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애경그룹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제주항공의 주가는 급락했고, 며칠 새 항공권 예약 취소 건수는 수만 건에 달한다.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을 향한 책임론도 제기되면서 50여 년간 애경그룹을 키워온 장영신 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Character(인물)
1936년 7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난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나이는 올해 89세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장 회장은 1955년 미국 필라델피아 체스넛 힐 대학에 진학해 화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1959년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 회장은 대학에 다닐 당시 졸업한 뒤 해외에서 계속 공부할 계획도 있었지만, 미국까지 날아와 수차례 청혼한 남편의 뜻을 못 이겨 결혼을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남편 고(故) 채몽인 애경그룹 창업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네 이웃이었다. 결혼 후 10년간은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다. 1970년 막내아들인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생계를 위해 회사 경영을 맡았다.
장 회장은 화통한 성격에 직설적인 말투를 가졌다. 애경과 거래하는 외국 업체 사이에서는 ‘터프 우먼’으로 불렸다고 한다. 노래를 잘해 어릴 적부터 콩쿠르에 자주 나갔고, 대학 시절에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오페라 공연에서 프리마돈나 역할을 맡았다. 장 회장의 오랜 취미는 음악회, 발레 공연 감상으로 꼽힌다.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해 일흔이 넘고도 중국어 공부를 했다. 새벽형 인간으로 오전 5시 기상해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항암치료 후 완치됐다.
#Career(경력)
1972년 애경유지공업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1985년 애경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1997년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초대회장을 맡고,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 구로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01년 대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정치 활동은 하지 않았다. 2001년부터 애경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직도 겸임 중이다.
#Capability(역량)
국내 여성 CEO 1호로 꼽힌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 후 회사를 맡은 당시만 해도 서류상 숫자도 제대로 읽지 못해 회사 직원들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지 않았던 때라 여성 경영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인생은 사업’이라는 모토로 일에만 매진했다고 밝혀왔다.
장 회장은 남편 사망 후 애경유지공업을 맡으면서 단순한 비누 제조업에서 한 발 나아가 화학공업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회사 경영을 책임진 지 1년 만에 석유파동이 터졌을 땐 직접 해외 시장을 개척해 위기를 극복했다. 1970년대 말 애경은 국내 대표 세제 기업으로 성장했고, 1980년대에는 치약, 화장품, 샴푸 등으로 제품을 확장했다.
1993년에는 애경유지공업의 옛 공장 부지인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애경백화점을 열고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손잡고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을 설립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경영인으로 나선 장 회장은 작은 비누 회사였던 애경을 41개 계열사를 둔 재계 62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Critical(비판)
애경그룹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해 국민적 신뢰를 한 차례 잃은 바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들이 사망하거나 폐 질환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독성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었기 때문이다. 애경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피해자를 가장 많이 발생시킨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히며 ‘가습기 살균제 살인기업’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지 8년 만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2019년 장 회장의 차남인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했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 소송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해 애경그룹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29일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전남 무안공항으로 들어오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착륙을 시도하다가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 관련 시설과 충돌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사고 발생 11시간 후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장 회장과 임직원 명의로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 장 회장의 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도 무안공항을 찾아 유가족에게 직접 사죄했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을 향한 부정적 여론은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Challenges(도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해 애경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 계열사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효자 계열사로 꼽혀왔다. 하지만 여객기 참사 이후 제주항공 주가는 급락했고, 항공권 취소 요청도 잇따르고 있다. 참사 발생일인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접수된 제주항공 항공권 취소 건수는 6만 8000여 건에 달한다. 애경케미칼, AK플라자 등 그룹 자회사들이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제주항공마저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 그룹의 수익구조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란 예상이 커지고 있다.
기업 이미지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애경그룹에 대한 신뢰 문제가 언급되고 가습기 살균제 사태까지 재조명되면서 애경 제품을 향한 불매운동 조짐도 보인다. 장 회장은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여론은 싸늘한 상태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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