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AI)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 앞에 도전자가 나타났다. 고사양 칩 없이 챗GPT급 성능의 AI 모델을 구현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다. 경쟁사 대비 훨씬 낮은 개발 비용을 앞세운 딥시크의 등장으로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 계획과 미국의 AI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충격을 안긴 딥시크는 헤지펀드 사업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설립자 량원평은 최근 중국 총리 주최 비공개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등 AI 산업에서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AI도 ‘가성비’ 실리콘밸리 뒤흔들어
딥시크는 AI도 경제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띄우며 실리콘밸리를 흔들고 있다. 오픈AI를 필두로 한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더 많은 돈과 칩, 전력, 데이터를 투입하면 AI가 계속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왔다. 지난해 11월 샘 알트먼 오픈AI 대표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힌 생각과도 일치한다. 알트먼은 “딥러닝은 효과적이고, 예상대로 규모가 커질수록 더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자 중”이라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AI는 규모가 커질수록 더 나아진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지난 20일(현지시각) 공개된 새 AI 챗봇 ‘딥시크-R1’은 AI 분야에 ‘가성비’라는 강력한 화두를 던졌다. R1은 수학, 코딩, 자연어 추론에서 오픈AI의 o1 모델에 대적하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모든 모델이 무료다. 개발 비용은 훨씬 저렴하다.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저가 칩을 훈련에 활용해 2개월 만에 600만 달러(86억 원)로 구축했다. 개발 비용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은 추정치지만 빅테크들이 투입한 수십억 달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다. 오픈AI의 주요 파트너인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인프라에 올해만 약 800억 달러(115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엔비디아 칩 대량 비축’ 소문도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 최고 기업들을 긴장시킨 설립자 량원평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량원평은 AI 기술이 아닌 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헤지펀드 매니저 기업가다. 언론 등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은둔형 리더’로 수식된다. 중국 매체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중국 남부 광둥성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 부모 밑에서 자랐고,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와 기술 기업의 본거지인 중국 동부 저장성의 저장대학교에서 정보통신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AI 분야에 발을 들인 건 2015년 하이플라이어라는 헤지펀드를 공동 설립하면서다. 이 펀드는 기존의 기계 학습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AI 예측 기반 거래 전략에 집중했다. 2019년 하이플라이어는 거래를 위한 AI 알고리즘과 애플리케이션 연구에 전념하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량원평은 칩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뛰어난 인프라 팀을 만들었다. 이 헤지펀드에서 딥시크로 최고의 인재를 데려갔다”고 전했다.
량원평은 2023년 항저우에 본사를 둔 딥시크를 설립한다. 그는 중국 매체 웨이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이 AI에 뛰어드는 게 너무 늦었다거나 비용적으로 무리라는 의견을 일축했다. 량원평은 “현 시점에서 기술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지 않는다”며 “재생산을 하면 비교적 저렴하다. 공개 논문과 오픈소스 코드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훈련 시간 또는 미세 조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딥시크의 ‘혁신’ 뒤에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수출 제재가 자리한다. 미국은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및 AI 역량을 겨냥해 수출을 규제해왔는데 이를 우회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다가 초저비용의 AI 모델이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
AI 분야에서 중국의 입지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량원평은 “우리는 종종 중국과 미국 AI 사이에 1~2년의 격차가 있다고 말하지만 진짜 격차는 독창성과 모방의 차이”라거나 “바뀌지 않는다면 중국은 항상 추종자일 뿐이다. 어느 정도의 모험은 불가피하다”라고 언급했다.
외신들은 량원평이 2021년 엔비디아 A100 칩을 대량으로 비축했다는 소문에 주목한다. 이 칩은 2022년 9월 중국으로의 수출이 금지됐다. BBC는 칩 비축량을 약 5만 개로 추정하며, 딥시크 기술에는 이 고성능 칩과 저가형 칩이 함께 쓰였을 것으로 본다.
딥시크가 R1을 선보인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국 테크 주식들이 일제히 폭락했을 정도로 타격이 컸다. 민감 정보의 관리와 개인정보 무단 수집 같은 문제, 또는 더 비싼 칩과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도 홍보를 위해 저비용으로 포장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하지만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전 세계 AI 산업에 일으킨 파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량원평은 지난 20일 리커창 총리 주재 회의에서 AI 분야에서 홀로 참석하며 중국 산업의 새로운 얼굴로 등장했다.
BBC는 “딥시크의 성과는 AI 발전에서 대규모 예산과 최상급 칩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기존 믿음을 뒤엎었다”며 “딥시크의 발전은 중국 내에서 더 큰 야망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기술 기업들이 유사한 혁신 경로를 추구하도록 영감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
2기 트럼프 '칩스법'에 풍전등화 삼성·SK "막아줄 정부가 없다"
·
인공지능과 수다 떨고 게임하는 '캐릭터 채팅' 유료화 성공할까
·
카카오에 기운 사이, 다음의 '다음'이 안 보인다
·
CES 2025, AI 두뇌 활용할 '몸뚱이' 경쟁 본격화
·
[비즈피플] 25년 로봇 외길 '휴보 아빠' 오준호 교수가 삼성에 간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