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책은행은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렸지만, 최근 민간 금융사보다 낮은 보수에 불만을 품은 종사자들이 이탈하면서 ‘신의 직장’은 옛말이 됐다. 급기야 중소기업은행(IBK기업은행)은 정부와 은행을 향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처음으로 단독 총파업을 진행했다. 파업 이후 열린 교섭에서도 노사가 입장차를 보인 가운데,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김성태 IBK기업은행 행장이 노사 갈등을 봉합하고 임기를 마무리할지 주목된다.
기업은행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 지부)는 2024년 마지막 금요일인 12월 27일 1차 총파업에 나섰다. 노조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중 약 85%(약 7000명)가 총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기업은행 노조원은 은행 문을 일찍 닫고 본점 건물 앞에 모여 정부와 경영진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가두행진 등을 진행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요구하는 건 차별 임금 개선과 체불 임금 지급이다. 노조 측은 “국책은행이지만 시중은행과 경쟁한다. 이익을 내는 방식과 업무도 동일하다”라며 “하지만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시중은행 대비 30% 낮은 임금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집계한 2023년 금융기관 평균임금에 따르면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시중은행의 임금은 평균 1억 1600만 원, 기업은행은 8500만 원이다.
노조는 임금 격차의 이유로 △업계 대비 낮은 임금인상률 △특별성과급 미지급을 꼽는다. 배경에는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구조와, 총인건비의 제한으로 초과이익 배분·성과급 지급이 불가능한 구조가 있다. 노조는 은행의 초과 이익을 나누는 이익배분제를 도입하고, 인당 600만 원씩 쌓인 미지급 시간 외 수당(보상 휴가)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할 것을 정부와 은행에 요구하고 나섰다.
은행은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는 2024년 10월부터 시작한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주요 안건으로 임금인상률 2.8%, 시간외수당 전액 현금 지급, 이익배분제 도입, 명절비·대직수당 신설, 주4.5일제 시범도입 등을 제시했지만 은행은 기재부·금융위 승인을 이유로 거부했다. 임금인상률의 경우 공무원 가이드라인인 2.5%를 제시해,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총파업 이후 열린 교섭에서도 합의는 실패했다. 2024년 12월 29일 진행한 추가 교섭에서 은행 측이 임금 인상 차액분을 받는 조건으로 임단협 합의와 투쟁 중단을 요구하자, 노조 측은 ‘협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교섭이 결렬된 채 해를 넘겼다. 노조는 쟁의권을 유지하면서 기존의 임단협 요구안을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오는 10일 대의원 대회에서 제18대 노조가 새로 출범하는 만큼 협상에 전환점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나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없다. 제안이 와야 교섭을 할 텐데 피드백이 없어 기존 안건을 유지할 것”이라며 “새 노조위원장 취임 이후 상황에 따라 2, 3차 총파업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3년 임기의 마지막 해를 맞이한 김성태 IBK기업은행 행장이 새 노조와 적극 대화하며 노사 갈등을 해결할지도 주목할 지점이다. 김 행장은 역대 네 번째로 탄생한 기업은행 출신 행장으로, 내부 출신으로서 갈등을 봉합하고 임기를 마무리할지 눈길이 쏠린다.
2023년 1월 취임한 김 행장의 임기는 2026년 1월 2일까지다. 재임 중 첫 단독 파업이라는 악재를 맞긴 했으나, 통상 국책은행 행장이 연임하는 경우는 드물어 연임 여부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행장은 최근 신년사에서 류장희 노조위원장 당선인을 향해 축하를 전했지만 처우 개선에 관한 메시지는 담지 않았다. 대신 ‘직원이 공감하는 공정한 인사’ ‘다양한 경력개발 기회’ 등을 언급했다. 김 행장은 “직원들이 역동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자긍심을 느끼고 맡은 일을 활력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은 물론 직원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외적으로 기업은행은 시중은행과 맞먹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도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2024년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 1977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우리은행(2조 5244억 원), KB국민은행(2조 6179억 원)과 비슷하며 NH농협은행(1조 6561억 원)보다 훨씬 많다.
다만 자산건전성 악화를 향한 우려는 이어진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중소기업 대출과 관련한 연체율, 고정이하여신비율(총여신 중 회수에 문제가 생긴 여신 비율)이 상승했다. 여기에 은행의 주요 수익인 이자 이익은 감소(3분기 누적 별도 기준 2023년 5조 5957억 원→2024년 5조 4470억 원)하는 추세다.
정호준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2023년부터 고금리로 인한 차주 상환 부담 확대, 실물경기 침체로 기업은행의 건전성이 저하됐다”라며 “2024년 10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됐지만 실물경기 회복, 중소기업 영업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건전성 저하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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