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자, 지금부터 주목! 여기 이상하고 수상한 한 가족을 보시라.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하는 능력을 지닌 엄마 한영수(배두나)와 한 손으로도 조폭 패거리를 간단히 쓸어버리는 싸움 고수인 아빠 백철희(류승범), 천재 해커인 아들 백지훈(로몬)과 ‘싸움 짱’인 딸 백지우(이수현), 그리고 가족의 중재자 역할인 엉뚱한 할아버지 백강성(백윤식). 설명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데, 가족사진도 한 장 없고, 아이들은 그 흔한 스마트폰이나 SNS 계정도 없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가족계획’의 주인공들이다.
이 가족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다. 한영수와 백철희는 어린 시절 특수교육대라는 의문의 기관에서 자라며 ‘인간 병기’로 키워진 이들. 특수교육대 교관인 안소진(진서연)을 ‘엄마’로 부르며 자라던 영수는 갓난아기임에도 입소하게 된 지훈과 지우에 애착을 느끼게 되면서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철희와 탈출을 도와준 백강성과 함께 나와 그들을 남편과 아버지 삼아 가족을 형성한 것. 자신들을 쫓는 특수교육대의 추격대를 피해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던 이들이 금수시에 정착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이들이 정착한 금수시가 배트맨이 활약하는 고담시 버금가는 극악무도한 악당들이 판을 치는 곳이라는 거다. 쌍둥이 지훈과 지우가 전학간 고등학교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찍어 딥페이크로 음란 합성물을 만들어 협박하고 성매매까지 시키는 학생회장 박재곤(권지우)과 학교 일진 조규태(배재영) 일당이 장악하고 있다.
조규태의 아버지인 전국구 조직폭력배 두목 조해팔(유승목)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인물의 피를 보는 데 거침이 없고, 금수부동산 소장인 오길자(김국희)는 조해팔과 모종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남편을 가차없이 처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길자의 남편이자 금수시청 지역개발과장인 장노원(곽자형)은 박재곤에게 성착취 피해자들의 정보를 공유하고, 그 자신도 부하직원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빌런. 오길자가 운영하는 가출팸 쉼터 또한 수상쩍기 짝이 없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인물들이 목사 윤명환(남윤호)이 운영하는 금수열망교회의 신자라는 점이 무척 수상하다.
게다가 금수시에 입성한 순간부터 영수의 가족은 연쇄살인마 개발이(김중희)와 얽히게 된다. 우연한 교통사고로 어쩌다 개발이를 감금하게 됐는데, 개발이의 존재가 가족의 단결이 될 수 있겠단 생각으로 할아버지 백강성이 개발이를 풀어주면서 연쇄살인 사건에 끼어들게 된다. 자연히 개발이를 쫓던 형사 강정환(김정현)의 추적에도 이들 가족은 노출된다. 과연 영수의 가족은 금수시의 극악무도한 악당들을 처단할 수 있을까. 금수시의 최종 빌런은 누구이며, 그는 어떤 목적으로 이런 악행을 벌이는 걸까. 이들 가족의 뒤를 쫓는 특수교육대와 연쇄살인마 개발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특수한 기관에서 인간 병기로 자란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마녀’ 등 몇몇 작품에서 봐왔던 소재다. 혈연이 아닌 가족들이 가족으로 얽히며 끈끈한 가족애를 구사하는 이야기도 많은 작품에서 봐왔다. 딥페이크 등 성착취 문제나 아파트 경비원을 종 취급하는 갑질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도 뉴스에서 많이 들어온 것들이고, 지역사회의 범죄 카르텔도 익숙한 소재다. 악당을 처단하는 자경단의 존재? 대중문화에서 수없이 그려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계획’은 독특한 시선과 속도와 리듬감으로 이전에 본 적 없는 신선함을 자아낸다. 피 튀기는 하드코어 스릴러물인가 싶다가도 엉뚱발랄한 블랙코미디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히어로물과 학원물과 액션물을 종횡무진 활보한다.
통통 튀는 개성의 가족을 구성하는 배우진은 ‘가족계획’의 핵심. 한국영화에서 개성적인 캐릭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배두나, 류승범, 백윤식이 한 가족을 이룬다는데 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공기층을 지닌 듯한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배두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악당들의 기억을 왜곡하고 고통과 트라우마를 심어놓는 한영수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오매불망 한영수를 지키려 하는 순정남 백철희를 연기한 류승범은 이 시리즈의 웃음을 책임지는 캐릭터. 더없이 소심해 보이지만 빨간 장갑을 끼고 악당들을 호쾌한 액션으로 처리할 때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언뜻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떠오르는 백윤식의 엉뚱함은 어떻고. 여기에 ‘지금 우리 학교는’의 로몬과 신예 이수현이 합세해 세상 둘도 없는 가족을 완성해낸다.
‘가족계획’은 ‘안나’ ‘소년시대’ 등을 제치고 역대 쿠팡플레이 시리즈 중 최고 오프닝 시청량을 기록했는데, 4화 공개 후 오프닝 스코어 대비 425% 시청량 급등 추이를 보이며 흥행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오는 12월 27일 마지막 회가 공개될 예정인데, 벌써부터 시즌2를 염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아니, 이렇게 매력 쩌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6부작이 말이 되느냐고. 그러니 쿠팡플레이는 어서 빨리 시즌2를 내놓으시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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