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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멋지다 연진아" 옥씨부인전, 임지연 열연 빛나는 파격 사극

시원시원한 전개에 공감 자아내는 시대정신…'더글로리' 주역 맞대결도 흥미진진

2024.12.31(Tue) 11:26:17

[비즈한국]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주인공 구덕이 혹은 옥태영(임지연)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다. 전개 속도가 빠르고, 다루는 내용 또한 기존 사극의 흔한 정치극이나 궁중암투극과는 궤를 달리해 초반부터 이슈를 모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조선시대 신분 계급 중 가장 낮은 계급인 노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 도망친 노비를 잡아오는 추노꾼을 다룬 ‘추노’나 반가의 규수에서 하루아침에 노비가 되는 ‘하녀들’ 같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사극의 주인공들은 대개 왕실 사람들이나 사대부 양반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걸 생각하면 ‘옥씨부인전’은 주인공부터 자못 파격적이다. 

 

노비 구덕이의 꿈은 소박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아비와 함께 고기 잡고 살며 막아 죽지도, 굶어 죽지도 않고 늙어 죽는 것. 그러나 노비의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참혹했다. 사진=JTBC 제공

 

‘꽃가마에 태워진 노비의 운명’이란 소개 문구처럼, ‘옥씨부인전’은 구더기처럼 살던 천한 노비의 딸 구덕이가 양반 정실부인이자 외지부(조선시대 변호사) 옥태영이 되는 과정을 초반에 빠르게 보여줬다. 얼마나 전개가 빠르냐면, 1화에서 주인집에서 탈출한 노비 구덕이(임지연)가 청나라에서 돌아온 양반댁 아가씨 옥태영(손나은)을 만나 친해지며 그집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었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옥태영으로 오해받으며 깨어나더니, 2화에서 바로 자신이 진짜 옥태영이 아니라 털어놓으며 옥태영의 할머니 한씨부인(김미숙)의 인정을 받아 옥태영의 이름으로 살게 되는 수순이다. 구덕이가 주인집에서 탈출해야 했던 계기 중 하나인 양반댁 도령 송서인(추영우)이 자신이 실은 기생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서자라는 비밀을 알고 신분 낮은 전기수(조선시대 소설을 직업적으로 낭독하던 사람) 천승휘가 되는 것도 1, 2회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약자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진 만큼 책임을 느끼는 양반댁 아가씨 옥태영을 만난 구덕이는 화적떼의 습격으로 진짜 옥태영 대신 그의 이름을 빌어 살게 된다. 사진=JTBC 제공

 

그런가 하면 옥태영이 천승휘와 똑 닮은 얼굴을 지닌 청수현 현감 성규진(성동일)의 장남 성윤겸(추영우, 1인 2역)과 서로의 파격적인 비밀을 털어놓고 혼례를 올리는 것이 3화인데, 4화에선 성윤겸이 성수자 아이들을 돌보다 역당의 무리로 몰릴 위기에 처해 집을 떠나게 된다. 4화 엔딩에서 역당 무리를 놓친 죄로 성규진이 삭탈관직당하고 자산과 식솔을 몰수당하며 충격으로 세상을 뜨며 성씨 집안이 몰락의 길을 걷더니, 이내 옥태영의 활약으로 누명을 벗고 집안을 일으키더니 시동생 성도겸(김재겸)이 장원급제를 하며 완벽하게 집안을 일으킨 게 바로 6화의 일이다. 여느 드라마 같으면 드라마 내내 혹은 최소 여러 회차에 걸쳐 일어날 일들이 ‘옥씨부인전’에선 1, 2화 만에 휙휙 벌어지고 해결된다. 지루할 틈 없이 끊임없이 사건사고가 휘몰아치니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청수현 현감의 장남으로, 출중한 무예 실력과 학식과 인품을 지닌 성윤겸은 옥태영과 비밀을 털어놓고 혼례를 올렸다 자신의 대의를 위해 태영을 떠난다. 반면 구덕이일 때부터 옥태영과 인연을 맺은 천승휘는 양반댁 도령 송서인의 삶을 버리고 끝까지 옥태영의 주위를 맴돌며 지킨다. 사진=JTBC 제공

 

물론 전개가 시원시원하다는 점만으로 이 드라마가 눈길을 끄는 건 아니다. 구덕이가 외지부 옥태영이 되어 활약하는 모습은 지금의 시대정신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공감을 산다. 노비 구덕이에서 양반 정실부인 옥태영이 되며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삶을 사는 옥태영은 그 가짜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노비들, 억울한 사연을 지닌 평민들의 편에 선다. 옥태영의 동무 같은 몸종 노비 백이(윤서아)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목숨 걸고 그 진상을 밝히려 하고, 백이의 모친 막심(김재화)이 양반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장 10대의 형벌을 받게 되자 자신을 대신 치라고 나서기도 한다. 이는 옥태영이 애초 자신이 구덕이일 때를 뼈저리게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확히 약자와의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짜 신분으로 양반 정실부인이 되었으나 옥태영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뜬 시아버지와 홀연히 떠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일으켜야 하고,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이들의 공격도 방어해야 한다. 사진=JTBC 제공

 

옥태영이 약자와 연대를 이어가는 모습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보인다.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불법으로 금광을 채굴하던 양반의 손길에서 아이들을 구출하고, 성소수자라는 비밀을 품고 있던 남편이 성소수자 아이들을 보호하던 일을 알고는 그들을 위해 변론한다. 남자 주인공 중 하나가 성소수자라는 퀴어 서사는 너무 뜬금없는 것 아니냐며 일부 불호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으나, ‘옥씨부인전’에서는 요즘 맛보기 식으로 살짝살짝 끼어 넣던 퀴어 서사를 전면으로 다루면서 그들이 엄연한 이 사회의 일원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임을 분명히 표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접점이 없을 것 같던 집단과 연대하는 모습이 도처의 거리에서 목격되는 이 시대에, ‘옥씨부인전’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옥태영의 남편 성윤겸이 돌보던 성소수자 아이들의 집단인 애심단의 서사는 일부 불호 반응도 일으켰다. 드라마 ‘정년이’와 달리 ‘옥씨부인전’은 퀴어 코드를 정면에 내세우는 파격을 선보였다. 사진=JTBC 제공

 

외지부로 일하는 옥태영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분과 처지와 상관없이 법 앞에서 평등하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고 발언하는 모습도,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하고 간결한 진리를 다시 환기시킨다. 특히나 2024년 12월을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소추안, 그리고 거듭된 출석요구에 불응하더니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일련의 상황에서 과연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가 되새겨보게 만든다. 

 

진짜 옥태영의 철학과 달리 많이 가지고도 책임감은커녕 더 많이 가지길 욕망하며 약자들을 참혹하게 다루고 불법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기득권자로 그려지는 청수현 유향소의 양반들. 그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진=JTBC 제공

 

16부작인 ‘옥씨부인전’은 이제 8화까지 방영하며 반환점을 돌아섰다. 8화 엔딩에서 옥태영에게 복수를 꿈꾸는 송씨부인(전익령)의 음모에 의해 옥태영이 과부 신세가 되어 손발이 묶일 위기에 놓이면서 또 다시 몰입도를 높여 놓은 상태다. ‘옥씨부인전’이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남편이 뒤바뀐 실제 사기 사건인 ‘마르팅게르의 귀환’과 1607년 조선 선조 때 실제로 벌어진 가짜 남편 사건을 바탕으로 백사 이항복이 쓴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한 만큼, 후반부에는 노비 구덕이와 양반 옥태영 중 어떤 정체성을 택하게 되는지, 그리고 똑 닮은 얼굴인 송서인/천승휘와 성윤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눈여겨볼 요소다. 

 

옥태영의 정체를 아는 막심을 비롯해 막심의 동료 노비인 도끼(오대환), 도령 송서인부터 전기수 천승휘까지 줄곧 곁에서 친구처럼 보좌하는 만석(이재원) 등 곳곳에서 웃음을 책임지는 감초 캐릭터들도 여럿이다. 사진=JTBC 제공

 

‘더 글로리’의 박연진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임지연이 원톱 주연을 맡아 1화 시청률 4.2%에서 8화 9.5%로 껑충 상승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1월 6일부터 ‘더 글로리’의 ‘스튜어디스 혜정이’ 차주영이 드라마 ‘원경’의 원톱을 맞아 돌아오고,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었던 송혜교도 1월 말 영화 ‘검은 수녀들’로 나설 예정이다. 임지연이 앞서가는 가운데, ‘더 글로리’ 출신 배우들 중 누가 더 대중의 마음을 훔칠지 자못 흥미진진한 대목이기도 하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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