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024년 10월 ESA는 특별한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얼핏 보기에는 모양도 이상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안에는 무려 1억 개가 넘는 수많은 은하와 별, 천체가 가득 담겨 있다. 지난 2023년 7월 발사된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100억 광년 이내에 들어오는 수많은 은하들의 입체적인 지도를 그리기 위한 첫 관측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관측 데이터로 완성한 우주 지도의 극히 일부 한 조각의 데이터가 바로 위 사진이다. 이것은 앞으로 완성할 우주 지도 전체의 겨우 1%인데, 그 안에만 1억 개가 넘는 천체가 찍혀 있다! 전체 지도가 완성된다면 100억 개 가까운 천체가 찍힐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주의 기하학을 연구한다. 우리 은하 은하수와 태양계 원반을 가득 채운 먼지 원반에 시야가 가려진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하늘 전역의 지도를 그린다. 유클리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허블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과는 큰 차이가 있다. 비교적 작은 직경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그래서 해상도 측면에서는 조금 성능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한꺼번에 훨씬 넓은 화각으로 넓은 하늘을 찍을 수 있다. 유클리드는 최종적으로 전체 밤하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하늘의 우주 지도를 그릴 예정이다.
이를 통해 가까운 우주부터 먼 우주까지 은하들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우주 속 물질의 입체 지도를 그려나간다. 특히 유클리드는 우주 전역에 스며든 암흑 물질에 의해 우주 공간이 얼마나 휘어지고 왜곡됐는지를 관측한다. 육중한 은하단 하나에 의해서 그 너머의 빛이 휘어져 보이는 전통적인 중력 렌즈가 아니라, 우주 전역에 스며든 작은 질량의 암흑 물질로 인해 관측되는 우주 곳곳의 약한 중력 렌즈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우주 공간이 얼마나 휘었는지를 파악하고,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비중을 추정할 단서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동안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아주 다양한 난관을 외롭게 헤쳐왔다. 심지어 미션 자체가 실패로 끝날지 모른다는 염려가 나올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들도 끊이지 않았다. 맨 처음 유클리드가 목표 궤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우주 망원경은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움직인다. 그래서 망원경의 거울이 향하는 방향도 계속 빠르게 변한다.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천체의 흐릿한 빛을 선명하게 담기 위해서는 망원경이 궤도를 제어하면서 특정한 방향을 계속 정조준해야 한다. 지구 위에서는 GPS 위성의 신호를 받아서 현재 위치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 바깥 우주 공간에서는 그럴 수 없다. 대신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 자체를 길잡이로 활용한다. 마치 수 세기 전 어둠 속에서 바다를 누빈 항해사들처럼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는다. 하늘에서 밝게 보이는 특정한 별들을 길잡이 별, 가이딩 스타로 삼아서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유클리드가 목표 궤도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딩 스타를 추적하는 센서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유클리드는 가이딩 스타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고, 계속 시야에서 별이 벗어났다. 당시 촬영한 사진을 보면 가이딩 스타가 한 자리에 가만히 담기지 못하고 긴 궤적을 그리면서 흘러간 것을 볼 수 있다. 다행히 이 문제는 망원경의 자세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패치해 해결했다.
이후 유클리드는 무본격적인 첫 번째 이미지를 사히 관측했다. 이렇게 공개된 첫 번째 이미지 중에는 유명한 말머리 성운을 비롯해 수많은 은하가 담긴 페르세우스 은하단 등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유클리드는 제임스 웹과 허블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고, 앞으로 고퀄리티의 관측 데이터를 더 많이 제공할 것이라 기대됐다.
하지만 며칠 만에 또 다른 문제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망원경 광학 센서 속에서 얼음이 아주 소량 응결한 것.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망원경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공기 속 수증기 일부가 망원경 안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사실 수증기 유입은 우주 망원경을 조립할 때 항상 따라오는 치명적인 문제 중 하나다. 망원경의 부품을 조립하는 환경은 전자제품에서 불꽃이 튀고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실험실 내부는 상대습도가 50% 정도에 머무르는 조건을 유지한다. 또 우주 공간에서 급변하는 추위와 태양 빛으로 인한 열로부터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들어가는 플라스틱 단열재 안에도 일부 물방울이 함께 묻어있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유클리드도 장치에 일부 물이 묻은 채로 우주로 발사되었다. 우주의 진공 상태에서 분출된 물방울은 빠르게 응결했다. 하필이면 망원경의 아주 민감한 센서 위에서 얼어붙었다. 천문학자들은 유클리드 장비 안에 쌓인 얼음의 두께가 DNA 한 가닥 정도 길이에 해당하는 겨우 수십 나노미터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이런 소량의 얼음으로도 민감한 망원경의 장비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심하면 아예 관측 데이터를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다양한 해결 방안이 논의되었다. 망원경을 약 96시간 동안 태양 쪽으로 방향을 돌려 내부 온도를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도 나왔다. 만약 망원경에 있는 장비를 한꺼번에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는 방식으로 얼음을 제거하려다간 자칫 망원경의 장비 자체가 변형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영리한 대책은 아니다. 대신 천문학자들은 개별 부품을 하나씩 따로 온도를 높이면서 물이 천천히 증발하도록 시도했다. 다행히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유클리드 안에 들어간 거울 장치 중 하나의 온도가 -143도에서 -113도까지 불과 몇 분 만에 올라갔다. 유클리드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비해 관측 장비의 감도가 15% 향상했다. 이후로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안정을 찾은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은 드디어 올해 3월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우주 지도 그리기 작업에 돌입했다. 유클리드는 75분 동안 한쪽 방향을 쭉 겨냥하면서 총 4만 번에 걸쳐 하늘을 관측한다. 이를 통해 우주 전역의 지도를 채워나간다.
2024년 10월 유클리드는 우주 전체 지도의 1%를 갓 채운 첫 번째 관측 데이터를 공개했다. 목표로 한 우주 전체 지도에서 겨우 1%에 불과한 작은 한 조각이지만, 이 작은 조각은 보름달 500개로 채울 만한 아주 넓은 면적의 하늘을 담았다. 사진을 확대해보면 얼마나 선명한 해상도로 수많은 별과 은하의 빛을 담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의 역사적인 첫 번째 딥필드 관측 이후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과 더불어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 곧 발사를 앞둔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 망원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우주 망원경이 여러 파장의 빛으로 우주 전역을 겨냥하며 미처 채우지 못한 우주 빈 구석의 지도를 새롭게 채워나가고 있다. ESA는 2025년 4월경, 앞으로 5개월 정도 후에 두 번째 관측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얼마나 더 거대한 조각들이 채워지고 우주의 지도 퍼즐이 맞춰질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참고
https://www.euclid-ec.org/euclid-successfully-de-iced-gains-15-sensitivity/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Space_Science/Euclid/Euclid_s_sight_restored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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