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빅뱅 직후 우주 끝에서 그동안 예상치 못한 놀라운 장면을 발견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을 유독 난감하게 만드는 발견도 있는데, 우주 끝에서 발견된 아주 작고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반점들이 그렇다. 이 반점은 Little Red Dot, LRD라고 부른다. 빅뱅 이후 우주의 나이가 채 10억 년도 되지 않았을 때 존재했던 원시 은하 또는 원시 블랙홀 등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정확한 정체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끔 일부 언론과 유튜버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천문학계의 흥분을 전하는 일부 짓궂은 천문학자들의 입을 빌려 “빅뱅 이론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식으로 과장된 보도를 하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은 기존 빅뱅 이론 자체가 무너질 만한 발견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그런 표현을 하게 만들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발견이다.
붉은 반점들은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 존재했을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제임스 웹이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는 지금에 비해 덜 진화했다. 초신성들이 충분히 터지지 못했던 시기다. 대부분 순수한 수소와 헬륨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당연히 그러한 별들로 이루어진 은하도 마찬가지였다. 원시 은하들은 수소에서 방출되는 강렬한 방출선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원시 은하 때부터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했다면, 지금 은하들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블랙홀을 중심으로 은하는 빠르게 회전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의 일부는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이동하고, 나머지 절반 일부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쪽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는 물체의 빛을 관측하면 파장이 더 길어지고 짧아지는 도플러 효과를 겪게 된다.
따라서 중심에 무거운 블랙홀을 품은 채 빠르게 회전하는 은하들의 빛은 파장이 더 길거나 짧은 쪽으로, 양쪽으로 더 퍼져 보이게 된다. 스펙트럼에서 여러 화학 성분이 뾰족하고 예리한 방출선은 더 펑퍼짐하게 넓은 파장에 걸쳐 퍼지게 된다. 이것을 선폭 증가라고 한다. 특히 블랙홀의 질량이 무거울수록 은하의 회전은 더 빨라지고 스펙트럼의 선폭도 더 넓어진다. 이런 특징을 광폭선(Broad line)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제임스 웹이 겨냥한 우주 끝자락의 은하들은 우주 팽창과 함께 빛의 속도를 훌쩍 뛰어넘는 아주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팽창은 은하들의 빛이 극단적으로 더 긴 파장으로 치우쳐 보이게 만드는 적색이동을 일으킨다. 원래는 은하 속 수소 가스들이 훨씬 파장이 짧은 자외선 대역에서까지 빛을 내보냈을 테지만, 지구까지 날아오는 긴 세월 동안 파장이 훨씬 긴 적외선으로 치우치게 된다. 제임스 웹이 보는 붉고 흐릿한 반점들은 바로 이런 극단적인 적색이동을 겪은 수십억 년 전의 빛이다.
그런데 하나둘 붉은 반점이 발견되면서 당황스러운 사실이 밝혀졌다. 처음에 천문학자들은 붉은 반점들이 가운데에 거대한 블랙홀을 품은 채 아주 먼 우주 끝자락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우주 팽창과 함께 더 긴 파장으로 늘어지며 남긴 모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붉은 반점들 대부분은 뚜렷한 선폭 증가를 보이지 않는다.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은하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은하가 아닐지 모른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로 이상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몇 가지 가설들이 있다. 우선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너무 강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어서, 블랙홀 주변을 맴도는 은하 속 평범한 별과 가스 구름의 빛이 잘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빅뱅 직후 초기 우주 은하다 보니 지금에 비해 훨씬 작은 은하일 수도 있다. 게다가 너무 밀도가 높은 먼지 구름으로 싸여 있어서 은하 안에서 방출되는 더 밝은 짧은 파장의 푸른 별빛들이 대부분 가려진 결과 유독 더 붉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으로 발견된 붉은 반점 중 하나인 CANUCS-LRD-z8.6를 분석했다. 적색이동이 약 8.6에 달하는 아주 먼 은하다. 이 은하는 우주의 나이가 겨우 5억 8000만 년 밖에 안 되었을 때의 모습을 간직한다. 그래서 금속 원소들의 함량은 극도로 낮다. 이 은하는 희미하지만 분명 확인할 수 있는 선폭 증가를 보인다. 이를 통해 추정한 결과, 중심에 숨어 있는 블랙홀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천만 배를 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 질량이 태양 질량의 400만 배니, 반점 속 블랙홀은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우주의 나이가 겨우 6억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살고 있던 갓난아기 원시 은하가 100억 년도 넘은 우리 은하보다 거의 두 배 이상 더 무거운 블랙홀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주가 막 탄생한 아주 먼 과거에 이렇게나 무거운 블랙홀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건 믿기 어렵다.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물질을 빨아들이며 성장한다. 하지만 블랙홀이라도 무작정 빨아들이지는 못한다. 동시에 주변에 모인 물질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블랙홀 바깥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블랙홀이 더 많은 물질을 빨아들일수록 사방으로 방출되는 에너지도 더 거세진다. 블랙홀이 지나치게 게걸스럽게 물질을 빨아들이게 되면 결국 블랙홀 바깥으로 방출되는 에너지가 너무 강해지고 더 이상 물질을 빨아들일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블랙홀이 얼마까지 물질을 잡아먹을 수 있는지 그 한계는 에딩턴 한계로 명확하게 정의된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폭풍 성장은 우리가 아는 한 불가능하다. 그런데 분명 제임스 웹의 사진 속 붉은 반점은 그런 폭풍 성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우량아 원시 블랙홀의 존재를 보여준다.
이를 설명할 한 가지 대안이 있다. 원시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 주변에 다른 별은 만들어지지 않고, 오직 초거대 블랙홀만 덩그러니 만들어지는 것이다. 블랙홀의 폭풍 성장을 막는 건 블랙홀 주변에 빨려들어가는 별과 가스 구름의 물질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방출되는 에너지다. 따라서 이러한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블랙홀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빠르고 거센 먹방을 찍을 수도 있다.
원시 우주에 존재하던 거대한 가스 구름이 별다른 별을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로 붕괴하고 반죽되는 직접 붕괴(Direct collapse)가 벌어졌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발견한 붉은 반점은 사실상 어떤 은하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홀로 초기 우주의 카오스 속을 떠돌고 있는 떠돌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라는 것이다!
흔히 언론에서 “빅뱅 이론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언급되는 제임스 웹의 최근 발견과 그 의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동안 예상했던 것보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의 은하들과 블랙홀이 더 빠르게 성장했던 것 같다.” 제임스 웹이 올라가기 전까지 빅뱅 직후 10억 년 이후의 우주까지만 겨우 거슬러 볼 수 있었던 때에는 우주가 태초부터 지금 알고 있는 수준의 적당한 성장 속도로 진화해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제임스 웹을 통해 빅뱅 직후 10억 년 이내의 우주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우주가 아주 어렸을 때는 더 빠른 성장통을 겪으면서 진화해왔을지 모른다는 징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실 초기 우주의 블랙홀과 은하들이 더 거센 성장을 해왔을지 모른다는 징후는 일찍이 앞선 다른 서베이 관측을 통해 조심스럽게 거론되었다. 우주 전역에 분포하는 은하들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슬로안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를 통해 이미 천문학자들은 20억~30억 광년 넘는 먼 거리에서 녹색 반점으로 보이는 일명 완두콩 은하(Green pea galaxy)를 발견했다. 산소 밀도가 아주 높고 풍부한 은하들이다 보니 유독 녹색 파장의 빛이 밝게 보인다. 하지만 먼 과거의 아기 은하들이기 때문에 크기가 우리 은하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래서 서베이 사진 속 모습은 작은 완두콩처럼 보인다.
완두콩 밭을 벗어나 더 먼 우주로 가면 이번에는 더 어둡고 흐릿한 푸른빛을 띠는 블루베리 밭을 만나게 된다. 사진 속에서 보라색에 가까운 푸르고 짧은 파장에서 그나마 밝게 보이는 흐릿하고 작은 반점들을 블루베리 은하(Blueberry galaxy)라고 한다. 2017년부터 진행한 본격적인 서베이 관측을 통해 지금까지 확인된 블루베리 은하는 1500개를 웃돈다. 이들은 아주 밝은 어리고 푸른 별만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은하로 추정된다. 지금 은하에 비해 10~100배 많은 폭발적인 별 탄생율을 보이는 스타버스트 갤럭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 먼 우주의 어린 아기 은하들이기 때문에 성장을 덜 했다. 그래서 크기가 우리 은하의 3000분의 1밖에 안 된다.
우리는 우주가 해바라기처럼 둥글고 큼직한 은하들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더 먼 과거의 우주로 갈수록 아직 덜 자란 작디작은 해바라기 씨앗들만 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 발짝 더 먼 우주로 나아갔을 때 뜻밖의 광활한 완두콩 밭을 마주했고, 또 한 발짝 더 먼 우주로 나아갔을 때에는 거대한 블루베리 밭을 만났다. 제임스 웹을 통해 관측 가능한 우주의 경계 근처까지 다다른 지금, 우리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붉은 수수밭을 또 만나게 되었다. 오늘날 아름답게 빛나는 수많은 은하로 채워진 우리의 우주는 138억 년 전 붉은 수수밭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4arXiv241204983T/abstract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4arXiv241204557L/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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