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꼽았다고 한다. 이는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도량발호’의 정치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여파는 생각보다 더 큰 듯하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국내 경제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장중 1453.1원까지 오르며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1450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면서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인재와 인프라에 투자하려던 외국 기업들도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정치 리스크로 인해 내년 상반기 추가 금리 인하 전망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통위에서 내년 성장률 1.9%, 내후년 1.8%로 제시하며 2026년까지 잠재 성장률을 하회하는 경로를 제시했는데, 금리 인하 경로를 명확히 제시했다는 평가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비록 최근 연준 인하 경로 조정과 고환율 부담으로 금통위의 선택 폭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대외 여건만 보고 인하를 주춤하기에는 국내 여건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해 상당 기간 고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1350~1400원을 예상하던 전문가들은 ‘1400원대 지속’을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환율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국 불안에 더해서 트럼프 집권 초기 우리 정부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협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원화 고유의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내년) 1분기 말로 갈수록 질서 있는 정국 불안 해소와 함께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달러가 아닌,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환율 상승세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의 핵심 변수(Key Driver)는 원·달러 환율”이라며 “정책 당국은 외줄타기를 하듯 고군분투 중”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단기 1500원에 육박할 경우 주식은 스파이크가 찍히겠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은행주는 환율 상승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 중 하나인데, 환율이 오르면 은행주 자본비율이 하락할 수 있어 재무에 부담을 끼치게 된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430~1440원 선에서 고착화되면서 은행 자본비율과 손익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분기에만 환율이 약 130원 이상 상승했는데 하나금융과 기업은행은 10원 상승 시 약 80억~90억 원 내외의 외화환산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환율 기준 4분기에 약 1000억~1200억 원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최 연구원은 또 “원·달러 환율이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은행권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원·달러 환율이 안정화돼야 은행주는 의미 있는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년 전만 해도 환율 1300원 시대에 달러에 투자해야 하는지 여부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1500원 돌파를 걱정해야 하는 때가 돼버렸다. 이 때문에 달러보험이나 달러 ETF 등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다만, 달러보험의 경우, 환율이 오를 때 보험료를 내면 부담이 커지고, 보험금을 탈 때 환율이 내리면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환테크를 위한 목적이라면 효율적이지 않다.
전문가들은 ‘위기는 곧 기회’라고 말한다. 투자는 마라톤과 같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산 투자는 필수다. 김병연 연구원은 “지수 차원의 대응은 어렵겠지만 종목별로는 다르다”며 “국가별 정책 모멘텀에 주목하면서 분할 매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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