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가 주력 모델의 전동화를 앞두고 리브랜딩을 단행, 그 일환으로 새로운 아이덴티티(BI)와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새 BI의 핵심은 로고타입 ‘디바이스 마크’와 수평 그래픽 안에 재규어의 모습을 네거티브로 넣은 ‘스트라이크 스루’, 그리고 영문 철자 JAGUAR의 처음과 끝 문자열인 JR 을 정원 외곽선 안에 담은 심벌 ‘아티스트 마크’다.
재규어 로고타입은 가로·세로 획 두께 차이가 심하고 직선적이었던 종전과 달리 둥글둥글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기존 지향점을 완전히 뒤엎는 이번 리브랜딩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자동차 브랜드의 그것으로 보기 어려운 티저 영상에도 비난이 줄을 잇는다. 다양한 사람과 슬로건이 등장할 뿐 재규어가 지녔던 어떤 특징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규어의 변화와 관련하여 2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XJ의 헤드램프를 사각형으로 바꾼 일이다. 재규어의 상징이자 기함인 XJ는 2쌍의 원형 헤드램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86년 풀 모델 체인지된 XJ(XJ40)은 원형 대신 단조로운 사각형 헤드램프를 채택했다. 마니아들은 크게 반발했다. 램프 디자인 하나가 뭐가 중요할까 싶겠지만, 90년대 후반 헤드램프를 타원에서 자유곡선으로 바꿨다가 비난에 직면했던 포르쉐 911의 경우처럼 헤리티지가 쌓인 프리미엄 브랜드의 간판 모델은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비난과 극찬의 냉온탕을 오갈 수 있다. 재규어는 결국 다음 세대 XJ(X300)부터 원형 램프로 복귀하게 된다.
2번째는 수석 디자이너 이안 칼럼이 주도한 재규어의 전면적인 스타일링 변화다. 2007년 모습을 드러낸 콘셉트카 C-XF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외관으로 재규어의 변화를 예고했다. 특히 재규어의 상징이라 할 만한 2쌍의 원형 헤드램프와 수직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버리고 날렵하게 다듬은 프론트는 과거와의 단절을 뜻했다. 그러나 이것은 종전과 달리 건설적인 단절로 받아들여졌다. 얇아진 일체형 헤드램프와 긴장감 넘치는 측면 벨트라인은 고풍스러운 고급차 이미지를 탈피하여 본연의 레이싱 DNA를 거침없이 드러낸 변신으로 주목받았다.
변화의 폭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차량 외부 디자인을 포함하여 창립 이래 유지했던 브랜드의 근간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자동차 회사의 리브랜딩 방향으로서는 황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패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로로 길게 나열된 디바이스 마크와 원형의 아티스트 마크는 구찌나 루이비통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재규어 마니아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마이애미 핑크, 런던 블루 같은 컬러나 티저 영상도 패션 업계에서 바라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재규어는 전동화 시대에 내놓을 신차 가격을 대폭 높여 포르쉐·벤틀리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와 경쟁하려 한다. 전기차의 특성과 전기차가 만들어 갈 교통 문화는 내연기관차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재미나 기계적인 감성 품질보다 거대한 전자제품으로서의 편의성과 안락함이 중시된다. 리브랜딩 담당자들은 아마 전동화 시대 재규어의 방향을 초고가 패션 브랜드에 가깝게 잡은 듯하다.
재규어 관계자들이 이번 발표로 따라올 비난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파괴적 혁신인가, 무난하게 전개 중인 브랜드를 추락시킨 악수인가?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다. 자동차든 패션이든 더 명확하게 밀고 나가는 뚝심 있는 전개만이 답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주력 품목은 자동차인 만큼 크게 상향된 목표를 차량의 운동성능이 받쳐 주지 못하면 성공은 힘들 것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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