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메이저 건설사 중 한 곳이 최근 재건축 조합에 낸 입찰보증금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입찰보증금은 건설사가 재건축 조합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내는 보증금으로, 통상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으면 100억 원, 많으면 수백억 원에 달한다. (참고로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6·7단지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요구한 입찰보증금은 500억 원이다.) 그런 상황에서 건설사가 조합에게 ‘입찰보증금 대여’를 요구한 것. 시중 금리보다 높은 이율로 이자를 줄 테니, 보증금까지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유동성이 좋지 않은 것이다.
지난 16일 시공능력평가 순위 103위이자 경남 지역 2위 건설사인 대저건설이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산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948년 설립된 대저건설은 도로와 철도, 항만에 이어 주택과 도시개발사업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최근 건설경기 악화와 공사비 급등으로 미수금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23년엔 97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건설사들 향해 커지는 우려감
국내 건설업계를 바라보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연말, 국토교통부 시공능력 평가 58위의 중견 건설사 신동아건설이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입찰보증금까지 빌릴 정도로 건설사들의 유동성이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신동아건설은 ‘파밀리에’ 브랜드를 내세워 아파트 건설 사업에도 적극 참여했지만, 최근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야심차게 분양했던 ‘검단신도시 파밀리에 엘리프’는 1·2순위 청약에서 평균 0.51대1의 경쟁률 미달을 기록하며 부진했고, 이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만기였던 60억 원 상당의 어음을 막지 못했다. 결국 신동아건설은 지난 2019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5년여 만에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서울회생법원에 접수해야 했다.
유동성 위기는 대형 건설사들도 직면한 문제다. 국내 대형·중견 건설사의 부채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0대 건설사 중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 곳은 3곳이었다. 통상적으로 200% 이상이면 위험하다고 보는데, 10위권 박에서는 계룡건설산업(17위, 231.2%)이나 동부건설(22위, 249.9%), 한신공영(28위, 221%), HL D&I한라(30위, 269.3%), 두산건설(32위, 338%) 등의 부채비율이 좋지 않았다. 부채비율 400%를 넘어선 곳은 워크아웃과 기업회생관리를 신청한 태영건설(24위, 747%)과 금호건설(20위, 640%) 등이 있었다.
#10대 건설사 미청구 공사액도 증가
10대 건설사들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미청구공사액도 19조 5933억 원으로 전년 말 대비 11.68% 증가하는 등 유동성 위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물산건설부문이 2.7조 원, HDC현대산업개발이 1.3조 원, 롯데건설 1.85조 원, 대우건설 1.63조 원 등 10대 건설사들의 미청구 공사액 규모도 상당하다. 미청구공사액은 공사를 진행했지만 발주처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돈인데, 잠재적 부실로 판단한다. 발주처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견 건설사의 연쇄 부실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23년 이후 대우산업개발(75위)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대창기업(109위), 신일(113위) 등 100위권 안팎의 건설사가 건설경기 침체를 넘기지 못하고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올해도 원자재가격 상승, 고환율,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어려움이 불가피하다. 특히 중소·중견 및 지방 건설사의 경우 대형 건설사들에 비해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해 경기 악화에 버틸 유동성이 취약하다. 당장 금융권도 건설사들에 대한 대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다.
부동산 PF 업무를 담당하는 한 은행 담당자는 “최근 건설사들이 재건축 입찰보증금 수백억 원까지 다시 빌려다가 쓸 정도로 자금 유동성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문제는 올해 당장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흐름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특히 10대 건설사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미분양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유동성 문제가 올해 중소·중견 건설사부터 시작될 수 있어 금융당국도 이를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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