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라면에 돼지고기 조각이 들었는데, 반입에는 문제가 없었다.” 지난해 중국을 다녀온 여행객 A 씨의 말이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잇따라 발생하자 농림축산검역본부도 검역을 강화했다. 그러나 여행객들은 여전히 반입이 금지된 축산물을 자유롭게 반입하고 있다. 검역에 구멍이 생긴 이유는 ‘라면’이다.
#고기 조각은 안 되고, 스프는 된다?
최근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화천군, 11월에는 강원도 홍천군, 12월에는 경기도 양주시 소재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확인됐다. 2024년에만 11건이 발생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위기 발령 체계를 개편해 지역에 따라 위기 단계를 다르게 발령할 수 있게 했다. 발생 위험이 큰 지역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는 취지다.
검역도 강화했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10월에 적발 건수가 많았는데, 해외여행객이 반입한 육류와 가공품 중 수입이 금지된 물품이 많아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24년 여행객 휴대 검역 축산물 불합격률은 99.7% 수준이다.
해외여행객이 휴대한 가공품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유전자가 확인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당시 여행객들이 해외에서 가져온 돈육가공품에서 바이러스 유전자가 여러 차례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 감염병이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확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검역 단계에서 ‘라면’은 예외가 된다. 미국, 호주, 대만 등과 달리 국내에서는 라면 스프에 ‘육류 성분(추출물)’이 들었다고 해서 반입을 금지하지 않는다. 단 고기 조각, 조림 형태의 육류가 들어있다면 반입이 불가능하다.
#컵라면은 괜찮다? 검역본부 “여행객이 표시사항 확인해야”
라면으로 검역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제품에 기재된 성분표만으로는 반입 금지 대상인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라면은 품목이 다양하기 때문에 제품을 뜯어보기 전까지는 검역 대상인지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육류가 추출된 스프 분말인지, 고기 조각이 함유된 분말인지 성분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국제공항, 항만에서 수화물 검역을 강화하면서 ‘라면’을 단속 품목으로 지정했다. 라면 스프에 축산물 가공품이 포함될 수 있어서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블로그에는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가 “일부 라면 스프는 육가공된 분말형태이기에 만약의 바이러스 유입 사태를 막기 위해서 국내에서는 단속 품목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 검역본부는 라면 제품을 원칙적으로 신고해달라고 안내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현재는 어떨까. 최근 인터넷 카페 등에는 ‘컵라면 반입 후기’가 넘쳐난다. 고기 조각이 함유된 컵라면도 문제없이 가지고 입국했다는 증언이다.
2019년과 달리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공항 검역 과정에서 ‘라면’을 단속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고시 등 규정이 바뀐 건 아니다. 고기 조각이 있는 라면은 여전히 검역 대상이지만, 검역관조차 라면 반입을 규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일본을 여행하고 온 B 씨는 비즈한국에 “챠슈 조각이 들어 있는 컵라면을 사 왔다. 혹시 몰라 공항 검역관에게 물어보니 ‘컵라면은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베트남 여행 후 소고기가 들어간 쌀국수 라면을 구매해온 C 씨도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기내 반입도 가능하다고 해서 사 들고 왔다”고 말했다.
면세점 등 여행객에게 잘 알려진 해외 상점 등에서도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반입이 불가능한 컵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면세점 판매 상품이라고 해서 모두 국내 반입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컵라면은 검역 대상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라면은 검역 대상 해당 여부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역에서 제외되는 모양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더 이상 라면을 검역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9년과 동일하게 축산물이 포함된 라면은 여전히 검역 대상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라면을 신고하지 않고 반입했다가 적발된 통계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여행객이 라면의 표시사항에서 축산물 포함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축산물이 포함된 제품은 검역 대상으로 봐야 한다. 축산물이 포함된 라면, 컵라면 등을 우육가공품 혹은 돈육가공품 등으로 분류하고 있어, 라면으로 세분화된 적발 실적을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
[가장 보통의 투자] 주요 기업 CEO 신년사에 숨겨진 투자 성공의 단서
·
[단독] '영화관을 아이스링크로' 메가박스 신사업 현재 상황
·
[단독] '유동성 위기 한숨 돌리나' 삼부토건 덕소1구역 부지 1300억 매각
·
"신의 직장은 옛말" 기업은행 노조 '최초 단독 총파업' 속사정
·
"의대생 현역 입대 10배 증가" 공중보건의 만성 부족 대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