판테온+ 데이터를 완성하고 총 1500개에 달하는 Ia형 초신성 관측 데이터를 제공했다. 대폭 늘어난 초신성 관측 데이터는 기존의 가속 팽창 가설을 더 적은 오차로 지지하는 듯했다. 

 

오늘날의 천문학은 우주가 암흑 물질 25%와 암흑 에너지 70%로 이루어졌다고 추정한다. 나머지 단 4~5%만이 우리가 빛을 통해 볼 수 있는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추정은 우주가 거시적 규모에서 균질하다는 큰 가정을 전제로 한다. 애초에 그 가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우주에 대한 모든 예측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주 거대 구조를 보자. 지역에 따라 은하들이 높은 밀도로 모인 초은하단과 필라멘트가 있고, 은하들이 거의 없는 텅 빈 보이드도 있다. 보이드는 중력이 약하다. 그래서 밀도가 높은 다른 지역보다 더 빠르게 팽창할 수 있다. 빛이 보이드를 가로질러 날아간다면 다른 곳보다 팽창이 더 거세기에 빛의 파장도 더 길게 늘어질 수 있다. 더 큰 적색이동을 겪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한편 중력의 차이는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에도 영향을 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간다. 텅 빈 보이드에 비해 은하들로 가득 찬 초은하단은 중력이 더 강하고, 따라서 시간의 흐름이 더 느릴 수 있다. 우리는 비교적 은하들이 많이 모인 은하단 한 귀퉁이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 우주 평균보다 좀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다. 반면 은하가 거의 없고 텅 빈 보이드에서는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만약 우주 거대 구조의 밀도 차이가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히 불균일하다면 이야기는 완전 달라진다. 지역별 중력 차이로 인한 팽창률의 차이, 그리고 시간 지연의 차이가 복합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밀도가 높은 은하단에 살고 있는 우리는 텅 빈 보이드를 거쳐 날아온 빛을 보면서 우주가 과거에 비해 현재로 오면서 팽창률이 더 커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우주보다 더 빠르게 팽창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암흑 에너지가 우주 가속 팽창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기존의 표준 ΛCDM 모델과 우주의 불균일함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타임스케일 모델, 둘 중 어떤 모델이 판테온+ 초신성 관측 데이터를 더 잘 설명하는지를 비교해보면 결과는 흥미롭다. 

 

위 그래프는 판테온+ 관측 데이터에서 확인된 초신성까지의 거리에 따라 두 모델 중 어떤 모델이 관측 결과를 더 잘 묘사하는지를 비교한다. 검은색 선은 실제 초신성 관측 데이터의 경향이다. 선이 위쪽의 푸른 영역에 가까울수록 타임스케이프 모델에 더 잘 따라간다는 뜻이고 아래쪽 붉은 영역에 가까울수록 기존의 ΛCDM 모델을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오차가 크지만 전반적으로 실제 관측 데이터(검은 선)는 위의 푸른 영역에 더 가깝다. 기존 ΛCDM 모델보다 오히려 타임스케이프 모델이 관측 결과를 조금 더 잘 설명한다. 특히 적색이동이 작은 가까운 거리에 놓인 초신성에서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초신성 관측 데이터는 유용하지만 아직도 그 수가 충분치 않다. 따라서 무엇이 맞는지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다만 흥미로운 사실은 기존의 표준 모델만으로는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 크고 작은 문제가 하나둘 쌓였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큰 틀은 건드리지 않고 사소한 가정과 보정치를 손보면서 표준 모델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천문학자들은 더 과격해지고 용감해졌다. 심지어 거시적 관점에서는 우주의 밀도가 전반적으로 평탄하다는, 현대 천문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전제 조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타임스케이프 모델은 우주의 크고 작은 밀도 차이로 인한 중력적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주는 우리 생각보다 평탄하지도 균일하지도 않으며, 아주 복잡한 세계라고 이야기한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른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l/article/537/1/L55/7926647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3/3/2615/7737665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8b7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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