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로제의 ‘아파트’는 2024년 12월 말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22위에 자리 잡더니 2025년 1월 4일에는 34위까지 떨어졌다. 이때만 해도 더 상승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개 한 번 밀려난 곡은 ‘역주행’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K팝이 그런 사례는 더 드물다. 설령 역주행해도 그 상승 폭이 크지 않는 법이다. 10주 연속 차트에 들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것만도 대단한 기록이다.
그런데 2025년 1월 11일 자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아파트’는 깜짝 놀랄 만한 기록을 보였다. 무려 29계단이나 상승한 5위를 기록한 것이다. 급격한 역주행은 빌보드에서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아파트’는 영국 오피셜 싱글 톱100 차트 2위에 랭크되었는데, 이 역시 무려 26계단이나 상승한 결과였다. 호주 음반산업협회(ARIA) 싱글 톱50 차트에서는 새해 첫주에 1위를 기록, 전주보다 7계단이나 상승했다.
역주행 현상의 배경으로 ‘홀리데이 시즌’이 꼽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캐럴이 차트에 올랐다가 이후 빠지면서 ‘아파트’의 차트가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역주행이 홀리데이 시즌 이전의 순위를 회복했거나 오히려 뛰어넘었다는 사실이다. ‘아파트’는 영국 오피셜 차트에 10월 넷째 주에 데뷔해 11월 둘째 주에 다음 순위가 매겨졌는데, 3주 연속 2위를 차지했다. 빌보드 ‘핫 100’에서는 최고 기록이었던 11월 2일 자의 8위를 넘어 3주간 안정적으로 5위를 차지했다.
빌보드 8위에 이어서 5위는 여성 솔로와 여성 그룹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10위권에 들어온 최초의 K팝 여성 솔로 가수라는 기록이 더는 새롭지 않게 되었다. ‘아파트’는 연일 자체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K팝의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올라가는 것은 K팝의 차트 순위 패턴과 다르다. 대체로 K 팝은 팬덤의 강력한 포진과 지원으로 처음에 크게 상승하다가 쇠락하는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로제의 ‘아파트’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상당히 장기간 흥행하고 있다.
처음의 상승은 미국 팝가수와 협업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브루노 마스의 후광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 팝가수와 협업한다고 무조건 상위권에 자리 잡는 것은 아니다. 블랙핑크와 셀레나 고메즈가 함께 부른 ‘아이스크림’은 13위에 머물렀다. 더구나 이때는 블랙핑크의 전체 멤버가 모두 참여했다. 당연히 개별 팬덤보다 완전체의 팬덤이 더 큰데도 ‘아파트’ 순위가 더 높은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장기흥행을 하고 더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신나고 경쾌한 리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또 SNS를 통해 화제가 되기에 알맞았다.
다만 ‘강남스타일’은 안무가 강점이었지만, ‘아파트’는 실내의 게임 요소가 강점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는 계절적인 배경에서 짚어볼 수 있다. ‘강남스타일’은 야외에서 활동하기 좋은 여름에 발표되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반대로 ‘아파트’는 북반구를 중심으로 실내 공간에 머무는 계절에 부합했다. 아파트 게임은 주로 실내 공간에서 한다.
‘강남스타일’과 ‘아파트’의 뮤직비디오도 차이가 있다. ‘강남스타일’은 거의 전부 야외 공간을 배경으로 한 데 반해, ‘아파트’는 실내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소소하고 즐기듯이 부를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따라서 집단으로 댄스를 추는 ‘강남스타일’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아파트’에 접근할 수 있다. K팝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 즉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군무에 기반한 힙합이나 EDM, 팝 댄스와 차별화된다.
블랙핑크가 줄기차게 시도한 패셔니스타의 파격성도 덜하다. 그만큼 친숙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적절하게 버무려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 싱글 순위에서는 잘 들리고 잘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 인기가 많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자. K팝이 진정으로 글로벌 싱글 차트 1위를 지향한다면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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