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국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도 치고 올라오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도전에 직면했다. 아직 기술력 격차가 상당하지만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저가 패널 공세에 따라 추격전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OLED 적용 범위를 확장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다만 세부 구상에는 차이가 있다. 삼성은 업계에서 가장 먼저 8.6세대 생산시설 투자에 나섰다. 태블릿이나 노트북 등 아직 개화하지 않은 IT 분야를 타깃으로 삼은 것. LG 역시 IT 제품과 차량용을 공략하고 있지만 수조 원대 투자 대열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IT용 패널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무리한 투자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삼성, 신형 태블릿 등 IT용 OLED ‘미래 동력’으로
업계가 주목하는 IT용 OLED 패널 사업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산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로 선제 대응이 필요한데 통 큰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수요 확대 시기나 성장성을 예측하기 까다롭다. 태블릿, 노트북, PC 등의 완제품은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고 모바일보다 수명이 비교적 길어 그야말로 난제다. 애플의 진입으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최근 아이패드 신제품 판매 부진으로도 시장이 쉽게 동요할 만큼 불안정하다.
IT용 OLED의 비전이나 단기·중장기 전망 등이 엇갈리는 만큼 업계 대응 전략도 구분된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과거 발 빠른 사업 전환으로 스마트폰 OLED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해온 삼성은 공격적으로 IT용 OLED 투자를 확대하며 중소형 OLED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내년 중소형 OLED 패널 4억 7560만 대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26년까지 4조 1000억 원을 투자해 IT용 8.6세대 OLED 생산 라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노트북 OLED를 연간 1000만 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체질 개선에 발맞춰 올 연말 대표이사도 반도체 전문가에서 디스플레이 엔지니어 출신으로 4년 만에 교체했다.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신임 대표이사는 삼성전자 LCD 사업부부터 OLED 사업부 패널개발팀장, 중소형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실장, 중소형사업부장을 거쳤다.
디스플레이 산업에는 주기적으로 대규모 투자 사이클이 온다. 시설투자는 단기로는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생산능력이 확보되기 때문에 적기에 이뤄질 경우 대량 수주를 통한 기업 성장으로 연결된다. 8세대급 유리기판은 스마트폰 위주였던 기존 6세대급보다 약 2.2배 크다. 원판 면적이 크면 패널 생산량이 증가하고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이 높아진다. 기존의 6세대급 설비로는 향후 패널 단가 경쟁과 시장 주도권 확보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다. 삼성에 이어 중국 BOE(12조 원), 비전옥스(10조 3000억 원) 등이 차세대 OLED 양산의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8.6세대 공정에 투자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LG, 생산능력 투자는 아직 ‘속도 조절론’ 대두
TV 시장 둔화로 대형 OLED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도 IT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집중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 있는 TV용 LCD 공장을 2조 원에 매각하고 고부가 OLED 매출 비중을 늘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매각대금을 OLED에 집중해, 사업 경쟁력을 높일 운영 자금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차입금 상환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OLED 성과에 기여한 인재 중심의 승진 인사도 단행했다. 중소형 OLED 사업 부문에서 최현철 전략고객(SC) 사업부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스마트폰 외에도 태블릿, 게이밍·하이엔드 노트북 등에 중소형 OLED 채택이 늘고 애플이 내년부터 맥북에 OLED 패널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IT용 OLED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출시된 애플의 신형 아이패드에는 사상 처음으로 OLED가 적용됐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4:6이다. LG디스플레이는 ‘아이패드 효과’로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보다 약 1조 4000억 원 늘었다. 다만 높은 가격 등으로 인해 예상보다 판매량이 저조해 양 사의 3분기 패널 매출액은 각각 38%,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확대로 OLED 침투율은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무선 환경에서 고연산 작업을 하는 온디바이스 AI에는 전력 소모가 적은 OLED가 적합하다.
다만 8세대 OLED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는 보류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현재 구축된 6세대로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과 재무 건전성 문제 등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LG디스플레이는 2022년 2분기 적자전환 뒤 2022년과 2023년 2조 원 이상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약 5000억 원 적자가 예상돼 회복 속도가 더디다. 생산라인 구축을 위한 투자자금이 부족하고 자금 조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IT OLED 시장이 언제 얼마나 팽창할지도 관건이다. 내년 상반기 출시할 것으로 예상됐던 맥북 프로 일정이 연기되면서 IT OLED로의 전환점 마련 시기도 늦춰질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의 경우 투자 결정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선제적인 투자로 올해 6세대 양산을 시작해 현재 시점에서는 경쟁사들에 비해 앞서 있는 게 사실”이라며 “수요 예측이 어렵다보니 투자 계획을 밝힌 업체들 중에도 투자 지연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노트북이나 패드 분야에서 시장이 많이 열린 단계는 아니다. 투자 규모만으로 이후 경쟁 상황을 규정하긴 어렵다”며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 LCD 공장 매각, 내부 조직 개편 등 내실 경영에 중점을 두고 대응하고 있고 소형 OLED를 풀가동하고 있는 삼성은 중형 쪽으로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적절히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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