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면세업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면세점이 폐점을 결정하고, 브랜드가 잇따라 철수하면서 협력업체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신세계면세점 본점 앞 시위 이어져
지난 9일 신세계디에프는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의 운영을 24일 종료한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을 인수해 면세 사업에 뛰어들었다.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은 신세계의 1호 면세점으로 그간 매출 효자 지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면세업계 불황이 이어지면서 신세계디에프 실적이 급격히 하락했고, 결국 2026년까지 영업 허가를 받았던 부산점 특허권을 조기 반납하고 폐점을 결정하게 됐다.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의 폐점과 함께 근로자들의 고용 문제가 불거졌다. 부산점에서 근무한 협력업체 직원들은 부산점이 폐점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한다. 특히 미국 최대 화장품기업 에스티로더그룹의 상품을 면세점에 판매하는 한국법인 엘코잉크 소속 근로자들은 부산점 폐점으로 인해 부당한 인사 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측에 따르면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이 폐점을 결정함에 따라 면세점에 입점한 협력사들은 소속 직원을 부산 내 다른 면세점으로 이전 배치했다. 반면 부산점에 근무하던 엘코잉크 직원은 11명 중 9명을 부산이 아닌 서울, 인천, 제주 등으로 발령 냈다. 노조 측은 회사의 일방적 원거리 발령은 사실상 퇴사 압박과 다름없다며 부당한 인사 발령이라고 맞섰다.
노조는 12월 20일 신세계면세점 부산점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1월 7일 신세계면세점 본점 앞에서 고용 책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17일에는 엘코잉크 본사(서울 강남구) 앞에서 노조 차원의 결의대회를 가졌고, 20일부터는 엘코잉크 본사 및 신세계면세점 본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노조 관계자는 “부산의 다른 면세점 상황을 알아보니 인력이 부족한 분위기였다. 브랜드당 최소 3명의 인원,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는 5~6명이 근무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겨우 2~3명이 일하고 있더라”며 “충분히 부산 내 배치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원거리 발령을 낸 것은 부당한 처우”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면세 시장 상황이 안 좋지만,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며 “매출이 안 나오는 매장에 판매 사원을 늘리는 것이 브랜드 입장에서는 비용만 나가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인력 충원에 보수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엘코잉크와 노조는 폐점 후 인사 발령과 관련해 협의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내 발령 인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비즈한국은 관련 문의를 위해 엘코잉크 측에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면세업계 불황 장기화, 고용 불안감도 커져
면세점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신세계면세점에도 고용안정의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신세계면세점이 협력업체 직원을 직접 채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폐점 관련 사항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등의 태도로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노조 관계자는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11월에 부산점에 근무하던 자사 인력을 크게 줄였다. 80명 근무 인력 중 15명만 남았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본사 직원들이 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무슨 상황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빠진 인력의 공백을 채우느라 일을 몇 배로 더 해야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황 파악을 위해 신세계면세점에 세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며 대화도 요구했으나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 (폐점)일정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7일에 기자회견을 여니 그제야 협력업체에 폐점일을 공유했다”고 푸념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디에프 측은 “폐점이 확정되고 곧바로 입점 브랜드 측에 일정을 공유했다. 브랜드 측과는 계속 소통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지난해 희망퇴직 시기에는 부산점 폐점 등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었다.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들이 너무 많이 나갔고, 브랜드 철수 요청도 있었다. 다수의 브랜드가 철수하겠다는 요청을 많이 해왔던 상황에서 계속 붙잡아왔는데, 더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폐점 결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1년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이 폐점할 때도 협력업체 직원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신세계디에프는 강남점에 배치됐던 자사 직원을 명동점으로 이전 배치하면서, 고용 논란을 고려해 협력업체에도 명동점의 순환 배치를 권유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19로 시장 상황이 불안한 탓에 일부 업체들은 폐점을 이유로 직원들을 정리했다.
면세점은 근무인력의 80~90%가량이 협력업체, 파견업체 소속이다. 면세점 소속 직원들은 폐점 시에도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협력업체 직원들은 언제든 실직 위기에 놓일 수 있다. 2016년 워커힐면세점이 문을 닫을 때도 회사 측은 본사 직원 200명에 대한 고용은 보장하겠다고 했으나, 협력업체 직원 700명의 고용에 대해선 “브랜드가 판단할 문제”라고 전했다. 2019년 갤러리아면세점63 폐점 때도 130여 명의 협력사 직원들이 실직 위기에 놓였지만, 회사는 “향후 지속적인 인력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업계에서는 면세업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감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해 3분기까지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국내 면세점 4사의 누적 적자는 1355억 원에 이른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서울 롯데월드타워점 매장 면적을 축소했다. HDC신라면세점도 올해 말 특허권 만료가 예정돼있어 폐점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통업 중 가장 상황이 안 좋은 것이 면세업이다. 면세업은 정치적 영향에도 민감하다 보니 최근 코로나19 시기만큼이나 위기감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당분간 면세업계의 고용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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