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직 냉전 분위기가 가시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언제라도 적국의 비밀 정찰기가 머리 위를 지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이런 불안감은 사람들이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보게 만들었고, UFO를 목격했다는 보고도 이 시기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UFO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찾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사이, 진지한 천문학자들도 외계 문명의 신호를 찾으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유명한 전파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 그리고 평생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연구한 칼 세이건이 협력해 외계 지적 생명체의 신호를 찾는 프로젝트 SETI를 시작한 것이다.
원래 SETI의 이름은 S가 아니라 C가 대신 들어간 CETI였다. 외계 지적 생명체와 직접 통신을 주고받겠다는 아주 야심 찬 희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했다. CETI는 고래라는 뜻도 갖고 있는데, 당시 칼 세이건은 고래의 의사소통 방식을 연구해야 외계인과 신호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C는 너무 성급한 꿈이었다. 그래서 첫 글자를 C 대신 S로 바꾸면서 단순히 외계에서 날아오는 신호를 포착하는 수동적인 방식에 더 집중했다.
1985년부터 시작된 SETI는 아쉽게도 결국 실패했다. 아무런 결과를 남기지 못했고 미션은 이미 끝났다. 하지만 인류가 외계 문명의 신호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SETI의 뒤를 이어 그 정신을 이어받은 천문학자들이 더 거대한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브레이크스루 리슨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 전역에 깔린 전파 망원경으로 지구로 날아오는 다양한 전파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태양계 바깥 가장 가까운 4.2광년 거리에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양보다 훨씬 어두운 적색왜성이다. 그런데 2016년 천문학자들은 이 별 주변에서 외계행성을 발견했다. 심지어 이 행성은 중심 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그래서 행성 표면에 액체 물로 채워진 바다가 존재할 수 있는 생명 거주 가능 구역, 골디락스 존에 들어온다. 운이 좋다면 지구처럼 바다도 있고 심지어 생명체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만 프록시마 센타우리 행성에서 생명이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다. 애초에 별 자체가 어둡다보니 별 곁에서 충분히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려면 행성이 별에 꽤 바짝 붙어 있어야 한다. 이 행성은 중심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 겨우 0.05AU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태양-지구 사이 거리의 5%밖에 안 된다! 이 행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공전 주기, 즉 1년의 길이가 지구 시간으로 겨우 11일이다. 그래서 온도만 보면 적당할지 모르지만 별에 너무 가깝다보니 별 표면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항성풍과 방사능에 심하게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생명체가 살기에는 혹독한 환경일 수도 있다.
다만 프록시마 센타우리 행성은 태양계 바깥 가장 가까운 옆집 별에서 생명 거주 가능 구역에 존재하는 행성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수천 수백 광년 거리에 떨어진 외계행성보다는 그나마 훨씬 가깝고, 운이 좋다면 먼 미래 인류의 후손들이 직접 방문을 시도해볼 만한 후보 행성이다.
브레이크스루 리슨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천문학자들이 외계 생명체를 찾는 방식과 철학이 다르다. 보통 천문학자들은 외계행성에서 생명의 흔적에 해당하는 바이오 시그니처를 찾는다. 행성 대기권에서 물과 산소, 이산화탄소, 메테인과 같은 생명 활동의 결과로 추정되는 대기 분자를 검출한다. 현재 외계행성을 활발하게 관측하고 있는 제임스 웹도 마찬가지다. 반면 SETI와 브레이크스루 리슨은 생명 활동을 넘어 더 한 발짝 나아가 테크노 시그니처를 찾는다. 지적 문명이 존재한다면 보여야 할 기술적 흔적의 징후를 찾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아마 외계 문명도 우리 지구 문명처럼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 전파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전파 기반 문명을 갖추고 있을 거라 기대한다. 따라서 만약 어떤 행성에 고도로 발전된 외계 문명이 있다면 그 행성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외계인들의 전파 신호를 엿들을 수 있다.
브레이크 스루 리슨을 위해 지구 전역에 설치된 거대 전파 망원경들이 총동원됐다. 그 중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그린 뱅크 망원경은 젊은 시절 드레이크가 처음으로 전파 신호로 외계인을 찾으려 시도했던 곳이다. 남반구에는 호주의 파크스 전파 망원경,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어캣 전파 망원경도 있다. 2019년 천문학자들은 프록시마 센타우리 쪽 하늘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전파 신호를 발견했다.
신호가 단순히 자연적인 평범한 신호인지, 아니면 무언가 인공 문명을 의심해볼 만한 신호인지를 구분하는 주요한 기준이 몇 가지 있다. 일반적인 자연 신호는 넓은 주파수 대역에 걸쳐 부드럽게 분포한다. 만약 어떤 신호가 아주 좁은 특정한 주파수 범위에서 강하게 날아온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발송한 전파 신호로 의심해볼 수 있다.
또 높은 확률로 외계 문명 역시 어떤 별 주변을 맴도는 행성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봤을 때 그 행성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행성 자체의 움직임은 행성에서 방출되는 전파 신호의 파장이 짧아지고 길어지게 만드는 도플러 효과를 일으킨다. 따라서 좁은 주파수 대역에서 강하게 들어오는 신호들 중에 주기적인 도플러 효과를 보이는 신호가 있다면, 어떤 별 곁을 맴도는 행성에서 날아오는 전파 신호로 의심해볼 수 있다. 2019년 프록시마 센타우리 쪽 하늘에서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신호가 포착되었다.
1977년 8월 15일 72초 동안 날아왔다가 사라지면서 천문학자들과 SF 팬들을 들뜨게 했던 그 유명한 와우 시그널과 달리 무려 30시간 가까이 지속적으로 신호가 잡혔다. 신호가 날아온 범위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쪽 하늘에서 보름달의 절반 정도 되는 하늘이었다. 이 흥미로운 신호에게 천문학자들은 브레이크 스루 리슨으로 포착한 첫 번째 후보라는 뜻에서 BLC 1 (Breakthrough Listen Candidate 1)이라는 일련번호를 부여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많은 언론에서 BLC 1을 인용하면서 천문학자들이 외계인의 신호를 발견했다는 식의 다소 과장된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추가 분석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BLC 1이 먼 우주가 아닌 우리 지구에서 발생된 전파가 교란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신호가 정말 정확하게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 날아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전파 망원경의 고개를 살짝 다른 방향으로 틀었을 때, 똑같이 신호가 잡히는지 아닌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만약 정말 이 신호가 특정한 별에서 날아온 전파 신호가 맞다면 망원경의 시야에서 별이 벗어났을 때는 그 신호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
BLC 1의 추가 관측을 진행한 결과, 다른 방향의 하늘에서도 비슷한 주파수와 패턴을 보이는 신호가 총 30개 발견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BLC 1이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에서 날아온 게 아니라 지구 어딘가에서 방출된 전파 신호가 지구 대기권에 산란되면서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BLC 1의 신호 형태를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여러 좁은 주파수 대역에서 뾰족하게 강한 시그널이 관측되는 일명 주파수 빗(frequency comb) 현상이 확인되었다. 그래프를 그리면 여러 주파수 위치에서 가늘고 뾰족한 시그널이 잡히는 모습이 마치 빗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것은 라디오 전파가 지구 대기권에 간섭을 일으켰을 때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천문학자들을 한때 들뜨게 했던 BLC 1 신호를 일으킨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아직 정확한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망원경 기기 자체의 오류, 또는 우연히 비슷한 방향의 하늘을 지나간 비행기나 인공위성에 의한 간섭, 또는 심우주 탐사선의 신호가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을 모두 검토했지만 정확하게 BLC 1의 신호 형태와 들어맞는 신호는 찾지 못했다. 대신 천문학자들은 BLC 1 신호를 포착한 호주의 파크스 천문대 근처에 무언가 주기적인 전파 신호를 방출하고 있는 어떤 전파원이 있을 거라 추정한다. 인근 방송국이나 군사 기지의 신호일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BLC 1 신호를 포착한 파크스 천문대가 천문학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아주 유명한 흑역사가 있다. 1998년부터 천문학자들은 파크스 천문대에서 아주 좁은 주파수 대역의 강한 신호가 무작위로 잡히는 것을 포착했다. 한때 이것이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이 신호는 신화 속 괴물의 이름을 붙여 페리톤 시그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신호의 정체는 아주 허무하게도 천문대에서 근무하던 천문학자들이 가끔씩 전자레인지를 돌리면서 새어나간 전파였다. 배고픈 나머지 전자레인지 타이머가 다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문을 열어버리는 바람에 미처 차폐되지 못한 일부 전파가 새어나가면서 거대한 전파 망원경에 그대로 포착된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흑역사를 보면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전파 노이즈로 지구의 하늘을 시끄럽게 덮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십 수백 광년 거리에 떨어진 외계인들이 정말 무언가 전파를 보낸다면 그 신호는 먼 거리를 날아오느라 아주 많이 약해졌을 것이다. 그게 지구인들이 내보내는 더 강력한 전파 노이즈 속에 파묻혀 우리가 찾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외계인들의 신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발전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BLC 1의 가장 큰 문제는 처음 발견된 이후, 추가 관측에서 더 이상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 30시간 정도 쭉 신호가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다시 확인되지 않았다. 아쉽지만 드레이크와 칼 세이건의 꿈은 아직도 속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 소식 없는 조용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또 다시 흥미로운 신호가 날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1-01508-8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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