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최초 인간형 로봇 ‘휴보’의 아버지이자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자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삼성전자에 합류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31일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추가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오 교수가 작은 실험실에서 제자들과 개발팀을 꾸려 만든 회사다. 2021년 상장 이후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고성장이 예상되는 로봇 분야에서 유망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통해 미래 로봇 개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지능형 로봇 전략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미래로봇추진단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오 교수가 어떤 시너지를 이끌지 주목된다.
#Character(인물)
오준호 교수는 ‘휴보 아빠’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국내 최초로 이족보행 인간형 로봇을 탄생시킨 오 교수의 유년 시절은 범상치 않았다.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난 오 교수는 재봉틀, 병원의 각종 의료장비 등 일상에서 접하는 기계에 유독 관심이 많았고 서울 신촌 일대 동네 고물상을 드나들며 라디오 부품과 군용 무전기, 고장 난 전축을 살피고 직접 뜯어봤다. 부친 고 오기형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11·1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모친 김현자 전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는 어린 오 교수의 호기심과 열정을 응원했다.
오 교수는 기계 및 전자·전기 지식 탐구와 만들기에 몰두한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에 진학하며 공학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서울 대덕고등학교를 졸업한 오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기계공학 학·석사를 마치고 2년 반 동안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근무했다. 이후 유학길에 올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 버클리) 대학원에서 시스템 자동제어 분야를 공부했다. 자동제어, CNC(수치제어) 기술은 로켓과 같은 정밀무기는 물론 공장 자동화, 각종 로봇을 다루기 위한 기본 학문이다.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85년 31세의 나이에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했다.
#Career(경력)
인간형 로봇 제작에는 2001년 뛰어들었다. 당시는 전 세계 공학도들이 일본 혼다사의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에 주목하던 때다. 아시모는 혼다사가 1997년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 ‘P2’를 개발한 지 3년 만에 선보인 로봇이다. 로봇 기반 기술이 부재하던 한국에서 오 교수는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지에 불타 동료 교수들의 연구비를 끌어모았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인간형 로봇 ‘KHR-1’의 몸체를 만들었고, 2003년 한 단계 진화한 휴보의 실험용 모델 ‘KHR-2’을 개발했다. 손, 머리, 케이스까지 갖춘 형태다.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이족보행이 가능한 인간형 로봇 ‘휴보’가 탄생했다. 앞선 두 로봇이 실험용 로봇이라면 휴보는 공식적인 완성형 로봇이다. 아시모가 15년간 약 3000억 원을 들여 개발됐지만, 휴보는 3년 만에 10억 원을 들여 개발됐다. 다섯 손가락을 따로 움직여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고 음성 인식 능력도 있다. 2005년 ‘알버트 휴보’와 ‘휴보 FX-1’로 계보를 이으며 한국의 로봇 개발 역량의 주춧돌을 다졌다. 연구용으로 개발해 실제 판매까지 된 것은 휴보2가 세계에서 처음이었다.
로봇이 진화한 20여 년간 개발자 오 교수의 대내외적 입지도 쌓였다. 대학에서는 2004~2005년 기술이전·교류센터장, 신기술창업지원단, 2011~2015년 특훈교수, 2013~2015년 대외부총장, 2015년 석좌교수, 2016년 로봇연구소장을 지냈고 현재까지 명예교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2년 로봇인대상 대통령표창, 2015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2015년 호암상 공학상, 2022년 한국공학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Capability(역량)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011년 오 교수를 주축으로 휴보 개발을 이끈 핵심 연구진이 모여 만든 로봇 전문 기업이다. 카이스트 내 연구소 휴보랩이 분사 창업(스핀오프)했다. 외국 연구기관으로부터 휴보 구입 요청이 쇄도한 게 창업 계기가 됐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도 2002년 연구소에 합류한 원년 멤버다. 그동안 몇 차례 진화를 거친 로봇은 해외 챌린지에서 우승(DRC휴보)도 하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에도 나섰다. 이족보행 로봇, 협동로봇, 초정밀 지향 마운트 기술 보유한 회사는 삼수 끝에 2021년 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불모지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를 개척하고, 미래 산업 영역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는 무엇보다 오 교수와 연구진의 열정이 지목된다. 과거 국정홍보처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 오 교수는 “목표가 확실했고 개발 초기부터 기술적 준비도 철저히 했다.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세웠다”고 밝혔다.
#Critical(비판)
상장 이후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성장 속도가 기대보다 더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두 차례 고배를 마시고 ‘턱걸이’로 상장했다는 꼬리표도 단골로 붙었다. 로봇주의 대장주로 꼽혔지만 주가는 미지근한 흐름을 보였다. 2022년 13억 원이던 영업이익은 2023년 445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다만 파생상품 회계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적자여서 현금 유출은 없었다.
로봇 산업 전반의 매출 실적이 정체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영향도 있다. 고금리와 글로벌 산업용 로봇 기업의 신규 수주가 감소해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이어졌다. 박세민 SK증권 연구원은 “로봇 시장의 성장성이 폭발적이나 매출 실현 기간의 가시성이 떨어지는 것이 확인될 때마다 주가는 수급적 요소에 의한 단기 변동폭이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Challenges(도전)
오 교수는 레인보우로보틱스에서 퇴임하고 삼성에 합류해 삼성전자 로봇사업 기획자로 나선다. 해가 바뀌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는 보유 중인 콜옵션을 행사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산하에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고 단장으로 오 교수를 선임했다. 내년까지 자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1000대를 공장에 배치할 계획인 테슬라나, 내년 상반기 휴머노이드 로봇용 소형 컴퓨터 출시를 예고한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AI, 소프트웨어 기술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접목해 지능형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단장직과 삼성전자의 경영 고문을 겸임하는 오 교수의 역할도 주목된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영업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해외 시장 진출에도 유리하다.
경쟁력 있는 로봇 기술에 대한 삼성전자의 니즈와 대규모 양산 체계 구축 등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어떻게 시너지를 낼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동로봇, 양팔로봇, 자율이동로봇 등을 제조, 물류 등 업무 자동화에 활용하고, 이 로봇들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상황별 데이터, 환경적 변수 등을 AI 알고리즘으로 학습하고 분석해 작업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향후 삼성전자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력 방향과 사업 전략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자체보다 AI 등 기반 기술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위해서는 이동성과 AI 기반 자율성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는 평가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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