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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삶과 죽음 사이 떠도는 당신, '조명가게'로 오세요

공포에서 감동으로 치환되는 복합 장르 드라마…'무빙'에 이어 또 한 번 감동몰이 예고

2024.12.13(Fri) 09:54:38

[비즈한국] 디즈니플러스의 ‘조명가게’는 꽤나 불친절한 드라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드라마의 원작인 동명 웹툰 연재 당시에도 불친절한 전개로 갑론을박이 있었다. 흔히 드라마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견인차 역할을 1~2화가 담당하는데, ‘조명가게’는 1~2화만 보면 ‘뭐지?’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초반을 견디는 인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물론 약간의 인내를 감내하면 그에 합당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어두운 골목길 끝에 위치한 환한 조명가게. 그리고 그곳엔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하나씩 찾아온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조명가게’엔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캐리어를 끌고 매일 밤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지영(설현), 친구들과 함께 있지만 누구와도 대화를 섞지 못하는 여학생 현주(신은수), 낡은 집에 갇혀 누군가와 함께하며 나오지 못하고 있는 여자 선해(김민하), 매일 밤 어두운 골목길을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며 지나가는 남학생(김기해), 온몸이 젖은 채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남자 승원(박혁권), 밝은 빛을 받으면 고양이 눈처럼 눈이 변하는 남자 상훈(김대명)과 그를 집요하게 쫓으며 그 자신도 순간순간 눈이 이상하게 변하는 형사(배성우) 등등. 그리고 이 이상한 사람들은 동네의 어두운 골목길 끝자락에 위치한 조명가게를 스치거나 찾고, 때론 그곳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밝은 빛을 내는 조명가게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주인 원영(주지훈)도 어딘지 미스터리하긴 마찬가지.

 

조명가게 주인 원영은 조명가게를 자주 찾는 현주에게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못 본 척 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원영 역시 어딘가 이상하긴 마찬가지.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 이상한 사람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기괴하다. 손톱이 손가락에 달려 있거나, 귀에서 끊임없이 흙이 흘러나오고, 눈물과 몸의 물기가 폭주하며 엘리베이터를 홍수처럼 채우는가 하면, 그림자에 비춘 모습은 보이는 것과 달리 아주 늙은 모습이기도 하다. 원영은 가게를 자주 찾는 현주에게 그런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 모른 척 하라고, 이상한 점을 눈치 챈 적 없는 척 하라고 당부하지만, 그 이상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섞여 있기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지영은 왜 항상 캐리어를 끌고 밤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걸까. 지영 주변에서 나는 ‘삭’ 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무엇일까.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여러 인물이 파편적으로 교차되며 등장하기에 이들이 각자 어떤 사연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연으로 얽혀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기괴한 점을 지닌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탓에 초반에는 공포물의 느낌이 물씬하다. 보다 보면, 특히 대형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영지(박보영)의 이야기를 통해 이 이야기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그 환자들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짐작하게 된다. 원작을 보지 못한 이들은 12월 11일 공개된 5~6화에서야 비로소 ‘조명가게’의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어떤 인연으로 얽혔는지 알게 될 만큼 충격적인 반전도 있다. 이 과정에서 오싹한 공포로 시작했던 감정은 스멀스멀 애잔하고 뭉클한 감정으로 바뀐다. 그게 결코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조명가게’는 실행 중이다. 

 

선해는 이사 온 낡은 집에 갇혀 나오질 못한다. 그리고 그 집에는 선해 말고도 누군가 함께 있는 것 같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원작 웹툰이 극악한 불친절한 전개였던 것에 비해 드라마는 각색이 매끄럽게 되어 웹툰보다 몰입이 쉬운 편이다. 원작가인 강풀이 ‘무빙’에 이어 또 한 번 직접 대본을 맡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지훈, 박보영, 설현, 배성우, 엄태구, 이정은, 김민하, 박혁권, 김대명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출연진도 ‘조명가게’를 보게 만드는 힘. 할아버지였던 원작과 달리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된 조명가게 주인 역의 주지훈이 자아내는 조용한 묵직함부터 대사가 거의 없지만 수많은 감정을 표출해내는 이정은의 얼굴, ‘파친코’에 이어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살 것으로 보이는 김민하의 당찬 표정, 공포감과 아련함을 모두 담아내는 쉽지 않은 연기를 보인 설현 등 여러 배우들의 연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사람은 기억을 잃고, 어떤 사람은 기억을 갖고 있는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연인 간의 사랑과 모녀 간의 사랑 차이일까?

 

‘무빙’에서 담임교사 최일환을 연기했던 배우 김희원의 연출 데뷔작이란 점에서 방영 전부터 주목됐다. 쉽지 않은 서사 구조를 지닌 복합적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이 거칠거나 튀지 않는다. 뜨거운 반응을 모았던 4화 병동 롱테이크 신을 포함해, 배우들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몇몇 신에서 엿보이는 연출의 섬세함이 있다. 배우 김희원도 좋았지만, 앞으로 연출자 김희원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지점이다. 

 

각자의 사연을 담고 출발한 빗길의 버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과 사가 갈리고, 그 이후 각자의 선택에 따라 관계도 엇갈린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강풀의 ‘무빙’으로 ‘한국형 판타지’를 전 세계에 표방했던 디즈니플러스는 강풀의 ‘조명가게’로 또 한 번 흥행몰이를 예고 중이다. ‘조명가게’ 공개 첫 주인 12월 8일 기준 디즈니플러스 글로벌 3위에 올랐고(플릭스패트롤 기준), 한국과 홍콩, 대만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시절히 하 수상한 때에 공개되어 오히려 국내에서 묻히는 감이 있는 편이라 안타깝다. 12월 18일에 완결되니, 한꺼번에 몰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영지가 돌보는 중환자실의 환자들. 의식 없는 환자들이 깨어나는 건 환자의 살고자 하는 의지일까 혹은 어떤 다른 힘일까.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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