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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남의 아이디어 도용하고 소송하면 그만? 5배 배상까지 가능하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 현실적으로 모두 입증하기 어려워, 가해자 악용…특허법 등 손해액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조항 도입

2024.12.30(Mon) 11:23:29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법제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지 않아 피해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범위는 실제 손해 내로 한정된다.


모든 법적 다툼이 다 그렇겠지만 민사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론, 즉 청구 인용 여부와 그 범위다. 당사자, 특히 원고의 입장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사건에서 이겼는지, 이겼다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이며 판결의 내용(논리적 구성), 법리적 가치 등은 나중 문제다.

 

이는 사건을 대리한 변호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보통 변호사 보수를 산정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청구금액 중 인용된 금액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법리 다툼을 통해 판결의 내용이 풍성해졌다고 할지라도 청구가 기각되면 만사휴의(萬事休矣)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된다.

 

과거 법령의 규정과 법원의 관행을 종합해 보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를 온전히 배상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이는 지식재산권, 공정거래 등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분야에서 특히 심했다.

 

우리나라 법제에서 배상 받을 수 있는 범위는 피해자가 실제 입은 손해로 한정된다. 원칙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은 금액의 배상을 인정하면, 소송을 부추기고 사행심을 자극해 사회에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는 분쟁이나 갈등을 국가의 정책, 행정기관의 처분 등에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간접적 강제보다는 행정처분에 의한 국가의 직접적인 제재가 더 효율적이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할 실익이 없다고 여긴다.

 

이러한 견해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간 다수설의 지위를 차지해 왔고, 법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내용이어서 쉽게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필자가 15년 넘게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손해배상청구 소송, 행정상 민원 제기 등의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하여 보니 위와 같은 견해는 피해자 구제에 지극히 부족한 이론임을 절감했다.

 

피해자가 신고, 신청, 청원 등을 통해 행정기관의 처분을 끌어내 구제 받는 사례가 간혹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정말로 ‘간혹’ 나오는 사례다. 행정기관의 조사에 착수할 것인지, 처분을 내릴 것인지는 순전히 행정기관의 재량에 달린 문제로 이를 예측할 수 없다.

 

대체로 행정기관은 사적 분쟁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건이라면 민사소송을 종용하면서 이를 맡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건 여기에 가져오시면 안 돼요”라든지 “우리가 선생님 문제 해결해 주는 사람입니까” 등의 반응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경향은 앞으로도 심해질 것이다. 사기,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기소율이 낮은 것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손해만큼 배상받는다는 이론은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도와주는 논리가 될 수 있다.

 

배상 받을 수 있는 손해액이 실제 손해에 국한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도와주는 논리가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입은 모든 손해를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소송에서 청구하는 손해는 실제 손해액보다 적기 마련이다.

 

둘째, 가해자는 소송절차에서 ‘침해가 아니다’, ‘증거가 없다’, ‘손해의 발생 및 확대에 대해서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 ‘이중 배상 가능성, 손해의 공평한 분담 등의 측면에서 손해액이 감액되어야 한다’ 등의 주장을 통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는 일단 남의 것을 갖다 쓰고 오리발을 내밀거나, 소송 대응을 잘해서 배상 금액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당히 ‘지혜로운’ 전략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지, 특허청은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법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조항을 도입했다. 특허청은 위 조항의 도입 배경과 필요성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 특허청이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6~2020년 특허권 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는 평균 6억 2829만 원을 청구했으나, 인용액 중간값은 1억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특허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 중간값 64억 7000만 원(1997~2016년)과 비교해도 매우 적은 것으로 이 수치는 양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2018년 기준) 7분의 1에 불과하다. 

 

○ 이로 인해 기술을 개발해 특허권이나 영업비밀 등을 보유하기보다는 ‘기술을 베끼는 것이 이익’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피해기업 입장에서는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손해배상액이 충분하지 않아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악순환이 계속된다.

 

특허권 침해나 부정 경쟁 방지 행위 사건 등의 경우 그 수행을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변호사 보수는 다른 유형의 사건보다 더 높은 편이고, 금액은 대체로 수천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특허청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특허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평균적으로 인용된 금액이 불과 1억 원 정도라니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이겨봐야 인정받는 금액은 변호사 보수 등 소송 수행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에 충당하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업 입장에서 볼 때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남의 기술을 모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되고, 산업 현장에서 기술보다는 영업을 더 중시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법적 조치를 통해 정당한 권리를 보호 받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액의 현실화가 요구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실손해 배상 원칙’이라는 도그마를 깨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공정거래법 영역에서 최대 3배 손해배상 조항이 도입됐고, 심지어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법 등에서는 최대 5배 손해배상 조항이 도입됐다.

 

한편에선 3배 또는 5배 손해배상 조항에 대해 법원의 관행에 맞지 않아 실무상 혼란을 가져올 뿐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성문법을 중시하고, 판례의 법원성을 부정하는 대륙법계 국가의 경우 기존의 관행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법령을 개정해 위와 같은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최근 하급심 판결에서 위 조항을 인용해 2배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고 본다.

 

앞으로 고객과 상담하면서 ‘우리나라 법은 법 같지 않다’, ‘순 도둑놈 도와주는 법’ 등의 불만을 듣지 않도록 손해액 산정 영역에서 법령의 개정과 이를 수용하는 법원의 판결이 많아졌으면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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