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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연예인 vs. 기획사' 법원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특정 편 들기보다 계약의 합리적 해석을 강조…신뢰 파괴 시 중대한 사유 없어도 전속계약 해지 가능

2025.01.14(Tue) 13:01:19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전속계약을 체결한 연예인은 제삼자와 유사한 계약을 체결하거나 제삼자를 통해 연예인 활동을 할 수 없다.


연예인, 모델, 크리에이터 등은 기획사와 ‘전속계약’ 또는 ‘매니지먼트계약’을 체결한 계약 관계에 기초해 활동한다. 전속계약이란 기획사 등이 연예인의 업무 처리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연예인은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만 연예 활동을 하면서 직접 또는 제삼자를 통해서는 연예 활동을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말한다.

 

기획사는 전속계약을 통해 매니지먼트 권한을 얻는다. 매니지먼트 권한이란 연예인의 활동 및 이에 부수되는 방송 출연, 광고 출연, 행사 진행 등을 섭외하고 연예인을 대리해 각종 계약을 체결하는 권한을 말한다.

 

‘전속’이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전속계약을 체결한 연예인은 계약 상대방인 기획사에만 소속되므로, 제삼자와 유사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거나 제삼자를 통해 연예인 활동을 할 수 없다. 기획사가 전속계약을 체결하면 연예인에 대한 강력한 권한을 취득하므로, 과거에는 기획사가 전속계약을 빌미로 연예인에게 부당하거나 강압적인 요구를 한 사례가 있었다. 이 때문에 ‘노예계약’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고, 전속계약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면 으레 ‘기획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전속계약 관련 분쟁에서 주로 문제가 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첫째, 전속계약에 불공정한 조건이 설정된 경우다. 예를 들어 ① 전속계약의 계약기간을 부당하게 장기간으로 설정하거나 ② 연예인의 연예 활동으로 성립된 지적재산권을 부당하게 탈취하거나 ③ 과도하게 높은 금액으로 위약금을 정한 사례 등이다.

 

둘째, 전속계약의 이행 과정이 불공정한 경우다. ①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정산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사례 ② 연예인의 신체, 정신적인 건강을 훼손할 정도로 스케줄을 일방적으로 설정한 사례 ③ 기획사 관계자가 성범죄에 연루된 사례 등이다.

 

전속계약과 관련된 분쟁은 기획사와 연예인 모두에게 손해다. 특히 연예인의 경우 전성기가 짧다는 점에서 한창 인기가 있을 때 발생한 분쟁은 활동에 치명적인 지장을 준다. 분쟁으로 인해 활동을 접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 전속 계약의 제정, 대중문화 예술기획업 등록 제도 도입 등은 연예 업계에서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됐다. 전속계약 체결 시 공정위의 표준 전속 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이 강제는 아니다. 그러나 표준 전속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별도 양식을 사용하거나 특약을 설정하는 경우 그 필요성과 합리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불공정 조항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표준 전속 계약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결과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체결되는 전속계약의 계약기간은 표준 전속 계약이 정한 7년이 된다.

 

그리고 기획사, 즉 대중문화 예술기획업을 영위하려는 사람은 관련 법령에 따라 교육을 받고,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후 회사의 주요 사항을 등록해야 한다. 정보는 홈페이지를 통해 외부에 공개되는데, 이런 기본적인 규제만으로도 사전에 기획사를 검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속계약은 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 관계를 기초로 하는 계속적 계약의 일종이다.​


위와 같은 규제는 분명 연예인의 권익 보호에 큰 도움이 됐다. ‘한류 중흥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연예인이 표준 전속 계약의 내용을 교묘히 이용해 계약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고 있다며, 기획사의 기본적인 권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표준 전속 계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전속계약을 둘러싼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분쟁에서 법원은 어떠한 입장을 보일까? 주요 판결을 보면, 그 어느 편에 있지 않은 채 계약의 합리적 해석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전속계약은 성질상 계약 목적의 달성을 위한 당사자들 사이의 고도의 신뢰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뢰 관계가 깨졌다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고 없고를 따질 필요 없이 연예인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성범죄로 기소된 기획사 관계자가 미성년 여성인 연예인의 차를 운전한 것은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행동이므로 사실상 신뢰 관계가 훼손된다. 따라서 연예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한편 여러 하급심 판결에 따르면 연예인의 계약 위반을 이유로 기획사가 위약벌 조항을 규정할 수 있고, 그 조항을 불공정한 무효 조항으로 볼 수 없다. 기획사 입장에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 연예인이 무단으로 계약을 이탈하면 큰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손해액 입증에는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적절한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곤란하다. 이러한 사정으로 기획사는 연예인과의 전속 계약을 체결할 때 연예인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재 수단을 사전에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위약벌 조항을 설정하는 것 그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위약벌 금액을 지나치게 과다하게 설정하면 위약벌 조항의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 최근 법원의 판결과 결정을 보면 수익 분배의 적정성은 신뢰 관계의 존속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므로, 기획사는 계약에서 정한 시기에 정산금을 지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의무도 부담한다.

 

전속계약은 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 관계를 기초로 하는 계속적 계약의 일종이다. 신뢰 관계가 파괴돼 계약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계약을 깨고자 한다면,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 계약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체결된 전속계약을 사후적인 사정을 들어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약 조건 및 이행 과정에서 불공정성이 있다면 당연히 다퉈야겠으나, 그러한 사정이 없다면 가급적 계약의 효력을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도 바람직한 태도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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