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밴드 음악 하면 대개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새 대중적 인기의 중심에 있다. 주요 음원 차트에 밴드곡이 상위권을 차지하는가 하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류선재(변우석 분)가 속한 밴드 이클립스의 곡 ‘소나기’조차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우리 음악 문화의 새로운 지평과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원래 밴드는 연주나 곡을 노래하는 구성원뿐만 아니라 무대의 제작 연출 팀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보컬과 연주 구성원을 묶어서 밴드라고 칭해 왔다. 대개 밴드라면 록밴드를 떠올린다. 이 때문에 저항적인 코드에 언더그라운드 이미지도 자연스러웠다. 음악의 분위기는 무겁거나 거칠었으며 헤어스타일은 당연히 비현실적이었고, 복장도 범상치 않은 둔중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래 가사들도 연가(戀歌)보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일쑤였다. 하위문화라는 면에서 자신들의 음악 공동체를 만드는 데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가지면 족했다.
동시에 이 때문에 일반 팬들이 다가서기는 쉽지 않았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목받은 가운데 KBS 2TV ‘TOP 밴드’처럼 밴드 음악을 다시 살리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녹록지 않았다. 공동체적인 가치와 대안적 음악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한 듯하다. 지금의 밴드 음악 열풍을 생각하면 달라진 대중음악 취향을 잘못 진단한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밴드 음악 열풍의 중심은 아이돌 밴드다. 아이돌 밴드는 흔히 연상하는 인디밴드가 아니라 기획사에 소속되어 트레이닝 된 음악 그룹이다.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우림, 윤도현밴드(YB), 크라잉넛, 버즈, M.C The Max의 문차일드, 루시 등이 인디밴드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다면 1998년 한스밴드가 걸그룹 밴드로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이들은 본격적인 아이돌 밴드는 아니었다.
1999년 클락비가 아이돌 밴드를 지향하고 등장했는데,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2012년 AOA가 밴드 걸그룹을 지향했지만 곧 댄스 그룹으로 탈바꿈했고, 원더걸스는 2015년 밴드 걸그룹 콘셉트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곧 활동을 중단했다. 최근 걸스 밴드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2023년 데뷔한 큐더블유이알(QWER)이다. 이들은 달라진 아이돌 밴드의 면모를 보인다.
아이돌 밴드로서 지속성을 인정받는 사례로는 2015년 데뷔한 데이식스(DAY6)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최초의 기획사형 보이 밴드로 출발했다. 기획사가 발굴 육성하는 점에서 다른 K팝 아이돌과 같지만, 무대 퍼포먼스에 주력하지 않는 싱어송라이터 유형이자 자율형 아이돌을 지향한다. 이전 밴드는 구성원이 보컬과 악기를 나누어 맡았지만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히트시킨 데이식스(DAY6)는 멤버 모두 보컬이자 악기 연주자이며 곡과 가사를 쓴다. 다른 K팝 아이돌과 같이 프로듀싱 능력도 더해졌다.
이들은 이른바 올라운더(All-rounder)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적 분위기는 이전의 밴드와 달리 밝고 서정적이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특정 장르에 쏠리지 않고 다양하고 폭넓다. 스타일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밴드 음악과 달리 모바일 SNS 시대에 맞게 반복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른다. 이 때문에 그들의 음색이나 보컬 실력이 매우 중요해진다.
밴드 음악의 인기는 K팝 음악의 피로에서 찾을 수도 있다. K팝은 대체로 힙합 베이스이거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지향한다. 이 둘은 무대 장악력을 보이지만 보이스와 사운드 관점에서 산만하거나 현란하다. 특히 가사의 전달력이 떨어진다. 아울러 갈수록 파트가 세분되어 따라 부르기도 어렵다. 보는 음악에 치우쳐 듣는 음악을 도외시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점이 밴드 음악에 있다. 청량감을 넘어서서 아날로그 정서로 힐링을 해줄 듯싶다. 밴드 음악이 일본 애니메이션 OST에 많이 활용되는 이유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기 때문에 밴드 음악이 선호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밴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밴드 음악은 항상 대안을 모색해왔다. 그런 면에서 K팝의 결핍과 획일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였다. 통합적 가치도 생각할 수 있다. 무대 공연에서 중요한 것은 멤버들의 화합과 협업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한다. 각자도생 담론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밴드 음악은 각별한 청년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던져준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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